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팔가 로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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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뽕빨 로코




우리 옆집에 의사가 산다




우리 옆집에 사는 사람은 꽤 자주 바뀌었다. 내가 이사오고서부터 근 2년간의 기록만 세어보아도, 적어도 세 번 정도는 거주자가 바뀌었다. 하얗고 큰 개를 키우던 노부부도 쌍둥이를 데리고 있던 젊은 부부도 싸가지 없는 신혼부부도 채 반 년을 넘기지 못하고 도망치듯이 집을 떠났다.


왜지. 하루 세 번씩 변기가 역류했나.


같은 건물에 있는 우리 집 변기에는 아무 문제도 없고, 신혼부부 쪽은 늘 변비가 있을 것 같은 인상이었으니까 그건 아닐지도.


뭐 어쩌면 천장에서 매일 비가 샜을 수도 있고.


고치면 그만이겠지만. 어쩌면 노부부 중 할아버지 쪽의 대머리에만 집중적으로 비가 내렸을 수도 있겠다.


혼자 이런 저런 추측을 해봤던 것은 그냥 심심풀이였다. 사실 별로 궁금하진 않았다. 우리 집 사정도 아니고, 옆집에 누가 이사온다고 해서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사촌의 정을 기대하는 끈끈 끈적끈적한 시대도 아니니까. 굳이 따지자면 쌍둥이를 데리고 있던 젊은 부부가 이사떡을 돌렸던 건 이득이라면 이득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런 추측과는 관계 없이 최근에 시장에서 마주친 아줌마 네트워크를 통해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세 가족이 연달아 버티지 못하고 이사를 가버린 배경에는 오컬트적인 무언가가 엮여있는 모양이었다.


"자꾸 가위에 눌리고."


밤이면 밤마다 천장에서 똑또도똑독(두유워너빌더스노맨)! 하는 소리가 나고.


"창문 밖에 뭐가 아른거려서 열어보면 아무것도 없고."


분명히 불을 꺼놓고 나갔는데 돌아오면 불이 켜져 있고.


"유명한 무당한테 물어봤더니 얼른 이사가라고 했다잖아."


그런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우리 옆집에는 '나온다'는 것이다.


귀신이.


"……."


아니 21세기에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말도 안 되네. 과학적이지 못하네요. 참나 누가 무서워할 줄 알고.


오늘은 우리 야옹이 안고 자야지.


추울까봐 그래. 7월이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고양이를 안고 잠들려고 했다가 고양이 앞발 펀치에 코를 두들겨 맞았다. 아팠다.


"으으으음."


이사 갈까.


아니 뭐 우리 집에만 안 나오면 그만이긴 한데. 귀신은 세력 확장 같은 거 안 하지? 맵 탐색 기능 없지 보통?


근데 왜 하필이면 우리 옆집이지? 알고보면 살인사건이 일어났었다거나 샤워룸에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거나 뭐 그런 진실이 있는 건 아니겠지.


….


역시 이사 갈 집을 좀 알아둘까. 아니면 관리인 아저씨한테 다른 빈 방 알아봐달라고 할까.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바로 어제의 일이었는데.


"아, 미샤 양? 외출하는 길인가봐요."

"안녕하세요."

"마침 잘 나왔네요. 오늘부터 옆집에 살게 된 트라팔가 로우 씨예요. 외과의사라고 하시네요. 이웃사촌이니까 얼굴이라도 익혀두면."


수다스러운 건물 관리인 아저씨의 말이 멀게 들렸다.


"……."

"트라팔가 로우다."


짧게 인사하는 목소리가 귓가에 오래 울린다.


한참 위에서 똑바로 박혀오는 회색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눈을 피했다.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오 미친.


이사를 간다니 그게 무슨 불경스러운 말인가요.


귀신? 귀신이 뭐가 문제지?


"초면에 실례지만."

"?"

"사랑해도 되나요."



내 사랑을 방해하면 귀신이라도 죽인다.









퇴마물 아님

Posted by 양철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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