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드림 60분

*자체 주제 발렌타인 데이

*원피스 트라팔가 로우 드림

*오리주(이름 있음) 주의

*힘찬 지각...^_ㅠ




소녀의 대명절




아무 생각 없이 달력을 넘기다가 한 가지를 깨달았다.


오늘은 2월 14일.


미코링 생일…이 아니라 발렌타인 데이다.


발렌타인 데이.


그야말로 소녀의 대축제와 같은 날이란 말이지!


원래는 성 발렌티누스가 고문 끝에 죽은 날이라거나 뭐 그런 풍문으로 들은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 세계에 성 발렌티누스가 살았을 리도 없는데 왠지 발렌타인 데이는 챙기는 것도 딱히 내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건 잠시 후 도착할 섬이 봄 섬이라는 사실이지!


봄날의 발렌타인 데이에 무슨 일이 있어도 초콜릿을 줘야 할 사람이 바로 옆에.


이 정도까지 조건이 갖춰졌는데 이벤트를 챙기지 않는 건 소녀의 도리가 아닌 것이다.


물론 나는 몸도 마음도 훌륭한 소녀니까 내일은 캡틴에게 꼭 초콜릿을 줘야겠다고 다짐했다.


뭐 겸사겸사 나도 조금 먹으면 좋고!


…라고 다짐한 것까지는 좋았던 것 같지만….


"미샤.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먹어."


문제는 캡틴이 진행 중인 ~미샤의 올바른 식단 교육~ 프로젝트가 아직도 진행중이라는 사실이다. 프로젝트에는 간식 과다 섭취 제한도 포함된다. 어차피 섬에 내려도 캡틴이랑 같이 다니게 될 확률이 90% 이상인데 캡틴이 초콜릿 가게에 가게 해줄 리가 없다.


지리한 투쟁 끝에 얻어낸 하루 한두 개의 배급 디저트만으로는 나 홀로 연명하는 데에 지장은 없지만, 소녀의 이벤트 퀘스트 조건을 충족시키는 건 아무래도 불가능하다. 캡틴한테 받은 걸 다시 줄 순 없잖아. 모양이 너무 이상하지. 디저트 리사이클도 아니고. 어디의 아나바다 운동이냐.


그렇다고 발렌타인 초코를 PT를 곁들여 브리핑한 후 허락 하에 사러가는 것도 그림이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허락도 안 해줄 것 같지만.


그런 의미에서 오늘 캡틴이 준 초코는 일단 내가 먹고!


"으음."


입 안에서 살살 녹는 초콜릿을 우물거리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근처를 지나가는 펭귄과 샤치를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 캡틴한테만 줄 게 아니라 해적단 사람들을 전부 챙기는 쪽이 나을까? 어차피 어디 가서 판초콜릿 한 조각이라도 얻어올 상판들도 아니고. 불쌍한 노총각들 나라도 챙겨줘야지. 비상금 좀 털어야겠는걸. 그것도 무사히 초콜릿 구입 퀘스트를 수행할 수 있을 때의 얘기지만.


"으으음."


팔짱을 낀 채 어떡하면 로맨틱 성공적인 초콜릿 대작전을 수행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으니 펭귄과 샤치가 다가와서 옆자리에 앉았다.


"왜 그렇게 심각한 얼굴이야? 미샤."

"선장한테 또 뭐라고 헛소리할까 레퍼토리 개발 중인 거 아니야?"


헛소리 아니거든. 사랑의 시거든. 예이츠의 환생이라고 들어는 봤냐.


"시인이 다 죽었냐?"


깐족거리는 샤치를 노려보고 있으려니 어느새 섬에 도착했다.


벌써 도착이라니. 아직 어떻게 할지 못 정했는데!


"미샤 너 이번 섬에서도 선장 껌딱지 할 거지?"

"…글쎄…."


캡틴한테 붙어다니다간 초콜릿은 ㅊ자도 구경 못할 건 뻔한데….


"웬일로 고민을 해?"

"드디어 선장한테 좀 자유를 줄 생각이 든 건가?"


뭐라는 거죠. 제가 언제는 구속했다는 것 같네요. 평범하게 스토킹했을 뿐인데.


"나한테 자유를 줘?"


샤치를 또 노려보고 있는데 모자 위에 턱 무게가 얹혔다. 덕분에 눈 바로 위까지 푹 내려온 모자를 붙잡아 올렸다.


"캡틴!"

"미샤, 이번 섬엔 안 내리려고?"

"아니…그건 아닌데."

"그럼?"


내려다보는 캡틴과 옆자리의 펭귄과 그 옆의 샤치를 곁눈질하다가, 결국 캡틴보다 만만한 상대를 골랐다.


"나 이번 섬에선 펭귄이랑 다닐래요."

"펭귄?"


그렇게 말하자 캡틴이 모자 아래로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어? 나랑?"


펭귄은 금시초문이라는 듯이 입을 뻐끔거렸지만…캡틴보다는 그래도 펭귄이 쉽지! 짐꾼으로 쓸 수도 있고! 펭귄한테 얘기하고 도움을 받자. 좋아.


"펭귄이랑! 둘이 갈 테니까 캡틴은 어…베포랑 사이 좋게 다녀와요!"


얼른 그렇게 말하고는 펭귄의 팔을 잡아당겼다.


"어이. 미샤?"

"이따 봐요!!"


당황하는 펭귄의 팔을 꼭 잡고 얼른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캡틴이 듣지 못할 정도로 거리를 벌리고 나서야 펭귄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펭귄이 좀 도와줘!"

"아…그러냐…진작 말을 하지. 좋아."


그리고 꽤나 쉽게 허락이 떨어졌다. 역시 캡틴이 아니라 펭귄을 고른 게 정답이었지!


"그나저나 미샤 너…돌아가면 캡틴한데 제일 먼저 제대로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뭐를?"

"네가 나랑 가겠다고 하니까 캡틴 표정이…아니, 아니다. 나중에 얘기하자."

"??"


펭귄은 말을 하다 말고 얼른 가자며 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좀 불만이었지만 거의 뛰다시피 해서 따라가느라 힘들어서 그것도 금방 잊어버리고 말았다.






"감사합니다!"


제일 커 보이는 디저트 가게에 들어가 여러 종류의 초콜릿을 샀다. 술이 들어간 종류를 많이 고르고 그 외에 견과류가 들어간 것이나 과일 모양인 것도 몇 가지 골라 넣어 (펭귄이) 들었고, 나는 캡틴을 위해 특별히 고른 가게의 스페셜 초콜릿 세트를 들고 배로 돌아가기로 했다. 주머니는 좀 가벼워졌지만 다들 좋아할 걸 생각하니 발걸음도 가볍다.


돌아가면 배 당번들만 남아있을 테니까 제일 먼저 고르게 해줘야지. 당번은 두 배로 불쌍하니까.


"다녀왔습니…어?"


초콜릿 상자를 한쪽 옆구리에 끼고 배에 올랐는데, 왠지 갑판이 조용했다. 뭐라도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조용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더니 동료들이 왠지 평소보다 더욱 반갑다는 듯이 달려온다. 윽, 왠지 눈물 글썽거리는데. 기분 나쁜데.


"미샤!!! 왜 이제 와!!"

"??"


한발짝 뒤로 물러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커다란 손들이 등을 밀어왔다.


"얼른 선장실로 가봐."

"엥?? 캡틴 안 나갔어?"

"안 나갔다 뿐이냐…."


샤치가 왠지 한숨을 섞어 중얼거리며 다시 등을 밀었다.


"얼른 가봐. 그러게 왜 안 하던 짓을 해선."

"??"

"그럴 줄 알았지."

"????"


옆에서 나와 같이 나갔던 펭귄까지 한숨을 쉰다.


뭐지. 왜 다들 나만 왕따 시키는 기분이지. 괘씸죄로 오늘 사온 초콜릿을 전부 반품할까 하다가 그냥 펭귄에게 나눠주라고 말해주고는(다들 환호성을 질렀다) 배 안쪽 선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조용한 복도를 걸어 도착한 제일 안쪽의 방은 고요했다. 캡틴 섬에 안 나가고 자나? 조심스레 손을 들어 똑똑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낮게 가라앉은 캡틴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냐."


…어…기분이 안 좋은가? 나 혹시 캡틴 기쁨조로 떠넘김 당한 건가?


"…캡틴…들어가도 돼요?"


싱숭생숭한 기분으로 문에 대고 말을 걸자, 캡틴이 낮은 목소리로 들어오라고 대답했다.


…들어간다고 혼나진 않겠지. 딱히 잘못한 거 없는걸. …그치?


한 번 침을 삼키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방 가운데 책상에 앉아있는 캡틴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모자도 안 쓰고 인상을 구기고 있는데 왠지 여기까지 저기압이 느껴진다.


"섬에는?"

"갔다…왔는데…."


손에 든 초콜릿 상자를 꼼지락거리면서 대답하자, 캡틴의 시선이 따라왔다. 핑크색 포장지에 리본까지 달려 있는 상자를 발견한 캡틴의 눈썹이 더 치켜올라갔다.


"그건?"

"오늘 발렌타인 데이니까…캡틴 주려고…초콜릿."


화난 것 같은데 초콜릿 사러 갔다왔다고 하면 더 혼나려나? 그치만 내 초코는 별로 사지도 못했는데.


"…."


괜히 눈을 굴리면서 상자를 내밀었는데 캡틴은 아무 말도 없었다.


…혼나는 건가?


힐끔 캡틴을 올려다봤다.


…가 났다기 보다는 놀란 얼굴인데. 


"…캡틴?"


조심스럽게 부르자 캡틴은 눈을 깜빡이더니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하아…."


그리고 왠지 폐부에서 끌어올린 듯한 한숨을 쉬더니,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이리 와, 미샤."

"넴."


화 풀린 것 같다! 다행이다!


쪼르르 달려가 상자를 건네자, 캡틴은 주저없이 포장을 북북 찢은 다음 상자를 열었다. 예쁘게 장식된 내용물을 보고 다시 미묘한 얼굴이 되었다.


"초콜릿…."

"발렌타인 데이니까! 하나만 먹어요 캡틴!"

"…."

"응? 이거 잘 나간대요. 어여기는 술도 들어있댔는데."


캡틴이 천천히 초콜릿 한 조각을 집어들어 입에 넣었다. 훤칠한 이마가 조금 찡그려졌다.


"…달아."

"내 사랑이 들어있어서 그래요!"


사실 남이 만든 거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지. 중요한 건 마음이니까!!! 어쨌든 고른 건 나잖아. 제일 비싼 걸로 사왔으니까!


"그래."


어깨를 펴고 뻐기듯이 말하자, 캡틴은 피식 웃으면서 또 다시 초콜릿을 입에 넣었다.


"캡틴…안 달아요?"

"달아."


그리고 인상을 잔뜩 구긴 채로 앉은 자리에서 초콜릿 한 상자를 전부 해치워버렸다.


우와. 먹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사오긴 했지만 정말 다 먹어줄 줄은 몰랐는데.


"캡틴…혹시…."


텅 빈 상자를 들고 캡틴을 올려다보았다.


"…혹시 초콜릿 엄청 먹고 싶었어요?"

"."


뭐지. 째림 당했다.


빈 상자를 들고 선장실에서 쫓겨 나왔다.


"음…."


뭔가 오늘 캡틴 화났다가 아니었다가 초콜릿도 다 먹었으면서 먹고 싶었냐는 질문엔 노려보기나 하고. 대체 뭐가 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헤헤."


어쨌든 단 거 싫어하는 캡틴이 초콜릿을 다 먹어줬으니까.


빈 상자를 기념으로 보관해둘까 잠깐 고민했다.




Posted by 양철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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