*난님이랑 연성딜

*월간소녀 노자키군 미코시바 미코토 드림

*노잼이여

*미코링 비중 왜케 적은 것 같지...????

*아무튼 미코링 드림




미코링을 부탁해!




'난정….'


이름을 속삭이는 목소리가 달았다.


'난정. 키스해도 되냐?'


눈앞에서 흔들리는 은발 곱슬 머리. 얼린 동태 눈 같았던 눈매가 깊게 가라앉아 불타고 있었다.


난정은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으로 가까워지는 속눈썹. 높은 코끝이 뺨에 닿을 것 같았다.


'난정….'


입술에 숨이 닿으려던 순간.


"꺄아아악 카시마 군!"


복도가 시끄러워서 잠에서 깼다.


"헉."


난정은 빠르게 입가를 손등으로 훔치며 책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물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우선 이건 오케이. 1차 확인을 끝내고 무거운 눈꺼풀에 애써 힘을 주었다.


뻑뻑한 눈을 게슴츠레 하게 떴을 때 시야에 들어온 것은 긴토키의 얼굴 클로즈업샷이 아니라 시끄러운 교실의 정경이었다. 눈을 깜빡여보아도 이미 사라진 긴토키의 속눈썹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긴상이랑 뽀뽀하기 직전이었는데!!! 꿈이었지만!!!!!


어떤 놈이냐 내 드림을 방해한 쓰레기는! 드림러의 드림을 방해한 원한은 넓고도 깊지. 원한의 바다에 수장시켜주마.


"어떤…."

"괜찮니, 공주님?"


분개하며 고개를 들었던 난정은 교실 문쪽에서 넘어진 여자아이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카시마를 발견했다.


"아."


그리고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차마 카시마의 빛나는 얼굴을 차원 사이의 눈물 바다에 빠트릴 수 없는 난정은 이 시대의 당당한 얼빠였다.


(치마 입은) 이케맨이니까 한 번만 용서해주지.


아무도 모를 용서의 말을 속으로 되뇌인 난정은 아직 잠에 취한 눈을 비비고 양손으로 뺨을 슬슬 두드렸다. 짧은 점심시간 동안 숙면을 취했다는 사실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난정, 잘 잤어?"


머리도 깔끔히 정리하고 언제 잤냐는 듯이 책(통판으로 구입한 존잘님 회지에 북커버를 씌운 것)을 편 난정에게 말을 건 것은 카시마였다.


"엇."


어떻게 알았지.


반사적으로 입가를 손등으로 훔치는 난정을 보고 카시마가 환하게 웃었다.


"뺨에 자국 났어."


긴 손가락이 가리킨 왼쪽 뺨을 문질렀다. 물론 그런다고 사라질 거라면 타이거마스크라도 나와서 마술의 비밀을 밝혀줘야 할 것이다.


"난정.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어? 뭔데?"


'카시마가 나한테 질문을? 성적도 좋은 애가? 뭐가 궁금한 거지? 긴상과 나의 러브스토리? 내 존잘님 신간?'


궁금해할 리가 없는 것만 떠올리며 얼굴 전체에 물음표를 표히사고 있자니 카시마는 곤란한 듯이 뒷목을 긁었다. 그리고 힐끔 문밖을 보고는 소리를 낮춰서 물어왔다.


"오늘 왜 교사 뒷편에 안 왔어?"

"엥?"


교…교사 뒤에는 천사가 묻혀져 있다?


물론 카시마가 그런 이 시대 최고의 힐링 애니의 제목을 말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오늘 점심도 안 먹고 쭉 기다리고 있었다구, 그 녀석."

"…?????"

"혹시 자느라 잊어버린 거야?"

"??????????????"


저기, 말의 흐름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만. 혈계전선이신가요? 왜 시청자를 왕따시키시죠? 크라우스는 내 꺼 같지만.


원작이라도 찾아보고 위키를 뒤져야 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 난정의 당황한 얼굴을 보고 카시마가 단정한 얼굴을 찡그렸다.


"…저기, 난정. 혹시 오늘 편지 못 받았어?"

"편지?"


모르겠는데요. 그거 복선인가요.


"신발장에…넣었다고 했는데."

"…? …아!!!"


고개를 갸웃거리던 난정은 퍼득 오늘 아침에 신발장에서 팔랑거리며 떨어졌던 핑크색 봉투를 기억해냈다. 모 미연시의 로고가 그려진 편지봉투를 조심스럽게 뜯자 역시 모 미연시의 굿즈인 것이 분명한 편지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 점심 시간 교사 뒷편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동글동글하니 여자아이가 쓴 것 같은 글씨였다. 뒷면을 보아도 불에 그슬려보아도 그 외의 내용은 쓰여 있지 않았다.


"…잘못 넣은 건가?"


역시 그런 결론이 날 수밖에 없었다. 편지지는, 같은 집에 사는 미연시 덕후의 것을 잘못 빌렸다거나 뭐 그런 걸지도. 도짓코 속성인 걸까.


마침 옆자리 신발장은 카시마에 버금가는(정말로 버금인) 인기남 미코시바의 것이기도 했으니까 그 생각에는 제법 일리가 있었다. 편지를 이리저리 돌려보던 난정은 그것을 다시 얌전히 봉투에 봉인해 미코시바의 신발장에 넣어주었다.



"―그랬는데."


사실대로 이실직고하자 카시마는 보기 드문 얼굴로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잠시 누군가에게 애도의 말을 중얼거리는가 싶더니, 난정의 책상에 손을 얹고 진지한 얼굴로 부탁해왔다.


"지금이라도 좋으니까 교사 뒷쪽으로 가줘. 가서 그 녀석을 차버리든 말든 그건 아무래도 좋으니까."

"엥…."


이건 대체 무슨 소리인가 생각했지만.


"응? 부탁할게."


부드럽게 웃으며 왕자님 스마일을 풀방출하는 카시마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 것은 얼빠의 슬픈 숙명이었다.





"여기에 뭐가 있다는 거야…."


카시마의 말에 따라 교사 뒷편으로 향한 난정을 반기는 것은 나무와 흙과 벤치들 뿐이었다. 몇 명인가 지나가는 사람은 있었지만 썩 중요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아무리 수색 커맨드를 넣어도 <특별한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정도 멘트 밖에 나오지 않는 추리 게임을 하는 기분이다.


그럴 땐 쿨하게 게임을 포기하고 공략을 보고 마는 난정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교실로 돌아가기 위해 돌아선 순간,


"나, 나, 난정!"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미코시바?"


그곳에 있는 것은 같은 반의 미코시바였다.


샤프하니 잘 생긴 외모로 여학생들에게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케맨이다. 난정에게는 평범하게 덕후 가게에서 종종 만나게 되는 잘생긴 덕후 클래스메이트 정도의 느낌이었지만.


미소녀 피규어도 미코시바의 손에 들리면 그럭저럭 만화 소품 같은 느낌이 있었지. 패완얼도 모자라서 피완얼이다. 난정은 새삼 미코시바와 피규어 코너에서 마주쳤던 기억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나나나나난정!!!"

"응."

"그, 그, 그게."


미코시바는 신디사이저가 울고 갈 듯한 반복음으로 이름을 더듬거리며 불러놓고도 왠지 말이 없었다. 귀까지 빨개진 얼굴이 터질 것 같다.


'나에게 너무 반하지 말라고. 위험하니까 말이야.'

'내 마음은 차갑지만…너의 손이라면 따뜻하게 느껴지는데.'


그런 대사로 난정의 시공간을 접어놓곤 하던 사람치고는 상당히 이상한 반응이다.


'요즘 미코시바 좀 캐붕인걸.'


미코시바가 난정에게 낯부끄러운 대사를 날리지 못하고 이런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언제였더라. 세 달 쯤 전에 처음으로 덕후 가게에서 비키니를 입은 미소녀 피규어를 사고 있는 미코시바를 보게 된 날부터였던가.



"헉!!!"


사거리 미소년이라도 본 듯이 놀라는 미코시바와 그 손에 들린 '메디컬☆키라라쨩'의 한정판 염하버전(=비키니) 피규어를 번갈아 보다가 그 옆에 놓여있던 같은 애니의 남자 캐릭터 상반신 탈의 피규어를 집어들었더랬다. 그리고 평범하게 말을 걸었다.


"안녕 미코시바, 카드 세트 살 거면 나랑 같이 사서 중복 카드 바꾸지 않을래?"


미코시바는 괴상한 표정을 지었고, 괴상한 얼굴(그래도 잘생김)을 한 채로 난정과 카드를 몇 장 바꾸었고,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난정에게 괴상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안녕좋은아침인데잘잤냐!"


아웃사이더가 울고 갈 속사포랩을 선보이거나.


"…너도 카시마 좋아해?"


이상하게 살짝 카시마를 신경 쓰는 듯한 모습을 보이거나.


"벼벼별로 너 주려고 한정판 프리미엄 카드 뽑은 거 안 바꾸고 가져온 거 아니거든!"


옥션에 올린다면 5만엔은 너끈히 받을 듯한 난정의 최애캐 한정판 카드를 던지고 가버리거나.


아무튼 전부 난정을 당황하게 하기에는 충분한 액션들이었다.



'…어라?'


미코시바의 이상행동에 대해 생각하던 난정은 문득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미코시바…나 좋아하나?'


2000년대 초반 애니메이션에 종종 등장하던 츤데레 히로인 같은 미코시바의 행동에, 고백의 핫플레이스인 교사 뒷편까지 불려와서도 그걸 깨닫지 못한다면 말이 안 된다.


설마 이렇게 인기 많은 미코시바가 그냥 덕후 동지일 뿐인 자신을 좋아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 없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지 이제까지의 이상행동들이 전부 아귀가 들어맞았다.


"흠, 흠."


지금도 저렇게 삶은 문어 같은 얼굴색으로 힐끔힐끔 눈치를 보는 걸 보면, 지금 이순간 지금 여기에서 고백할 확률이 99.9%쯤 되지 않을까 싶다.


'받아줘야 되나? 아니 그래도 데이트 한 번 정돈 해보고 나서….'


난정은 복잡한 머리로 미리 시뮬레이션을 굴려보았다. 미코시바랑 데이트할 장소는 피규어 파는 가게인가. 메이드 카페나 집사 카페라도 가볼까.


묘하게 핀트가 어긋난 생각에 잠겨있었기 때문에,


"선택지!!"


미코시바가 갑자기 그렇게 외치는 데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


그리고 미코시바의 외침에 나무 뒤에서 난데 없이 네 사람이 등장해 각각 스케치북을 들어올려 보여주는 데에는, 누구라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 주 토요일에 같이 영화 볼래?>

<내 3D 최애는 너야.>

<널 좋아해,나의 공주님.>

<나랑 사귀어줘.>


?

??

????

???????????


스케치북에 쓰여있는 문구도 의미 불명이다.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사쿠라와 학교에서 제일 큰 남학생인 노자키, 자신을 여기까지 내려오게 한 카시마, 그리고 카시마가 존경하는 연극부 선배인 호리 선배까지. 네 사람이 진지한 얼굴로 들고 있는 스케치북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다.


마음 속으로 스피드웨건씨를 부르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죠죠가 없는 이 상황에 나타나주지는 않았지만.


"저, 저기. 미코…?"

"사쿠라, 너로 정했다!"


조심스럽게 미코시바를 부른 순간 미코시바가 소리 높여 외치며 사쿠라의 스케치북을 가리켰다.


"이, 이번 주 토요일에 같이 영화 볼래?"

"…어?"


미코시바의 입에서 나온 것은 사쿠라의 스케치북에 쓰여있는 것과 정확히 똑같은 대사였다.


"여, 영화…보러…."


몸 전체가 새빨개진 미코시바와 그 뒤에서 스케치북을 휘두르는 네 사람. 선택지. 데이트 신청 대사.


"……미코시바 너."


이건 무슨 현실 미연시도 아니고.


헛웃음을 흘리며 아직도 스케치북을 휘두르는 세 사람(노자키 제외)과 새빨간 미코시바를 번갈아 본 난정은 가볍게 한숨을 삼켰다.


"나도 선택지 해줘?"


아무래도 평범한 데이트도 연애도 무리일 것 같은 예감이 온다.


하지만,


<너와 함께라면 어디든 좋아.>

<토요일 11시에 극장 앞에서 만나자.>

<당연하지, 왕자님.>

<사귀자.>


온통 긍정의 대답밖에 없는 편파 투성이의 선택지 네 개에도 딱히 이의를 제기할 생각이 들지 않는 걸 보면.


"그럼, 토요일 11시에 극장 앞에서 만나자."


그 평범치 않은 연애도 미코시바와 함께라면 꽤 즐겁지 않을까 싶었던 게 틀림 없었다.




*




"근데, 영화 보러 가는 날에도 따라오는 건 아니지? 선택지."

"아."


미코링과 함께라면 괜찮지 않을까.

아마도.

Posted by 양철인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