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바스/드림/아카시 세이쥬로] 첫사랑 프로비던스 -1
1.
일 하던 가게가 갑작스럽게 문을 닫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하는 미오에게 유학을 가겠다는 폭탄 선언을 던졌던 사장, 아니 전 사장은 미안하다는 의미로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봐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나만 딱 믿고 기다리라니까! 내가 미오 쨩 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진짜 좋은 걸로 알아봐줄게."
그녀도 딱히 그런 큰 소리를 완전히 믿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제대로 된 경력도 쌓지 못한 젊은 여자가 괜찮은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이리저리 동분서주하다가 실망하고, 다시 여기저기에 연락을 넣어보기를 반복한 것이 며칠.
드디어 사장이 '진짜 좋은' 일의 이야기를 전해왔다.
"…메이드…요?"
진짜 좋은 일이라더니?
미오는 얼굴 근육 관리에 실패해 대놓고 수상쩍다는 표정을 짓고 말았다.
"사장님. 전 그런…계열의 일은 좀…."
어떻게 생각해도 짧은 치마 유니폼 차림으로 어서 오세요 주인님♡ 오므라이스에 미오의 사랑을 듬뿍 얹어드릴게요♡ Shine♡ (참고: 명탐정 코난 톳토리 거미 저택의 불가사의 편) 같은 말을 하는 변종 카페 비슷한 그림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가본 적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미지가 그렇다. 정색을 하는 미오의 앞에서 사장이 얼른 손을 내저었다.
"아냐, 아냐. 그런 일이 아니고 진짜 메이드 일 말하는 거야. 저쪽 건너 동네에 있는 서양식 저택 알지? 거기서 오래 일한 집사랑 고등학교 동창이거든. 이번에 새로 일할 사람을 구하는 중이라고 하더라고. 알음알음 구하는 중이라는데 미오 쨩이 하겠다고 하면 내가 추천해줄게. 그 동안 우리 가게에서 성실하게 일해주기도 했으니까."
"건너 동네요? 아…."
물론 미오도 그 저택은 알고 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이 오히려 문제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알기론 그 저택 주인은 분명히….
"아카시 씨가 고용인에게 나쁘게 군다는 얘긴 들어본 적 없으니까…어때, 미오 쨩?"
"……."
역시.
생각했던 대로였다. 그 이름을 들은 이상 가볍게 좋다고 말하기는 망설여지는….
"연봉은 …정도라는데."
"…언제부터 하면 된다고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거의 모든 이들이 그렇듯 사토 미오도 돈의 노예였으므로, 비밀 이야기처럼 귓속말로 전해진 시급 앞에서 망설임 같은 건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저택이었다. 미오는 사장에게 소개 받은 집사님과 면접을 마친 뒤 정식으로 계약서를 쓰고 아카시 가의 메이드가 되었다. 숙식제공이라 집세도 식대도 아낄 수 있고, 유니폼 제공인데다 심지어 계약서에 명시된 연봉은 전해들은 것보다도 조금 높다. 당장 이래저래 마음의 여유가 부족했던 그녀에게는 아주 좋은 소식이었다.
얼마 되지 않는 짐을 옮겨 온 날은 다행히 '도련님'이 바빠서 집에 없다는 모양이라, 저택에 남아있던 엄격한 인상의 주인 어른에게만 인사했다. 바짝 긴장해서 인사하는 미오를 잠시 관찰하는 듯한 시선으로 보던 중년 남자는 곧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열심히 일하라는 말을 남겼다.
"휴우."
아들과는 별로 닮지 않은 것 같다. 자리를 벗어나서야 긴장이 풀려서 한숨을 쉬는 미오를 보고 집사가 다시 말을 꺼냈다.
"이제 유니폼을 줄 테니 이쪽으로 와요."
"아, 네!"
미오는 얼른 집사님의 뒤를 따랐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실물 메이드복을 단정하게 챙겨 입고 집사의 지시에 따라 아카시 저택의 선배 고용인들에게 인사했다. 첫날 일은 각오했던 정도로 고되지는 않았다.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저택에서 일했다는 대선배 오오하라 씨와 10년째 근속 중이라는 작은 선배 쇼우지 씨에게 일을 배우고 시키는 대로 심부름을 하는 게 전부였다. 미오는 선배들이 가르치는 대로 성실하게 따르며 일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이 통했는지 어떤지, 선배들은 미오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하루만에 속단하는 건 안 될 일이지만 어쩌면 잘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미오는 저녁을 먹으면서 이제 막 일하기 시작한 직장에 대해 생각했다.
조금 망설이긴 했지만 거절하지 않길 잘했다. 다행히 우려했던 사람을 만나지도 않았다. 이곳에서 일을 시작한 이상 평생 만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은 벌었다. 하긴, 만난다 쳐도 미오가 잘못한 건 없으니 피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중학교를 졸업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이다. 역시 하지 않겠다고 했으면 후회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도련님'이 돌아와서 얼굴을 보고 그 자리에서 바로 잘라버리려고 하진 않겠지. 식사를 마치자 불안한 상상이 다시 고개를 들었지만 다시 마음을 다독였다. 거기까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좀 못되긴 했지만. 어쨌든 집사님 말로는 내일은 되어야 돌아올 거라고 했고….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숙소로 돌아가던 미오의 귀에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설마. 아니겠지. 내일 온다고 했는데.
"어머, 도련님이 벌써 돌아오셨나?"
"도…련님이요?"
어쩌면 엄격해보이던 주인 어른에게는 아들이 하나쯤 더 있을지도 모른다.
미오는 도련님을 마중하러 가야겠다는 오오하라와 쇼우지의 뒤를 따르며 애써 긍정적인 생각을 했다.
"그렇지. 미오 쨩은 본 적 없겠구나. 세이쥬로 도련님은 마사오미 주인님의 외동아들인데…."
하지만 오오하라의 입에서 나온 이름이 행복회로의 숨통을 끊었다.
마음의 준비 할 시간이 전혀 없잖아!
미오는 절규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으며 이 집의 유일한 후계자가 어쩌고 명문대가 저쩌고 하는 오오하라의 설명을 열심히 듣는 척만 했다.
"그러고 보니 미오 쨩은 도련님과 나이가 비슷하겠네."
"하하…네…."
나이가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생일도 하루 밖에 차이 나지 않는 동갑이라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토?"
사토 미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확히 자신의 얼굴을 발견하곤 이름을 불러오는 이 집의 귀한 도련님과 같은 중학교, 그것도 같은 학생회 출신이었으니까.
왠지 요새 글이 잘 안 써져서 기분전환용으로..
정통로맨스입니다 아마도
전개상 중간에 수위..씬이..나오게 될 예정인데...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아무튼 미오의 이름은 한자로 美櫻라고 씁니다.
테이코 중학교-슈토쿠 고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