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드림 60분

*주제: 욕심

*엑스맨 무비 퀵실버(피터 막시모프) 드림

*퐄카퐄카 시리즈물~




세상에서 제일 빠른 마중




"진짜 갈 거야?"

"가야지."


아침부터 졸린 눈을 비비며 내 방으로 찾아온 피터는 내내 징징이었다. 나의 시끄럽고 재빠른 친구가 아침 내도록 장난감처럼 뺏긴 생후 6개월 강아지처럼 구는 이유는 오로지 내가 할머니를 모시고 교회에 가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 뿐이었다.


"교회는 대체 왜 가는 거야."

"할머니를 혼자 보낼 순 없잖아. 귀도 안 들리시는데."


평일에는 종종 할머니를 돌보는 분이 와주시긴 하지만 일요일은 휴일인데다 교회에까지 동행해주는 사람은 없다. 덕분에 독실한 신자인 할머니를 교회까지 챙겨 모셔다드렸다가 다시 집으로 데려오는 게 내 몫의 일이 된 것도 벌써 1년 가까이 됐다. 물론, 피터가 거의 매주 찾아와서 징징댄 것도 대충 그 정도 되었고.


"난 교회 싫어."

"그건 나도 그렇지만."


입이 댓발 나온 피터는 내 침대에서 혼자 버둥거리면서 툴툴거렸다. 피터도 어릴 적에는 교회에 다녔었지만, 어느 날인가 피터에게 '누구보다 빨리 달리는' 능력이 생긴 이후로는 다니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나도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은데 할머니의 집에 얹혀 사는 입장이니 일요일만이라도 챙겨야 해서. 딱히 신앙심이 깊어서 나가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뭐, 성경에는 피터나 나 같은 사람의 얘기는 적혀있지 않았으니 아마 하나님도 우리 같은 이질적인 존재에게는 별로 믿음도 바라지 않는가 보다 싶을 뿐이지만.


"교회 끝나고 얼른 올 테니까 그때 놀자."

"넌 너무 느려."

"네가 너무 빠른 거겠지. 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얼른 나가. 나 옷 갈아입을 거야."

"지금? 갈아입어!"

"얼른 나가, 변태야!"


내 방을 빙글빙글 돌아다니며 답지 않게 밍기적대는 피터를 쫓아보내고 얼른 교회에 갈 준비를 했다. 늘 그렇듯이 별 달리 챙길 건 없어서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묶고, 재빨리 할머니의 채비를 도와 집을 나섰다.


피터, 오늘따라 유난히 더 집요하던데 진짜 삐친 거 아닐까.


영 마음에 걸려 옆집을 한 번 돌아봤을 때에는 막시모프라고 쓰인 우체통 옆에 피터가 심통난 얼굴로 서 있었다.


"이따 봐!"


인사하고 나니 또 그새 사라졌다. 진짜 단단히 삐친 것 같은데 나중에 예배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트윙키라도 사다줘야겠다.






오늘따라 목사님의 설교는 이상하게 길었고, 덕분에 나는 조금 졸았다. 교회라서였는지 다행이 오늘 꿈에는 특별한 장면이 나오지는 않았다. 감사하고 있으니까 부디 워싱턴의 하나님이 나에게 평생 춤 추는 빨간 구두의 저주 따위를 선사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후암."


다행히 할머니에게 들키지는 않아서 몰래 하품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머니는 이 다음 곧바로 기도 모임에 가게 되어 있고, 그쪽에서 차를 태워서 집까지 바래다 주니까 나는 이대로 집으로 직행하면 끝이다. 이왕이면 기도 모임도 예배 전후에 다 했으면 좋겠는 건 너무 큰 바람인가.


"잘 부탁드려요."


할머니를 모임 쪽에 모셔다드리고선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교회에서 나왔다. 예배 중에 소나기라도 왔었는지 길이 꽤 질척했다. 우산 안 가져왔는데 그쳐서 다행이다. 이제 잠깐 트윙키를 사러 갔다가 피터한테 가면…잠시만, 나 얼마 있더라.


"저기, 잠깐만!"


손가방을 뒤져서 지갑을 꺼내려는데 누군가가 툭 어깨를 건드리는 바람에 손에서 지갑이 미끄러졌다. 


"어."


안 돼. 피터가 작년 생일 선물로 준 건데(훔친 게 아니다!). 흙탕물 웅덩이로 떨어지는 지갑을 보면서 입을 벌리고 있던 때에,


"지갑 주웠다."


번쩍거리는 은색 재킷 소매가 불쑥 시야에 들어왔다. 흙탕물을 뒤집어쓸 운명에서 구해진 내 지갑이 손끝에서 달랑달랑 흔들렸다.


"피터!"

"오, 이거 네 거야?"


피터가 내 지갑을 흔들면서 개구쟁이처럼 웃었다. 


"언제 왔어?"


분명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야에 없었는데. 이건 분명히 능력 쓴 거지. 사람도 많은데 간도 크다, 진짜.


"좀 아까부터?"


피터는 능청맞게 대답하더니, 그때까지 내 어깨 위에 올려져있던 누군가의 손을 치우면서 내 어깨를 잡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자기가 늦길래 데리러 왔는데, 저쪽이 멋대로 내가 자기한테 사준 지갑을 흙탕물 샤워 시키려고 하는 걸 봐서 급한 마음에 얼른 잡았지."

"아."


그러고 보니, 이 사람이 멋대로 내 어깨에 손 올리는 바람에 지갑 떨어트릴 뻔했지. 누군데 마음대로 남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난리람.


"어, 그럴 생각은 아니었,"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나도 모르게 약간 뾰족한 목소리가 나갔다. 남자는 잠깐 입을 뻐끔거리면서 나와 피터를 번갈아 보더니, 미안하다고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몸을 돌려 달아나버렸다.


"…뭐야?"

"글쎄?"


피터는 모르겠다는 듯이 한 번 어깨를 으쓱 하더니 또 자기 멋대로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내 어깨가 그렇게 매력적인가, 손 주인만 바뀔 뿐인 거치대가 된 것 같다.


"뭐 지갑도 무사하니까 됐고. 갈까, 자기?"

"손 무거워. 그보다 아까부터 자기 자기 하는 건 뭐야? 새로운 장난?"

"아니, 미래의 호칭을 미리 연습하는 거지."


뭐래, 진짜. 피터의 옆구리를 쿡 찌르고서 앞장 서 걸어가자 피터가 얼른 뒤를 따라왔다.


"일찍 온다고 해놓고."


피터가 투덜거리면서 나를 곁눈질했다.


"설교가 엄청 길었단 말이야…중간에 졸았어."

"흠."

"가는 길에 트윙키 사줄게."

"두 개."


이 트윙키 킬러. 지하실에 박스로 쌓아놓은 걸론 부족했나. 하긴 원래 뛰어다니려면 에너지 소모가 엄청나서 간식을 입에 달고 살기는 한다.


"욕심도 많아…알았어."

"오, 아니야. 마음이 바뀌었어."

"응?"


피터는 가게로 향하던 내 허리를 자연스럽게 감더니 다른 손을 내 목 뒤에 올렸다.


이 자세는 설마.


"잠, 피터? 아니지? 잠깐만."

"집에 가자!"

"꺄, ㄱ―"


채 비명을 다 지를 틈도 없었던 다음 순간, 나는 피터의 지하실 소파 위에 도착해있었다.


"우우욱."


끔찍한 구토감과 함께.


전력으로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버스의 맨 뒷자리에 다섯 시간 쯤 앉아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랄까, 몇 번을 해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느낌이다. 정신을 못 차리고 등받이에 기대서 어질어질한 머리와 속을 달래는 나를 보며 피터는 얄밉게도 히죽 웃었다.


"괜찮아?"

"안 괜찮아…."


제일 좋아하는 트윙키까지 바친다고 했는데 왜 심술이야. 소파에 엎어진 채 불만을 웅얼대고 있자니, 얼른 옆에 앉은 피터가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뭐야…트윙키도 사 준댔잖아. 죽는 줄 알았네."


웅얼거리면서 몸을 일으키는 것을 피터가 도와주었다.


"너도 알다시피, 난 욕심쟁이잖아."


알긴 아네.


피터는 빠르게 쫑알거리면서 엉망으로 흐트러진 내 머리를 대충 한데 모아 정리해주더니, 그 머리 끝을 멋대로 자기 손가락에 꼬아댔다. 그리고는 그 손가락을 자기 입가로 가져갔다.


"이미 잔뜩 있는 간식보다는,"


피터의 조금 얇고 색이 엷은 입술이 내 머리카락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너랑 둘이 있는 시간이 훨씬 더 욕심 나."


…이 바보는 지금 자기가 뭘 하는지 의미는 알고 있는 걸까?


"피터, 뭐 잘못 먹었어? 버터 상했나?"

"방금 거 별로였어?"

"엄청. 느끼했어. 엄청나게."

"흐으으음."


핀잔을 주면서도 사실 조금은, 머리카락에 촉감을 느낄 수 있는 기관이 없어서 새삼 다행이라고 조금쯤 안심하고 있었다.









피터 버터 머것니 버터 조아하니

아니 사실은 내가 조아한다

Posted by 양철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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