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드림 전력

*주제: 뒤흔들다

*쿠로코의 농구 아카시 세이쥬로 드림

*이전 전력(새 창)의 아카시 시점

*횡설수설 주의





흔들려





'힘들지 않아? 늘 1등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


중학 시절, 매니저는 그렇게 말했다.


아카시 세이쥬로가 그녀를 좋아하게 된 시점을 굳이 명확히 밝혀내야 한다면 그 날 그 순간을 이야기 할 것이다.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


그의 대답에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하고 말을 맞춰오는 얼굴에는 걱정스러운 기색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아카시 세이쥬로에게 남아있는 몇 안 되는 따뜻한 날들의 기억.


그녀는 늘 아카시에게 있어 개인으로도, 그리운 시절에 대한 추억으로도 늘 소중한 존재로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너도 진짜 힘들게 사네. 안 피곤하니?'


고등학교에 입학해 만난 농구부의 매니저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비슷한 단어를 가지고도 이렇게 다르게 말할 수 있구나. 선배에 대해서는 조금쯤 감탄하는 심정이었다.


상대가 누구건 별로 어려워 하는 기색도 없이 할 말이 있으면 전부 하는 선배다운 반응이었다.


당연한 일이니까 피곤하지 않아.


대답했을 때 선배는 웃었다.


허세는 확실히 기적급이네, 하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던 웃는 얼굴이 어쩐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승리를 위한 것 외엔 전부 불필요해.


중학교 막바지의 어느 날인가 그녀에게 상처 받은 표정을 짓게 만들었던 날을 기억하고 있다.


어떤 의미로든 잊을 수 없는 날이었지만, 언제나 승리하는 아카시 세이쥬로에게 있어서 후회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아카시는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하는 대신 쿠로코를 따라 세이린으로 진학한 그녀를 라쿠잔으로 데리고 오면 자신의 승리를 완벽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같은 말을 선배에게 했을 때, 선배는 웃었다.


'그러다 한 번 지면 세상 뒤집히겠다, 너는.'


여유 있는 웃는 얼굴이 어쩐지 속을 뒤집었다.


선배의 성적은 늘 좋은 편이었지만 1등은 아니었다. 농구부에서도 딱히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것도 아닌 보조적인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선배는 승리를 몰랐다.


승리를 모르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자 선배는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딱히 인생에 그렇게 일일이 승패를 따지지 않는걸.'


상처를 줄 생각은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아무렇지 않길 바랐던 것도 아니었다. 아카시 세이쥬로는 늘 승리하는 만큼 늘 옳았으므로, 다른 의견을 용납할 수 없었다. 선배의 말은 패자의 변명이었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패자의 말이 이렇게 오랫 동안 기억에 잔상처럼 남는 것은 예상 외의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애는 쿠로코와 사이가 좋네.


중학교 시절 그녀에 관해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카시는 자신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잘 기억하지 못했다.


질투 같은 것은 패배자가 느끼는 감정이다.


아카시 세이쥬로는 어느 때건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는 존재였다.





그러고 보니, 선배는 히구치 선배와 사귀는 걸까? 사이 좋아보이고.


미부치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을 때, 아카시는 어째서인지 지나치게 놀랐던 자신을 알았다.


농구부에서 부원들끼리의 연애는 딱히 금지된 사항은 아니었으므로 자신이 굳이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아카시는 그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미부치의 말 그대로 다른 매니저인 히구치와 유난히 사이가 좋아보이는 선배를 눈으로 쫓고 있었던 것을 뒤늦게 눈치챘다.


그 선배가 누군가와 사귄다니, 그런 것은 역시 잘 상상이 가지 않았던 탓이라고 생각했다.


'히구치랑? 농담이지? 걔는 그냥 남동생 같은 거거든. 지금 소름 끼쳤다. 보여?'


하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질문해버린 하야마의 말에 질색하는 얼굴을 했던 선배를 보고 안도했던 것은 어째서였을까.


언제나 확신하는 아카시 세이쥬로는 처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외면했다.





오늘 내가 승리할 테니 라쿠잔으로 와서 내 옆에 있어.


윈터컵 결승. 그녀에게 그런 말을 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었을 것이 분명했던 선배에게 시선을 돌릴 뻔했던 것을 뒤늦게 깨닫고 멈췄던 것은―


어째서?


아카시는 생애 처음 패배감을 느끼고서야 자신에게 의문을 가졌다. 모든 것을 지켜보며 기다리던 아카시 세이쥬로 또한 그 모든 의문을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그조차도 제대로 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은퇴식도 지난 며칠 후, 혼자 앉아 있던 선배에게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던 것은 그답지 않은 충동의 결과였다.


가만히 앉아서 그의 이야기를 듣던 선배는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야 툭 한 마디를 던졌다.


'쿠로코를 따라 세이린으로 갔다면 이미 걔한테 지고 있었던 거잖아. 윈터컵이 첫 패배도 아니었네. 바-보.'


그 말에 아마 자신은 놀란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아카시 세이쥬로는 자신의 행동을 객관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선배는.


당신은 어째서 그 때 상처 받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어?


아카시는 자신을 피하듯이 자리를 뜨는 뒷모습에서 오래도록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아카시 세이쥬로는 후회하지 않는다.


아카시 세이쥬로는 뒤늦게야 자신이 그것을 후회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카시 세이쥬로는 그녀를 좋아한다.


아카시 세이쥬로는 그녀를 좋아했다.


그렇다면 선배는?


아카시 세이쥬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언제부터 그녀보다 선배에 대한 생각을 더 오래 하게 된 것이었을까.


당신은 왜 나를 뒤흔들까.


아카시 세이쥬로는, 생각을 거듭할수록 자신이 흔들렸던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도무지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어떤 상대에 대해 다른 누구보다 오래 생각하게 되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렇게 묻자, 무라사키바라는 과자 이야기냐고 되물었다.


아오미네는 어느 그라비아 모델 이야기냐고 되물었다.


키세는 그 사람을 존경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미도리마는 그 사람이 아주 중요해진 것이 아니겠느냐고 대답했다.


그리고 쿠로코는,


좋아하게 된 것 아닐까요? 그 분을.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카시는 역시 그렇구나, 라고 생각했다.





아카시 세이쥬로는 자신의 판단이 틀렸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자신의 생각이 변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없었다.


그래서 뒤늦게야 알았던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마음을 정리해서 이야기해주기까지 쭉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카시는 그제서야 그때까지도 모른 체 하고 있었던 자신의 흔들림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선배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졸업식 날, 아카시는 다른 누구보다 먼저 선배에게 꽃다발을 건네며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뼈 아픈 통한의 패배였다.


"확실히 알았어요."


아카시 세이쥬로는 이미 사랑에 빠져 있었다. 흔들림 따위가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을 수없이 많은 패착을 거치고서야 알았다.


아카시 세이쥬로는 이제 패배를 알았다.


그러므로 선언할 수 있었다.


"이제 후회할 일은 하지 않아요."


패배를 딛고 나서야 얻을 수 있는 승리를.





결국 아카시는 유학 권유가 있었던 것을 거부하고 결국은 선배와 같은 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택했다.


"오랜만이에요, 선배."


인사하자 놀란 듯이 동그래지는 눈을 보면서, 아카시 세이쥬로는 다시 제대로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 당신이 좋아.


그는 이제 흔들릴 일도 후회할 일도 하지 않을 것이었다.












남캐 시점은 늘 어렵네요...............남자로 태어났으면 좋았을걸 그랬나..........편하게 살긴 했겠다................



Posted by 양철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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