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드림 전력

*주제: 밤공기

*신비한 동물 사전 뉴트 스캐맨더 드림

*해알못의 설정날조 및 설명충 주의

*시리즈물(예정)




미스 래번클로의 우울




아멜리아 그린은 우수한 마녀였다.


아멜리아는 모자가 머리에 채 닿기도 전에 래번클로를 외쳤던 학생답게 머리가 좋았고, 4학년에 재학 중이던 때에 N.E.W.T. 수준의 변신술을 거의 마스터하며 졸업할 즈음에 애니마구스가 되었다. 7학년 끝무렵에는 학년에서 톱으로 꼽히는 성적으로 호그와트를 졸업했고, 졸업과 거의 동시에 마법부에 들어갔다. 그녀가 늘 관심이 있었던 머글 문화유산 오용 관리과에 지원했을 때 이미 오러 사무국에서 일하고 있던 래번클로 출신의 선배는 제법 안타까워했다. 다만 아멜리아는 출세하고 싶은 욕심 같은 것이 매우 희박한 타입이었으므로 그의 안타까움은 그녀에게 아무 영향도 주지 못했다.


미스 래번클로 아멜리아 그린의 화려한 성적표에 O가 찍히지 않은 과목은 신비한 동물 돌보기 한 과목뿐이었다. <신비한 동물 사전>을 달달 외워 이론은 완벽하게 마스터했는데도 어째서인지 동물들이 전혀 따르지 않았던 탓에 유일하게 성적표에 P라는 글자를 찍었던 것이 그녀의 인생에 남은 유일한 오점이다.


성적이 나왔던 날 아멜리아는 혼자서 몰래 파이어위스키를 마시고 엉엉 울며 개구리 초콜릿에서 나왔던 뉴트 스캐맨더의 카드와 신비한 동물 사전을 대왕오징어가 사는 호수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사거나 빌려보지도 않았다. 아무도 모르는 그녀만의 비밀이자 흑역사였다.


어쨌거나 신비한 동물 돌보기에 전혀 재능이 없다는 점만 제외하면 아멜리아 그린은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한 마녀였다. 호그와트를 졸업한 직후인 사회초년생인데도 아서 위즐리 과장의 신임을 사, 그가 가짜 방어 주문가 부적 수사 및 압수국 국장으로 승진하게 되었을 때 스카웃을 권했을 정도로 훌륭했다. 물론 관심 있는 것은 비-마법적인 문화, 소위 말하는 머글의 물건과 마법적인 문화의 조합 뿐이었던 아멜리아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훌륭한 그녀의 인생이 예상대로 훌륭하게 흘러갔더라면 아마 아멜리아 그린은 어렵지 않게 마법부 제일의 한직인 머글 문화유산 오남용 관리과에서 안전하고 평화롭기 그지없는 삶을 영위해 나갔을 것이었다.


다시 말해, '태엽을 감지 않아도 제멋대로 거꾸로 돌아가는 이상한 괘종시계'를 수거하기 위해 나갔던 현장에서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안온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고쳐 말하자면, 그 괴상한 마법 물품의 갑작스러운 폭주에 휘말려 1926년 8월의 이집트에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지만 않았다면 아멜리아 그린의 인생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것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랬다.


래번클로가 낳은 머글 문화유산 오용 관리과의 기대주 아멜리아 그린은 현재 1926년의 이집트에 있었다.


그것도 아주 깔끔하게 두 개로 똑 부러진 지팡이와 함께.


자신의 처지를 떠올린 아멜리아는 복잡한 눈을 하고 자신의 손에 들린 옛 지팡이의 잔해를 내려다보았다.


"하…."


한숨을 내쉬어도 그녀가 있는 시간이며 장소가 바뀌거나 지팡이가 다시 붙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멜리아는 다시 마른세수를 했다. 발아래에서 이집트 사막의 모래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현실감 없게 들렸다.


사막이라니.


여행을 싫어하는 아멜리아는 어머니가 이집트 여행을 권유했을 때도 따라나서지 않았었다. 이렇게 자유 의지가 아닌 이유로 오게 될 줄 알았으면 미리 한 번쯤 와둘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어차피 자신이 가볼 수 있었던 이집트는 지금으로부터 적어도 70년은 지난 장소겠지만.


아멜리아는 낯선 별자리가 총총 수 놓인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다시 한 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평범한 타임터너로 인한 사고였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 이 정도로 먼 시간대로 날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태껏 본 적도 없는 괴상한 괘종시계가 그녀를 여기 이 시간대로 날려 보낸 뒤로 무슨 수를 써봐도 그녀가 있던 다시 시간대로 돌아갈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지팡이도 부러져서 아무런 마법도 쓸 수 없으니 달리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불행도 이런 불행이 없다. 조금만 더 운이 나빴더라면 그녀는 1926년 이집트의 사막 한가운데에서 바싹 말라 죽은 채 연고 불명의 시체로 발견되었을 것이었다.


그나마 이 스케일 큰 사고 중에서 다행이라고 할 만한 일은 한 가지…


"아멜리아? 뭐하고 있어요?"


가방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남자, 뉴트 스캐맨더를 만나 어찌어찌 목숨은 부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정도였다.


"아…스캐맨더 씨."


아멜리아는 급히 두 동강 난 지팡이를 망토 주머니에 쑤셔 박으며 뉴트가 가방에서 올라올 수 있도록 손을 뻗어주었다. 뉴트는 거절의 의미인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가방에서 훌쩍 호리호리한 몸을 꺼냈다.


"고마워요."


잡지도 않았으면서 뭘.


아멜리아는 빈손을 지팡이가 든 주머니에 집어넣으면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밖으로 나온 뉴트가 손바닥에 묻은 이상한 색의 진액 같은 것을 대충 닦는 것을 지켜보았다.


뉴트 스캐맨더.


그것은 남자의 이름이자 아멜리아 그린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책을 쓴 사람의 이름이었다.


개구리 초콜릿에 들어있는 카드에서나 봤던(그리고 언젠가 호수에 던져버렸던) 위인이 서른 살이나 될까 말까 한 젊은 모습으로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아무리 생각해도 잘 믿기지 않았다.


그것도 심지어 남의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하는…어딘가 못 미덥고 어수룩한 남자라니. 그의 가방 안에서 살고 있는 희귀한 동물들을 직접 보지 못했더라면 절대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긴 애초에 1926년의 이집트까지 날아온 것도 믿기 어렵지만, 이 남자는 어떻게든 믿어주었다. 아멜리아는 자신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먹을 것과 쉴 곳을 내어주었던 뉴트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 가서 사기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일 타입이었다.


"밤공기가 차요."

"네. 그러네요. 사막은 더울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코발트색의 세련된 여름용 망토는 사막의 밤을 버티기에는 너무 얇은 것 같다. 아멜리아는 체온을 잃어가는 팔을 손으로 몇 번 문질렀다.


"추워요?"

"네? 아. 조금요."


못 견딜 정도는 아니지만. 아멜리아가 덧붙이기도 전에 뉴트는 몸을 숙여 다시 가방 안으로 훌쩍 모습을 감추었다.


다시 혼자 남겨진 아멜리아는 자리에 쪼그려 앉아 멍하니 저 멀리 보이는 모래언덕의 능선을 눈으로 훑었다. 뉴트의 말로는 근방에 걸어서 갈 수 있는 마을은 없다고 했다. 과연, 눈으로 훑을 수 있는 위치에는 전부 모래뿐이다. 그 정도로 깊은 사막 한가운데인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국 도심지에 있었던 자신이 꿈만 같았다.


'마녀가 꿈만 같다느니 하는 약한 소리를 하면 안 되겠지만….'


아멜리아는 다시 주머니에서 두 동강 난 지팡이를 꺼내 들여다보았다. 월계수와 유니콘의 털, 9와 1/2인치. 호그와트에 입학하면서부터 쭉 함께였던 지팡이는 이제 두 번 다시 쓸 수 없게 되었다. 마법사 결투 중독자도 아닌데 빼앗은 남의 지팡이를 가지고 있을 리도 없고, 훌륭한 영국식 마녀인 아멜리아 그린은 지팡이 없이는 마법을 쓸 수도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프리카에서 마법을 배웠겠지만…어쨌든 지금은 마법을 쓸 수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마녀답지 않은 불안을 몇 마디 이야기한다고 해서 잔소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지금이라면 잔소리를 겸해서 찾으러 와줬으면 좋겠는데….


과연.


돌아갈 수 있을까.


70년에 가까운 시간 여행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자신의 일이 아니었더라면 마법 역사에 남을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아멜리아가 현재 겪고 있는 일이었다. 역사니 뭐니 태평한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는다. 동료들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마법은 쓸 수 없고, 어쩌면 평생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 시간에서, 혼자.


여기에 와서 만난 사람이라곤 뉴트 스캐맨더 뿐이다.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은 것뿐이니 뭔가 특별한 관계도 아니었다. 아멜리아가 여기에서 떠나면 뉴트도 곧 그녀를 잊어버릴 것이다. 이 시간대에 그녀는 정말 혼자였다.


아멜리아는 조금씩 덜덜 떨리기 시작한 손으로 주머니를 더듬어 다시 지팡이를 집어넣었다. 깊게 심호흡을 했지만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나 집에서 쉴 때 혼자인 것은 오히려 좋아한다. 하지만 이런 곳에, 이런 시간대에 혼자인 것은 무섭다. 평온하게만 살아온 아멜리아로서는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두려움이었다.


무릎에 이마를 댄 자세로 웅크려 혼자 덜덜 떨고 있던 아멜리아의 등에 무언가가 닿았다. 뒤를 돌아본 아멜리아는 자신의 등을 감싼 뉴트의 낡은 피콕 블루색 코트를 발견하고 입을 뻐끔거렸다.


"……."

"추우면 이거라도…."


뉴트는 여전히 시선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퍽 다정한 태도로 흘러내리려는 코트를 그녀의 어깨 위로 다시 올려주었다. 


"그리고 이거…."


뉴트가 가볍게 지팡이를 흔들자 가방 안에서 하얀 머그잔이 날아올라왔다. 무심코 받아든 머그잔 안에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음료가 가득 차있었다.


"마셔요. 따뜻하게 해줄 거예요."


아멜리아는 가만히 커다란 머그잔을 내려다보다가 조심스럽게 음료를 입에 댔다. 내용물은 아주 진한 핫초코였다.


"……."


낡은 코트도 뜨거운 음료도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마법 물품은 아니다. 그녀가 1926년에 있다는 사실도 변하지 않았고, 두 동강 난 지팡이도 그대로다.


하지만.

그런데도 어쩐지 그 온기가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하고 든든하게 느껴져서.


"……고맙습니다."


아멜리아는 속에서 울컥 올라오려는 눈물 같은 것을 애써 삼키면서 가라앉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별 말씀을."


뉴트는 옅은 주근깨가 송송 박힌 얼굴에 조금 미소를 띠면서 아멜리아의 옆에 몸을 구겨 앉으려다가 발을 헛디뎠다.


아멜리아는 그의 길고 마른 몸이 비틀거리는 것을 구경하다가 조금 웃었던 것도 같았다.







설명충 오져따...............................


Posted by 양철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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