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드림 60분

*주제: 두 사람의 밤

*신비한 동물사전 뉴트 스캐맨더 드림

*드림주 이름 및 세부 설정 있음

*시리즈물 3편




미스 래번클로의 불면증




1996년 8월의 런던에서 일하고 있었던 아멜리아 그린은 현재 1926년 8월의 이집트에 있었다. 정확히는 북부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에 놓여있는 낡은 가죽가방 속에 있었다. 시간을 제멋대로 돌리는 정체불명의 마법물품으로 인한 사고 탓이다.


폭발에 휘말렸다가 눈을 떠보니 70년 전의 사막 한가운데. 멀린이라도 예상치 못했을 사고에 지팡이마저 부러져 아멜리아는 18년 간의 짧은 인생이 끝날지도 모를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을 뻔했다. 하지만 운 좋게도 사막 한가운데에서 <신비한 동물 사전>을 쓰기 위해 조사 중이던 뉴트 스캐맨더를 만나 어찌어찌 그와 그의 낡은 가죽가방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어쩌면 목숨이 위험했을지도 모를 상황에서 가히 천운이라고 할 만했다.


다만 이 천운에 따라온 한 가지 문제는, 혼자만의 여행에 익숙한 뉴트 스캐맨더에게 썩 풍족한 자원이 있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다시 말해 보통 필드에 나와있을 때 뉴트가 홀로 잠을 청하곤 하는 가방 안의 헛간에는 침대가 하나 뿐이라는 이야기였다.


"……."


뉴트는 곧 그 사실을 깨닫고 아연한 얼굴을 했다. 일단 딱한 사정에 도와주겠다고 해놓고 바로 이런 난관에 부딪히게 될 줄은 몰랐다. 일단 아멜리아를 헛간 안에서 재우는 것은 기정 사실이었지만, 뉴트 자신이 밤이슬을 맞고 잠드는 것은 대단히 우울한 상상이었다.


그렇지. 침낭. 여분의 침낭이 있을 텐데.


밤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동물을 관찰하기 위해 구입했던 침낭에 생각이 미친 뉴트는 허둥지둥 수많은 서랍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스캐맨더 씨?"


아멜리아가 의아한 듯이 눈을 깜빡이는 사이, 뉴트는 25번 째로 열었던 서랍에서 작게 압축 된 침낭을 찾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그건 뭐예요?"


뉴트는 아무렇게나 열어젖혔던 잡동사니 서랍을 다시 닫아두면서 침낭을 원래 크기로 되돌렸다.


"침낭이에요. 어, 음…저는 밖에서 잘 테니까, 아멜리아가 여기 있는 침대를…오, 이런."


뉴트는 지난 밤 눈두에 관해 열심히 작성했던 메모들이 의자며 침대 위에 널부러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재빨리 지팡이를 흔들었다. 아무렇게나 흩어져있던 노트며 종이조각들이 얌전히 제자리를 찾아갔다.


"여기 있는 이 침대를 쓰면 될 것 같아요."


지팡이를 갈무리한 뉴트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을 끝마쳤다. 아멜리아는 뉴트의 손에 들린 침낭과 침대를 번갈아 보다가 하지만, 하고 운을 뗐다.


"밖에서 주무시는 건…."

"아, 아니. 저는 할 일이 있거든요. 정말이에요. 얼마 전에 만난 레이, 그러니까 눈두에 대해서 아직 좀 더 알아볼 게 있고―"

"눈두…요?"


아멜리아가 미심쩍은 듯이 눈썹을 찡그렸다. 뉴트는 아마 그녀가 눈두라는 생물에 대해 모르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동부 아프리카에서만 발견 되는 희귀하고 위험한 생물인 것이다. 동물 관련 부서에서 일하는 것도 아닌 아멜리아가 알 리 없다고 생각했다.


"눈두라는 건 그러니까 굉장히 강하고 멋진…."

"눈두라니 그거, XXXXX등급이라 용이나 레시폴드와 동급이잖아요.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생명체 중 하나죠? 그걸 키우고 있어요?"

"아니,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아요…그러니까 내 말은, 적절하게 대처한다면 그렇다는 뜻이에요."


아멜리아는 파란 눈으로 뉴트를 의심하듯이 빤히 올려다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숨에는 독성과 질병이 깃들어 있고 한 마리로 마을 하나를 지울 수 있는 동물이 위험하지 않다니 대충 스캐맨더 씨의 기준을 알겠네요."


해그리드과였어.


아멜리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뉴트는 그 말의 의미를 전혀 몰랐지만 어쨌든 뭔가 욕 같다는 것만은 기민하게 알아차렸다.


"그 애들도 언제나 그러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위협을 느끼지 않으면 얼마든지 제어할 수 있는…그러고 보니 아멜리아, 눈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네요."

"그야…당신이 쓴 책을 통째로 외웠으니까요, 스캐맨더 씨."


당신이 쓴 책이라니. 뉴트는 새삼 아멜리아가 먼 미래에서 온 마녀라는 것을 깨닫고 멍한 기분이 되었다. 신비한 동물 돌보기가 N.E.W.T.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든가 그가 집필할 예정인 <신비한 동물사전>이 그쯤에는 호그와트의 교과서가 되어있다든가 하는 말은 이미 들었지만 생각할 수록 놀라운 일이었다. 게다가 그의 책을 통째로 외웠다니. 뉴트는 미리 감개무량해진 기분으로 아멜리아를 내려다보았다.


"아멜리아도 동물을 좋아하나요?"


보통 책을 한 권 통째로 외우고 다닐 정도면 그 분야를 굉장히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뉴트의 말도 일견 타당했다.


하지만 상대는 신비한 동물 돌보기 때문에 성적표에 단 한 개의 P를 허용하고 만 아멜리아 그린이었다.


"아니요. 전혀."


어쩐지 굉장히 쌀쌀맞아진 대답에 뉴트는 초라한 모습으로 헛간을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잠이 오지 않는다.


낮 동안 사막을 조금 헤매느라 몸은 상당히 피곤한 상태였는데도 정신은 지나치게 말짱했다.


하긴 이런 상황에 아무렇지 않게 잠을 청할 수 있는 건 어지간히 무딘 사람이거나 인생을 포기한 사람 정도일 것이다. 아멜리아 그린은 유감스럽게도 두 가지 중 어떤 경우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하아."


결국 이리저리 뒤척이던 아멜리아는 30분만에 포기를 선언하고 몸을 일으켰다. 벽에 등을 기대고 앉자 천장에 매달려 있는 동물 고기 덩어리의 기괴한 형태가 눈에 들어왔다. 어쩐지 묘한 냄새가 나더라니. 아멜리아는 이제 조금 질린 얼굴이 되었다.


대체 이런 곳에서 어떻게 지내는 거지?


호그와트 교재로 쓰일 정도의 책을 내려면 이 정도는 하고 살아야 하는 걸까. 아멜리아는 자신에게 오두막을 넘겨주고 모포를 든 채 밖으로 나간 남자의 얼굴을 떠올리며 혀를 내둘렀다.


뉴트 스캐맨더.


개구리 초콜릿 카드에서나 본 멀린 2급 훈장 소유자 할아버지가 아니라 서른살 전후의 어수룩해보이는 청년. 눈을 마주쳤다가 피했다가를 반복하기도 하고 어딘가 어정쩡한 팔자걸음으로 걸으며 오갈 데 없는 아멜리아에게 자신의 오두막까지 내어준 남자. 


아멜리아는 자신이 돌보는 동물들은 자극하지 않는 한 전부 위험하지 않으니 안심하라고 몇 번이나 말하면서 뒷걸음질 치다가 결국 문 위쪽에 뒷통수를 박았던 뉴트의 모습을 떠올렸다.


괴짜라고는 들었지만, 원래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그런 걸까. 아멜리아는 신비한 동물 교배 금지령까지 어겨가며 폭탄꼬리 스쿠르트인가 하는 괴상한 생명체를 만들어냈던 해그리드를 생각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눈이 뻑뻑하다.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아멜리아는 가만히 헛간의 나무벽에 기대어 높은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헛간 바깥의 어딘가에서 짐승이 낮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쉿, 착하지. 조용히 해 레이…."


낡은 나무벽 사이로는 한껏 숨죽인 뉴트의 목소리도 어렵지 않게 새어들어왔다.


"손님이 와있거든. 아멜리아는…음, 지금 굉장히 피곤하고 힘들 테니까 조금만 조용히해주자."


어린 아이를 대하는 것처럼 상냥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동물들에게는 저런 식으로 말하는 걸까. 아멜리아는 자신이 동물을 싫어한다고 대답했을 때 뉴트의 표정을 생각했다.


좀 더 확실히 말할 걸 그랬나. 사실은 동물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동물에게 미움 받는 거라고.


아멜리아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눈을 감았다.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밖에서 소근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면 잠들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먼 소리냐 지짜

Posted by 양철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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