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드림 60분
*주제: 초콜릿
*다이아몬드 에이스 타키가와 크리스 유우+미유키 카즈야 드림
*캐붕 주의..짧음
찾아가는 초콜릿 서비스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
크리스마스 이브와 더불어, 자고로 소녀에게 있어서는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 데이다. 사랑에 빠져 있는 소녀에게라면 더할 나위 없는 일생일대의 대사건. 심지어 좋아하는 사람이 초콜릿을 좋아한다면 더할 나위 없다.
다시 말해 나에게는 이미 지나가버린 크리스마스 이브보다 훨씬 중요한 날인 것이다. 선배들의 졸업까지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 찬스는 이제 거의 남지 않았으니 발렌타인 데이의 중요성은 몇 번을 되새겨도 모자라다.
"…그래서, 초콜릿을 일단 만들어 보긴 했는데."
이걸 어떻게 전해드리지.
크리스 선배가 학교에 있다는 사실은 안다. 지금쯤이면 교실에 있을 것도 안다. 그래서 일단 3학년 교실로 통하는 계단까지는 올라왔지만, 막상 선배를 마주할 생각을 하니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도무지 더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으으으."
어젯밤에 이걸 만들고 포장할 때까지만 해도 굳건했던 의지가 도무지 발휘되질 않는다. 만드는 단계에서 나의 에너지라는 녀석은 완전연소 되어버린 걸까. 도무지 중요한 때에 쓸모가 없는 물건이군.
어쨌든 오늘 물러날 수는 없단 말이야. 여자가 칼을 뽑았으면 야구공이라도 썰어야지.
오늘의 귀빈인 초콜릿 상자를 양손으로 신중하게 받쳐든 채로 심호흡을 했다. 뭐라고 말하면 좋지. 수제이긴 하지만 부담 갖지 말고 받아주세요? 완전 부담되는데. 오다 주웠다? 뭔 개소리야.
"여기서 뭐해?"
"으악?!?!"
가서 뭐라고 말하고 건네야 크리스 선배가 부담을 느끼지 않을지 시뮬레이션하던 중에, 누가 등뒤에서 말을 걸어와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깜짝 놀라서 돌아본 곳에 미유키가 안경 너머로 눈을 껌뻑거리고 있었다.
"깜짝이야."
"내가 더 놀랐거든?!"
갑자기 부르고 난리야. 벌렁벌렁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애쓰면서 눈앞의 상대를 노려보았다. 미유키는 뒤통수를 긁으면서 힐끔 내 품에 있는 초콜릿 상자와 계단 위를 번갈아 보았다.
"크리스 상한테?"
"…어."
내가 크리스 선배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딱히 비밀은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강제로 비밀이 아니게 되었다.
눈치 빠른 쿠라모치가 먼저 알아차리고 나에게 '크리스 선배 좋아하냐'고 물었던 것을 들은 마에조노가 큰 소리로 크리스 선배를 좋아한다고?! 하고 외치고, 그걸 들은 1학년의 사와무라가 스승님을?! 눈이 높으신데요!! 하고 그 대단한 목청으로 말하게 된 날부터 (아마도) 크리스 선배를 제외한 야구부의 전원이 아는 사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공연한 비밀이라 미유키 카즈야도 알고 있는 거지.
덕분에 마에조노 이하 2학년들은 한동안 내 빵셔틀 신세였지만, 아무튼 지금 생각해도 주먹이 운다. 징징징.
"크리스 상, 바쁘실 텐데."
"어?"
잠깐 마에조노를 떠올리며 분노를 삼키던 나를 현실로 다시 불러온 건 미유키의 목소리였다.
"뭐가 바빠?"
"잠깐 올라갔다 왔는데 뭔가 여학생들이 잔뜩 와서 계속 불러내던데."
"……."
크리스 선배가 인기가 없다고 하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잘생겼지 키 크지 머리 좋지 성격은…잠깐 갔었지만 이제 돌아왔지 아버지는 유명한 개그맨에 집도 부자고, 인기가 없을 요소가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니까.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이런 날 미유키의 입으로 전해듣고 싶지는 않은 정보였는데.
"올라갈 거야?"
아마 이 야구바보가 딱히 다른 의도로 한 말은 아니겠지만.
"…아니."
그래도 의욕은 사라졌다. 초콜릿 상자를 품에 안은 채 터덜터덜 교실로 돌아가는 길을 미유키가 따라왔다.
"미유키, 너 어디 볼 일 있는 거 아니었어?"
"딱히?"
"아 그래…."
저리 좀 가줬으면 좋겠다는 뜻이었지만 이 녀석이 알아들을 리가 없지. 푸, 하고 한숨을 쉬자 미유키가 옆에서 들여다봤다.
"그렇게 좌절할 일이야? 크리스 상이 인기 많은 건 이미 알고 있었잖아."
"아는 거랑 오늘 같이 결심한 날에 듣는 거랑은 다르다고."
"흐음."
"경쟁률 센 거 진짜 싫다아아."
어차피 사정 다 아는 사이에 딱히 하지 말아야 할 말도 없다. 투덜투덜 속에 있는 불만을 이야기하면서 걷는데 미유키가 불쑥, 이상한 말을 던져왔다.
"그러면 그런 거 신경 안 쓰이는 사람을 주면 되잖아."
"뭐를?"
"초콜릿. 예를 들면 오늘 의리 초코 한 개도 못 받은 나라거나?"
안경 너머의 얼굴이 씩 장난스럽게 웃는다.
"뭔 소리야. 단 것도 안 좋아하는 게."
내용물이야 어쨌건 얼굴이랑 피지컬만은 멀쩡한 미유키가 올해 들어 의리 초코 1그램 조차 받아챙기지 못한 건 작년부터 내내 쌩하니 '단 건 별로라서' 하고 여자애들의 초콜릿 러쉬를 죄다 거절해버렸기 때문이었으니 내 지적이 틀린 건 아니었다. 어차피 쉰 소리겠지만.
"하하."
애매한 얼굴로 웃는 미유키의 팔을 한 대 툭 치고서 헤어져 우리 반 교실로 돌아왔다.
결국 점심시간도 지나고 그 날 수업이 전부 끝날 때까지, 다시 3학년 교실로 향하는 일은 없었다.
"휴."
수업이 끝나고 가방을 챙기면서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초콜릿 상자는 다시 쇼핑백에 들어가 얌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건 그냥 내가 먹어치우거나 1학년 애들한테 몰래 한 조각씩 나눠주거나 해야 할 운명이지 싶은데.
발렌타인 데이 망했으면 좋겠다. 속으록 궁시렁대면서 가방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어."
교실 뒷문 쪽에 서있던 크리스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크, 크리스 선배?"
뭘 잘못 봤나 해서 눈을 비벼봤지만 역시 틀림 없는 크리스 선배였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아, 와타나베라면 아까 먼저―"
"와타나베를 보러 온 건 아니야."
"네? 그럼요?"
얼른 문 쪽으로 달려가 생각한 것 중에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이름을 꺼냈는데, 돌아온 말은 예상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오늘. 기다렸는데 와주질 않아서."
"…네?"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혼란의 도가니탕 속에서 입을 뻐끔거리고 있는데 크리스 선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초콜릿, 나한테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니?"
"………."
이거 혹시 환청인가? 꿈?
의심하면서 시선을 들었을 때, 마주친 눈이 상냥하게 웃고 있었다.
"헤…헤헤…."
스스로 입이 찢어지면 어떡하지 걱정이 될 만큼 웃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의식적으로 입꼬리에 힘을 줘서 웃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정신 차려 보면 다시 헤벌쭉한 얼굴이 되어 있어서 전혀 의미는 없었다.
"아까부터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아?"
"응? 아, 아니야 아무것도!"
유이의 물음에 다시 얼굴 근육 고나리에 들어갔지만 이미 늦은 것 같다. 옆에 있던 사치코가 눈을 좁히면서 헤에, 하고 흥미로운 듯이 눈을 빛냈다.
"혹시 오늘 크리스 선배랑…."
크리스 선배의 이름이 나오는 바람에 괜히 얼굴에 열이 올랐다. 히죽히죽 웃는 얼굴을 이제 어쩔 도리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이와 사치코가 꺅! 하고 비명을 질렀다.
"진짜로?"
"축하해!!!"
"자세히 얘기해봐!"
"아니, 별 건 아닌데…."
사치코의 재촉에 우물우물 입을 열어 아까 크리스 선배가 우리 반 교실까지 찾아와서 초콜릿을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말하면서도 가슴이 뻥 터질 것 같은 게 행복사라는 걸 한다면 딱 오늘 같은 기분일 때 하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부터 크리스 선배랑 사귄다."
유이와 사치코에게 전부 털어놓고 나서는 어떤 의미에선 오늘의 일등 공신인 미유키에게도 달려가서 자랑해뒀다.
"오늘 주려던 애들은 많았는데 다 거절했대. 괜히 겁 먹었어 그치?"
"…헤에."
미유키는 들으면서 이쪽을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표정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너무 행복해서 그런 건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나 어떡하지? 진짜 너무 좋아서 둥둥 떠다닐 수 있을 것 같은데!"
그제서야 미유키가 뒤를 돌아보았다. 땀에 젖은 얼굴에 평소 같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잘 됐네. 축하해."
축하의 말을 전하는 목소리도, 평소와 다를 건 없었던 것 같다.
"아참. 아까 부원들한테 우리끼리 의리 초코 돌린 거 받았어? 초콜릿 받고 싶다며."
"아아. 그거."
"단 것도 싫어하면서 웬 일이야. 급하게 하나 더 챙겼잖아."
먼저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미유키의 뒤를 따라 걸었다. 미유키는 뒤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아니, 이제 필요 없어졌어."
대답은 평온했다.
ㅇㅅㅇ...미유키....너를 나름대로 조아해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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