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드림 60분
*주제: 축하해
*원피스 ASL/에이스 드림
*노잼 주의 의미불명 주의
축하해
섬이 가까워졌다. 시야에 들어오는 봄섬의 푸른 실루엣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제 곧이다.
네가 있는 섬이.
"……이런."
손 안에서 꽃다발의 포장지가 바스락거리며 구겨졌다.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보라색 제비꽃의 꽃잎을 주워 모았지만 바람에 팔랑거리며 날아가버리고 만다. 보라색 조각들은 곧 뱃머리에 부딪혀 일어나는 하얀 포말 사이로 흘러들었다.
에이스.
입 안에서 너의 이름을 굴려보았다.
수백 수천번도 더 불렀을 이름인데도 껄끄럽기 짝이 없어서 입 밖으로는 꺼내지 못하겠다.
"그런데, 앤 씨. 왜 하필이면 보라색 제비꽃인가요?"
"이거요?"
동행의 물음을 따라 품안의 꽃을 내려다보았다.
"…글쎄, 왜였더라."
에이스.
다시 천천히 그 이름을 떠올린다.
나는 다시 아주 천천히, 너를 생각했다.
"앤은 생일이 언제야?"
책에 코를 박고 활자들 사이의 세계를 유영하던 나를 현실로 불러들인 것은 루피의 목소리였다.
"생일?"
"응! 에이스는 1월 1일, 사보는 3월 20일이래. 에이스가 자기가 더 형이라고 해서 사보랑 싸웠어. 히힛."
묻지도 않았던 의형제들의 신상정보까지 탈탈 털어내며 히히 개구쟁이 같은 얼굴로 웃는 루피의 얼굴에 묻은 먼지를 닦아내주며 생각에 잠겼다.
생일.
생일이라.
"글쎄…생각이 안 나는 걸."
농담도 아니고 말을 돌리는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기억 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내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니까. 어느 순간인가 다단의 산채에서 눈을 떠 주근깨 소년과 눈이 마주쳤던 것부터가 내 기억의 시작이다. 그 이전의 일은 뇌리에서 씻은듯이 깨끗하게 지워져나가 이름이나 나이, 살았던 지역 같은 것도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앤이라는 이름은 에이스가 붙여준 임시 이름 같은 것이었다. 원래 이름이 기억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으니 슬슬 임시에서 영구로 고정해야 할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러니까, 나는 두 달쯤 전에 근방에서 활동하는 악당들의 커다란 짐꾸러미 속에서 발견되었다는 모양이다. 밧줄로 손발목을 묶이고 입에 재갈이 물려진 채로 기절한 상태로 커다란 자루 속에 있었다고 하니까, 인신매매 당할 예정이었던 게 아닐까. 보물인 줄 알고 빼앗아온 에이스와 사보가 어쩔까 고민하던 사이에 루피가 데려가자! 하고 외쳤기 때문에 구조되었으니, 가장 큰 생명의 은인은 세 사람 중에서도 루피인 셈이다. 물론 눈을 떠서는 자기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백치처럼 굴었던 열 몇살의 여자애를 도와준 세 사람 모두에게 고마워하고 있다.
"루피, 앤은 아무것도 기억 못한단 말이야. 생일을 기억할 리가 없잖아."
옆으로 다가온 사보가 루피의 머리를 누르면서 나에게 미안하다는 듯이 눈짓을 했다. 사보는 셋 중에서 아마 제일 섬세하고 상냥하지 않을까. 나에게 기억이 없다는 사실을 나보다도 더 신경 쓰는 것 같다. 나는 웃으면서 사보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그치만 앤, 생일이 없으면 축하해줄 수가 없잖아!"
"하하. 그러네. 어쩌지."
불퉁하니 부풀어오른 루피의 볼을 쿡 찌르면서 웃었다.
"그럼, 오늘을 생일로 할까."
"에? 그래도 되는 거야?"
"어차피 전부 잊어버렸으니까 상관없지 않을까? 오늘로 하지 뭐."
루피가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는 생일이라는 것의 존재도 잊고 있었으니 오늘을 생일로 삼아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내 생일을 오늘 탄생시켰으니, 생일의 생일이라고 해도 좋을까.
"히힛! 그럼 앤, 생일 축하해!"
"고마워."
답싹 안겨드는 루피를 마주 안아주었다.
"흠흠, 그렇게 대충 정해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생일 축하해, 앤."
사보는 모자를 벗어 가슴께에 대며 꼬마 공자님처럼 축하인사를 건네왔다. 품안에서 내 머리카락을 한웅큼 잡아 장난을 치는 루피와는 확연히 대조되는 태도였다.
"사보도 고마워."
급조한 생일이기는 하지만 축하를 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나는 짐짓 과장된 태도로 무릎을 굽히며 사보에게 답인사를 돌렸다.
"…둘이 뭐해?"
사보와 내가 웃으면서 서로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사이, 에이스가 돌아왔다. 괴상한 것도 다 본다는 듯이 인상을 찡그린 채 나와 사보를 번갈아 보는 에이스에게 루피가 소리 높여 외쳤다.
"에이스! 앤은 오늘이 생일이래!"
"뭐? 앤, 너 아무것도 기억 못하는 게."
"어차피 모르니까 오늘로 정했어! 내가 첫번째로 축하해줬어!"
루피가 히히히 하고 소리 높여 웃으면서 방을 빙글빙글 돈다. 에이스는 구겨진 미간에 힘을 더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진짜야?"
"오늘이 생일인 거? 응. 진짜. 방금 정했어."
"아니, 그거 말고…아 씨."
"?"
"금방 올 거니까 너 여기서 딱 기다려!"
에이스는 그 말을 남기고 방을 뛰쳐나갔다.
"에이스!"
소리 높여 불렀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나가버리는 에이스를 보고 사보에게 도움을 청하는 시선을 보내자, 사보가 어깨를 으쓱하며 모자를 다시 썼다.
"사보."
"금방 오겠지. 본인 입으로 그랬잖아."
"그래도…."
"괜찮아. 근방에 에이스한테 이길 녀석은 없다구."
"……."
어쩔 도리도 없이 에이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잠시 뒤 루피는 어린애답게 낮잠에 들었고, 사보는 먹을 것을 잡아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에이스도 사보도 괜찮을까.
자꾸만 이불을 걷어차는 루피에게 다시 이불을 덮어주며 걱정에 잠겨있던 때에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머리에 나뭇잎을 매단 에이스였다.
"에이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에이스에게 다가가자, 에이스는 방구석으로 시선을 돌리며 뒤로 감추고 있던 손을 내밀었다.
"자. 이런 것밖에 못 찾았지만…."
"어?"
흙으로 지저분해진 에이스의 작은 손에는 보라색 제비꽃 몇 송이가 들려있었다.
"아, 안 받고 뭐해?"
나는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에이스의 손에 들린 제비꽃을 받아들었다.
"흠, 흠. 새, 생일 축하해."
어지간히도 부끄러웠던 듯 떨리며 나온 목소리에 나는 결국 웃음을 터트렸고, 에이스는 새빨개진 얼굴로 방을 뛰쳐나갔다가 한참만에야 사보와 함께 돌아왔다.
그날부터, 보라색 제비꽃은 에이스와 나의 생일의 상징이 되었다.
"도착했습니다."
옛 추억을 떠올리던 사이에도 꾸준히 전진한 배가 곧 선착장에 멈췄다. 나는 배가 완전히 멈추기를 기다렸다가, 심호흡을 하고 뭍으로 발을 내딛었다.
"이쪽이에요."
동행의 안내를 따라 섬 안쪽을 향해 걸었다. 걸음마다 무게가 더해진다.
"여깁니다."
나는 거의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은 상태가 되어서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앤 씨, 안색이 안 좋아요."
"아니, 괜찮아요. 잠시 혼자 있게 해줄래요?"
"…알았어요."
동행이 멀어지는 기척을 확인하고서 깊게 호흡했다.
에이스.
다시 입안에 맴도는 너의 이름은 차고 딱딱하다.
[PORTGAS D ACE]
ACE, MAY YOUR SOUL BE ETERNAL.
YOUR BRAVE SOUL WILL BE WITH US.
그렇게 새겨진 대리석의 감촉처럼.
"………에이스."
막혔던 숨을 토해내듯이 네 이름을 불렀다.
너에게서는 대답이 없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품에 있던 제비꽃다발을 너의 앞에 내려놓았다.
에이스.
너의 스물 한 번째 생일을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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