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토 미오가 아카시 세이쥬로를 처음 본 것은 중학교 1학년, 4월의 어느 날이었다.
입학식 직전 사고를 당해 금이 간 다리로 목발을 끌고 학생회실로 향하던 미오를 보고 그가 물어왔다.
"도와줄까?"
그녀에게는 처음 보는 사람이 그렇게 물어오는 것이 아주 생소한 경험이었다. 어어, 하고 말을 버벅대는 미오를 보고 소년은 친절하게 손을 내밀었다.
"가방 이리 줘. 어디로 가?"
"하, 학생회실…."
"우연이네. 나도 같은 곳으로 가고 있거든."
얼결에 가방을 건네는 사이 손끝이 스쳤다.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학생회?"
"어, 으응…. 저기, 너도 학생회야?"
"응. 그러고 보니 자기 소개가 아직이었네."
소년이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1반의 아카시 세이쥬로야. 잘 부탁해."
그의 등 뒤로 열린 창에서 벚꽃잎이 날아들어 어깨 위로 팔랑 내려앉았다.
사토 미오가 첫사랑을 시작한 순간이 있다면 바로 그때였을 것이다.
"새로운 사람이 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게 너일 줄이야. 놀랐어."
"하하…."
기억 속의 소년은 훌쩍 어른이 되었다. 그만큼의 세월이 지났다는 건 알고 있었다. 미오도 비슷하게 나이를 먹었다. 적어도 굳이 중학교 시절의 기억을 들춰낼 필요가 없을 정도로는.
이건 중학교 시절 첫사랑이 아니라 고용주다. 자기세뇌를 반복하는 미오와는 달리 맞은 편의 아카시는 평온하기 그지 없었다. 미오는 애써 미소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아카시의 코와 미간 사이의 어딘가로 시선을 방황시키다가 찻잔을 들여다보기를 반복했다.
"아카, 아니, 도련님."
무심코 학생 때 부르던 대로 부를 뻔해서 얼른 호칭을 고쳤다.
"굳이 그렇게 부를 건 없어. 편하게 불러."
그렇게 말해도 이제 막 고용살이를 시작한 입장에서 편하게 부를 수 있을 리 없다. 애매하게 웃는 미오를 보고 그가 씁쓸한 듯이 웃었다.
"역시 어렵겠지."
다행히 그도 이해하는 모양이었다. 미오는 속으로 안도했다가,
"미안해. 이미 봤겠지만…이 저택엔 내 또래의 사람이 없어서 내가 좀 조급하게 굴었나봐."
어딘가 처연하기까지 한 표정에 약간 마음이 아파졌다. 이렇게 큰 집에 그렇게 사람이 많은데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또래는 한 사람도 없다니. 외로운 걸까. 외로움이라면 요 몇 년 새 미오도 사무칠 만큼 잘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외면할 수 없었다.
"그, 그럼…다른 사람이 없을 때만이라면…. 아카시 군."
미오의 말에 아카시가 웃었다.
"정말? 기쁜데."
조금 속은 기분도 들었지만….
"둘이서만 있을 시간을 종종 가져야 하나?"
장난스럽게 말하면서 웃는 얼굴에 어쩐지 먼 옛날의 기억이 겹쳐서, 미오는 그냥 웃고 말았다.
그 뒤로 두 사람은 짧게 대화를 나눴다. 그다지 대단할 것 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였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가볍게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았기 때문에 말을 아꼈지만, 그래도 의외로 대화는 즐거웠다. 상대가 여유롭게 대화를 잘 이끌어가는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떤 식으로 화제를 돌려도 주저하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미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미국에서 온 스트리트 농구 팀과 기적의 세대가 경기하는 것을 보러 간 적이 있다는 말을 했을 때는 아카시도 조금 놀란 얼굴이 되었다.
"정말? 전혀 몰랐는걸."
"사람이 많았으니까 어쩔 수 없지."
"인사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게…."
그렇게 간단한 일일 리가 없다. 적어도 사토 미오에게는 그랬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만 해도 그와 다시 만나서 즐겁게 대화할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해본 적도 없었는데. 아니, 평범하게 이야기 할 수는 있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이상한 기분이었다.
역시 아무리 사정이 급했어도 여기에 오는 게 아니었는데.
미오는 씁쓸한 웃음을 애써 숨기며 손 안의 고풍스러운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벌써 이런 시간이네."
"아."
아카시의 말에 시계를 보니 어느 새 늦은 밤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각이 되어 있었다. 미오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찻잔을 부엌에 가져다두어야 할지 망설이는 것을 알았는지 그가 미오의 손에서 찻잔을 받아갔다.
"그냥 둬. 내가 치울 테니까. 그보다 숙소에 살지? 방까지 데려다줄게."
"아, 아니야. 괜찮아. 어차피 같은 저택 부지 안이고…."
손을 내젓자 아카시는 아쉬운 듯이 문 옆으로 한 발 물러났다.
"정원은 어두우니까 길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
"응, 고마워. 그럼…."
미오는 아카시에게 인사를 남기고 방을 나섰다. 등을 돌리려던 차에 가볍게 손끝을 붙잡혔다. 그녀는 깜짝 놀라 손을 붙잡힌 채 아카시를 돌아보았다.
"사토."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어쩐지 달콤하다고 느낀 것은 착각이었을 것이다. 붙잡힌 손을 문지르듯이 간지럽히는 단단한 손가락의 감촉도 어쩌면 착각이었을지 모른다.
"너를 다시 만나게 되어서…정말 기뻐."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웃는 얼굴은 착각이 아니었다.
"다시 한 번 잘 부탁해."
미오는 문득 그의 등 뒤에 벚꽃이 피어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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