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그 외
[쿠로바스/아오미네]제목음슴
양철인간
2012. 11. 18. 22:26
방학 동안 연성욕구 불타올랐던 기간이 있는데 그때 썼던 아오미네 루트가 될랑말랑한 얘기.
평범한 뻘글이네요.
2012년 6월 작. 드디어 올해 것이 나왔다!!!
[쿠로바스]아오미네 임뫄
"코하네쨩."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소학교 때부터의 친구가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코하네는 의식적으로 입꼬리에 힘을 주면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사츠키."
사츠키가 통통 튀듯이 걸어서 그녀에게 다가왔다. 언제 봐도 귀엽고 활기찬 아이다. 가끔 학생회의 남학생들도 모모이와 친하냐고 넌지시 물어오는 것도 이해가 갔다.
"어디 가? 오늘도 학생회 회의 있어?"
"회의는 아니고 정리해야 할 게 있어서."
"힘들겠다."
"늘 하는 일인데 뭐."
평범한 잡담을 나누며 계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코하네가 갈 학생회실은 한 층 위, 사츠키는 아래로 내려가 체육관으로 향할 것이다.
"그래서 다이쨩이 말이지."
재잘재잘 떠들던 중에 들린 이름에 무심코 움찔했다. 다이쨩. 다이키. 사츠키가 말하는 그 이름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아오미네 다이키. 농구부 소속의 농구 바보. 사츠키의 소꿉친구.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이 정도다. 사츠키라는 공통의 친구가 있다고는 해도 그냥 사츠키를 사이에 두고 마주치거나 아주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전부인 전(前) 클래스메이트. 간단히 말해서, 코하네와는 서로 마주치면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고, 깊지 않은 잡담을 나누는 정도의 사이였다.
농구를 좋아하고 키가 크고 피부가 까만 사츠키의 소꿉친구.
그것이 얼마 전까지, 에나미 코하네가 아오미네 다이키에 대해서 갖고 있던 생각 전부였다.
하지만.
"아, 다이쨩이다.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까만 피부의 소년이 사츠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입안이 마른다. 훅 숨을 들이쉬었다.
"알았다니까."
아오미네가 농구부와 관련된 듯한 잔소리를 늘어놓는 사츠키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잠시 눈이 마주쳤다. 먼저 시선을 피한 것은 코하네 쪽이었다.
"사츠키, 그럼 난 가볼 테니까."
"아. 응. 다음에 또 봐, 코하네!"
"응. 부활동 열심히 해. 사츠키……아오미네 군도."
부자연스럽지 않게 덧붙였을까. 확신할 수 없다. 꽉 막힌 목을 쓰다듬으며 빠르게 계단을 올랐다.
"―."
잠시 뒤를 돌아보았을 때, 아오미네가 자신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쩐지 등이 뜨거웠다.
코하네는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정확히 말해서 사귀었던 선배에게 차였다.
'너는…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른 것 같아.'
선배는 그녀에게 결별을 고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은 전에도 들은 적이 있다. 작년에 사귀었던 동급생도, 그녀에게 이별을 선언하면서 똑같은 말을 했다.
'내 생각하고 너무 다르다, 에나미.'
사귀고서 두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렇게 차였다. 그때 우울해 있었던 코하네를 상냥하게 달래준 것이 선배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를 줄 알았다.
…하지만 결국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어째서였을까. 어떤 부분이 생각과 달랐던 걸까. 나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다 했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남들 앞에서 우는 건 싫은데.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쳤지만 금세 다시 눈이 젖었다. 콧대를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다시 거칠게 닦아냈다.
"흑."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다. 두 손으로 다시 눈물을 닦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자리에 멈춰 섰다. 어딘가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 집에 가고 싶지 않아. 코하네는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눈물을 계속 훔치면서, 이번에는 발이 닿는 대로 걸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르겠다.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는 이미 아는 건물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거의 멈춘 것 같은 눈물을 다시 손으로 닦아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차도. 처음 보는 건물. 스트리트 코트가 있다. 역시 모르는 곳이다. 왔던 길을 되짚으려고 돌아서다가, 지나가던 사람에게 어깨를 부딪쳤다.
"아. 죄송합니다."
"―에나미?"
낮은 목소리가 이름을 부른다. 코하네는 놀라며 시선을 들었다가, 내려다보는 까만 얼굴을 발견하고 조금 더 놀랐다. 눈을 동그랗게 뜨자 아직 고여있던 눈물이 주륵 눈가를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져서 얼른 닦아냈다.
"아오미네, 군…."
아오미네 다이키. 사츠키의 소꿉친구가 약간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울어?"
특별한 의미가 담기지 않은, 아주 평범한 물음이었다. 오며 가며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정도의 사이에 맞는 정도의, 특별할 것 없는 물음. 아오미네도 반응을 원한 것은 아니고,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 물음을 듣자마자 다시 눈물이 났다.
"어, 어이?"
그 모습에 당황했는지 아오미네의 목소리가 조금 뒤집혔다. 코하네는 다시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 쓰지…마. 미, 안해…."
훌쩍, 훌쩍. 호흡이 달려서 말이 몇 번이나 끊긴다. 그녀는 어깨를 떨면서 멈추지 않는 눈물을 계속 손바닥에 떨어트렸다.
"아무것도 아닌 건…아닌 것 같은데."
아오미네가 곤란해하는 것이 귀로 들렸다. 더 이상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싫었기 때문에 눈물을 멈추려고 했지만,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몇 번이나 어깨를 떨면서도 꽉 입술을 깨물었다.
"그…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울지 마라."
"응…미안, 해."
후, 하고 한숨을 쉬는 기색을 느꼈다. 아무리 농구바보인 아오미네라도 눈앞에서 우는 여자아이를 내버려두고 갈 수는 없는 걸까. 눈물이 멈추지 않는 와중인데도 조금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
아오미네는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서툰 위로조차 없는 그 태도가 어쩐지 안심된다. 서서히 눈물이 멎었다. 몇 번 눈을 깜빡여서 눈물을 털어내고, 급한 대로 소매로 얼굴을 닦았다. 이제 멈춘 것 같다. 코하네는 새빨갛게 변했을 눈을 들어 아오미네를 올려다보았다.
"이제, 괜찮, 은 것 같아…."
"그러냐."
아오미네가 후, 하고 다시 한숨을 쉬었다. 코하네는 다시 어깨를 움츠리며 미안해, 하고 말했다.
"미안할 건 없고."
아오미네는 잠깐 뜸을 들이더니 대뜸 물어왔다.
"왜 울었냐?"
"………."
말해야 할까? 코하네는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차였어."
"흠."
"저번에…헤어진 남자친구랑 똑같은 이유로."
'너는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른 것 같아.'
그 말을 떠올리자 다시 가슴 한쪽이 뻐근하다. 다시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몇 번이나 호흡을 가다듬었다.
"나…말이야. 생각했던 거랑, 너무 다르대. 그래서 질린다…고."
몇 번이나 훌쩍이면서도 들었던 말을 털어놓았다. 아오미네는 조금 인상을 찡그린 채로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똑같은 말을 두 번이나 들으니까. 내가 너무 초라한 것 같아서."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는 것보다, 차였다는 것보다도 슬픈 것은 따로 있다. 코하네는 그들을 그녀 나름대로 좋아했고, 그들을 위해서 분명히 노력했다. 하지만 그 최선을 부정당한 기분이다. 노력이 초라해진 것 같아서, 그것이 무엇보다 슬펐다.
"엄청나게 좋아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노력했는데."
"아아…."
"…역시 나, 귀엽지 않지?"
아오미네를 올려다보면서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내려다보던 아오미네가 한 손을 코하네의 뺨에 대면서 대답했다.
"…아니."
"에?"
코하네가 눈물로 젖은 눈을 깜빡였다. 다음 순간, 아오미네의 숨결이 훅 가까워졌다.
"…!"
조금 버석한 입술의 감촉이 느껴진다. 이게 뭐지? 코하네는 놀란 눈을 깜빡였다.
"…코하네."
잠시 떨어졌던 입술이 속삭였다. 내 이름? 다시 어깨를 움찔했다. 곧이어 아오미네의 커다란 손이 코하네의 턱을 쥐고 입을 벌렸다.
―그것이 벌써 일주일 전의 일이다. 그 동안 아오미네와 몇 번 마주쳤지만, 간신히 평온을 가장하여 넘길 수 있었다. 긴장한 것은 들키지 않았을까? 그 일을 계속 떠올리는 것도 들키지 않았을까? 코하네는 입술에 닿았던 감촉을 떠올리며, 검지로 조심스럽게 자신의 입술을 쓰다듬었다.
…어째서였을까.
다시 생각해도 모르겠다. 아오미네가, 왜. 사흘 전에도 알 수 없었던 것을 이제 와서라고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푹 한숨을 내쉬었다.
"에나미 선배?"
같이 일을 처리하던 학생회의 후배가 부르는 소리에 다시 정신이 들었다. 코하네는 어색하게 웃었다.
"미안.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그런 것 같았어요…. 이제 이거 남았는데 이건 어떡해요?"
후배가 내미는 서류를 받아들면서 내용을 훑었다. 양도 수준도 코하네 혼자서 처리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건 내가 할 테니까 가봐도 돼, 코야마 군."
"앗! 정말요?"
"응. 이거라면 금방 끝날 테니까. 코야마 군은 오늘 급한 일 있다고 하지 않았어?"
"넷. 앗싸, 에나미 선배 짱! 그럼 저 먼저 갈게요!"
"응, 조심해서 가."
신나서 서류를 정리하고 가방을 챙겨 든 후배를 배웅했다. 늘 그렇듯 학생회실에 혼자 남겨진 코하네는 서류를 끌어당겨 들여다보면서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 아프다. 손가락으로 꾹꾹 관자놀이를 눌렀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후…."
한숨을 내쉬고 테이블에 엎드렸다. 조금만 쉬고 마저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고서 멍하니 눈을 깜빡거렸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셈이었는데 다시 아오미네가 떠올랐다.
"이게 아닌데."
쿵. 테이블에 이마를 박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얼른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는 게 낫겠다. 결심하고서 서류를 들었을 때, 누군가 학생회실의 문을 노크했다.
"누구지?"
이 시간에 찾아올 사람은 없는데. 지난번 부장회의 결과 때문에 어느 부의 부장이라도 왔나?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문고리를 잡았다. 천천히 당겨 열었다.
"아."
문 너머에, 예상밖의 인물이 서 있었다.
너무 놀라서 잠시 숨을 쉬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코하네는 곧 한숨처럼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아오미네 군…."
여기엔 왜? 잠시 생각했다. 누굴 찾으러 왔나? 두 가지 경우를 떠올렸다.
우선 농구부의 주장이자 학생회장인 아카시는 회의가 있는 날이 아니면 학생회실에는 잘 오지 않는다. 농구부 부장의 일이 바쁘기 때문이다. 학생회실에서 일을 처리하고 회장이 필요할 때에 농구부실을 찾아가는 일이 더 많다. 오늘은 농구부의 연습도 오프인 날이기 때문에 일찍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아니겠지.
그리고 아오미네의 소꿉친구인 사츠키. 사츠키는 종종 학생회실에 찾아와서 코하네와 이야기하곤 했다. 서기 겸 총무인 코하네는 학생회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멤버에 속했고, 때문에 학생회실에 있는 시간도 가장 길다. 사츠키는 농구부에 가지 않는 날이면 으레 학생회실로 찾아온다. 오늘 오지 않은 것이 오히려 특이한 일이다.
그러니 아마 사츠키를 찾으러 온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묘하게 머리가 아팠다. 코하네는 잠깐 숨을 죽였다가 천천히 아오미네를 향해 입을 열었다.
"사츠키라면 오늘은 여기 안 왔어."
"―걔 찾으러 온 거 아니야."
"에?"
그럼 왜?
아오미네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그의 표정은 조금 일그러져있었다.
"일주일이나 참는 것도 진짜 못할 짓이다."
"뭘―"
참는다는 거야.
채 묻기도 전에, 아오미네의 커다란 손이 다가와 코하네의 뒤통수를 붙잡고 끌어당겼다.
"…!"
뜨겁다. 그때와 같이 조금 버석한 입술의 감촉에 저도 모르게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