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전력
*주제: 함박눈
*하이큐!! 오이카와 토오루 드림
*중학교 2학년 시점.
*노잼 주의...캐붕 주의....
하늘에서 내리는 백억 개의 눈송이
오이카와 토오루에게는 소꿉친구가 있었다. 길다고 하면 긴 십하고도 몇 년의 인생 전반에 걸쳐, 친구가 아니었던 기간이라고 하면 싸우고 절교를 선언했던 2주일이 전부일 정도인 여자아이.
두 사람의 인연은 엎어지면 코닿을 데에 있는 두 집에 만삭의 임산부가 각각 한 명씩 입주한 데에서 시작되었다. 이웃의 운명은 산후조리원에서 바로 옆의 침대를 쓰거나 누가 보면 쌍둥이로 착각할 정도로 비슷한 아기 커플룩을 입고 걸음마를 배우거나 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같은 유치원-소학교-중학교까지 이어졌다.
그야말로 만화적인 이야기였다.
"토오루 토오루 토오루!! 야 빨리 빨리 와봐!!"
"왜? 무슨 일 있어?"
덕분에 오이카와 토오루는 씻는다며 방으로 돌아간 소꿉친구의 비명에 가까운 다급한 부름에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려가서는,
"불 꺼줘."
"……."
"그리고 겸사겸사 꺼져줘."
"……야!"
눈썹을 꿈틀거리면서도 결국 불을 꺼주고 방문을 닫아주고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신세가 되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그야말로 만화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이카와 토오루가 소꿉친구를 혼자서 좋아하고 있다는 점까지 포함해서.
오이카와 토오루는 자신이 언제부터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확신하지는 못했다.
어쩌면 유치원 시절 골목대장으로 군림하며 남자아이들도 전부 때려눕히던 터프함을 좋아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둘이서 모험을 떠난다며 씩씩하게 길을 떠났다가 결국 모르는 동네에 도착해버렸을 때 울먹거리는 자신의 이마에 박치기를 먹이며 울지 마! 하고 일갈했던 대장군적인 면을 좋아하게 된 것일 수도 있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오이카와와 그녀가 서로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놀리던 남자아이에게 힘차게 가운데 손가락을 세워보이던 갱스터적인 면모를 좋아하게 된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어느 쪽이건 취향 이상하지만.'
오이카와는 이 첫사랑의 시작점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자신의 취향에 냉정한 평가를 내릴 수는 있었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첫사랑 소꿉친구가 세간에서 말하는 '귀여운 여자애'라고는 말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알고는 있었다. 다만 알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그 귀엽지 않은 여자애를 좋아하고 있었으니 아는 것도 전혀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아는 것은 힘이 아니었다. 적어도 오이카와 토오루의 첫사랑에 한해서는.
'어쩌다 얘를 좋아하게 됐을까.'
오이카와는 옆에서 씩씩하게 걷고 있는 소꿉친구를 힐끔 내려다보고 푹 한숨을 내쉬었다.
"휴."
"뭐냐, 너. 한숨이 불량하다? 반항기?"
"아니거든요."
남의 속도 모르고.
오이카와는 입을 댓발 내밀고 삐죽대며 귀엽지 않은 소꿉친구를 훌쩍 앞질러 걸어가기 시작했다. 소꿉친구는 웬만한 남자아이 뺨치게 터프하기는 했으나 신장은 일본 여중생 평균을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몇 발자국도 걷지 않아 한참 뒤처졌다. 별로 급하게 따라오는 기색도 없는 것이 못내 속상하다. 오이카와는 결국 다시 발걸음 속도를 슬쩍 늦췄다.
"토오루. 어제 내가 푸딩 다 먹어서 아직도 삐쳤냐?"
"……."
아니거든.
"미안하다니까. 용돈 받으면 초코 파르페 사줄게."
뒤를 따르며 종알종알 떠드는 목소리가 기꺼운 것이 또 못내 자존심 상한다. 오이카와는 뒤를 돌아보고 싶은 충동을 애써 억누르고 있다가, 소꿉친구가 자신의 가방 끈을 잡아채 당겨올 때가 되어서야 못 이기는 척 알았다고 대답했다.
"친구가 쿠폰 줬는데 메론 소다 1+1 해준대. 그것도 먹자."
"그리고 그리고 한국식 빙수도 파는데 완전 맛있다고―"
종종 거리며 옆을 따라오는 여자아이의 동그란 이마에 하얀 눈송이가 내려앉았다.
"아, 눈 온다."
그렇게 말한 순간 거짓말처럼 눈송이가 굵어졌다. 오이카와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 갑자기 함박눈을 쏟아내는 저녁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게 올해의 첫눈이던가? 생각에 잠겨있던 오이카와는 옆에서 불쑥 시야로 들어온 빨간 3단 우산을 엉겁결에 받아들었다.
"우산 없지? 니가 들어."
"……."
지난 여름,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같이 우산을 받쳐들고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아직 좋아한다는 걸 깨닫기 전이었지만.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 클래스메이트가 장난스럽게 둘이 사귀냐? 하고 물었었고, 소꿉친구는 화사하게 웃는 얼굴로 말했었다.
'빵 먹을래? 죽빵.'
음, 무서웠지.
오이카와는 무심코 부르르 떨리는 몸을 다잡으며 작은 우산을 펴들었다. 좁은 우산 아래로 기다렸다는 듯이 들어온 작은 어깨가 팔에 살짝 닿았다.
"……."
이상하다. 이 정도 접촉은 별것도 아닌데. 우산이 너무 좁아서일까, 왠지 심박수가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춥다! 빨리 집에 가자."
"어? 어."
공연히 시선을 돌려 우산살의 갯수를 세던 오이카와는 씩씩하게 앞서 걸어가는 소꿉친구의 머리 위로 우산을 대령하며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하얗게 번지는 시야에 빨간 우산의 끝자락과 소꿉친구의 검은 머리카락만 선명했다.
'이래서…순정만화에 그렇게 같이 우산 쓰고 가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 건가봐.'
자기 자신의 숨소리가 들릴 것 같다. 시야에 걸리는 우산살의 갯수를 다 센 오이카와는 이제 자신의 입김을 대단히 흥미로운 듯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눈은 늘 오는데 늘 기분이 이상하지."
옆에서 들리는 말에 속마음을 꿰뚫린 것 같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뭐, 뭐, 뭐가!"
심장이 쿵 내려앉는 줄 알았다. 당황하는 목소리를 들켰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옆에서 올려다보는 커다란 눈과 시선이 마주치는 바람에 심박수가 끝간 데 없이 올라간다.
'우, 우와.'
발갛게 달아오른 뺨을 한 소꿉친구는 오이카와를 향해 예쁘게도 웃었다.
'설마. 이 분위기는. 아니 설마 순정만화도 아니고! 그럴 만한 전개가 있었나?!'
뻣뻣하게 긴장한 오이카와가 입으로 심장이 튀어나올 듯한 것을 간신히 참으며 조심스럽게 입술을 뗐을 때,
"있잖아, 나…."
소꿉친구는 커다란 눈으로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솔직히 하늘에서 쓰레기 내리는 것 같지 않냐?"
"……………아."
"엄청 쌓일 것 같은데 저걸 언제 다 치워."
"…………………………."
소년의 풋풋한 첫사랑에는 유감스럽게도,
오이카와 토오루의 인생은 순정만화가 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짧은 > 하이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이큐/드림/오이카와 토오루] 시선의 끝 (2) | 2015.05.02 |
---|---|
[하이큐/드림/카게야마 토비오] 조금 이른 후회 (2) | 2015.03.22 |
[하이큐/드림/쿠로오 테츠로] 깨어나라 흑역사 (0) | 2015.03.21 |
[하이큐/드림/스가와라 코우시] 한국인의 매운맛을 쬐끔만 맛보거라 (1) | 2015.03.01 |
[하이큐/드림/오이카와 토오루] 짝사랑 (0) | 2015.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