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바스/드림/아카시 세이쥬로] 내가 학생회장님의 개가 된 사건 -1
1. 후지사키 라이무가 학생회장님의 개가 된 사연(1)
16세, 여성, 고등학교 2학년 후지사키 라이무에게는 몇 가지 비밀이 있다.
첫번째, 중2병을 가장 심하게 앓았던 시기에 왼쪽 눈에 다른 인격이 봉인되어 있다는 설정을 남몰래 갖고 있었던 것.
두번째, 중학교 시절 좋아하던 선배를 위해 썼지만 보내지 못한 편지지 20장 분량의 러브레터가 아직도 방 한 켠에 잠들어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비밀로 해야 하는 세번째.
후지이 무라사키라는 필명으로 라이트노벨을 쓰고 있다는 것.
그녀는 성실한 학생이었으므로, 사회통념상 미성년자가 쓰기에 부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장르의 소설을 쓰는 것은 아니었다. 후지이 무라사키 작 <내가 학생회장님의 개가 된 사건>은 모든 면에서 완벽한 학생회장과, 그 회장의 비밀을 우연히 알게 된 평범한 학생이 학교의 소동을 해결하고 사건의 비밀을 파헤친다는 내용의 학원물 로맨스코미디다. 시장의 니즈에 따라 살짝 빻은 테이스트가 가미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건전하다는 평을 듣고 있으며, 덕분에 굉장한 대인기까진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팔렸다.
거기까지는 그다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비밀은 아니다. 들킨다고 해도 부끄럽고 끝날 일이다. 하지만 라이무는 적어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될 때까지는 자기 작품에 대해 한 마디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덕밍아웃이라든가 수치심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는 보다 심도 깊고 복잡한 사연이 얽혀 있다.
<내가 학생회장님의 개가 된 사건>, 통칭 <회장개>에 등장하는 학생회장 캐릭터의 모델이 된 사람에 관련된 일이었다.
문제의 학생회장 캐릭터란 이렇다. 입학 시험부터 전과목 만점으로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고, 학생회장에 검도부 주장을 겸하는 문무겸비의 완벽초인인데다 집은 부자, 본인의 미모는 칭찬하기가 입이 아플 정도고 대단히 카리스마가 있으며 주변의 신뢰가 두텁다.
그런 장점과 잘난 점을 모두 한 데 모아서 만든, 현실에 있어서는 안 될 캐릭터지만 놀랍게도 이 학생회장에게는 실존하는 모델이 있었다.
MSG가 부족한 것 같은 느낌에 중학교 이후로 도무지 포기할 수 없었던 오드아이 이중인격자에 중2병 설정도 적당히 끼워넣었지만, 그런 장르적 과장을 제외하고도 확실히 그녀가 두 눈으로 관찰할 수밖에 없었던 모델이 바로 근처에 존재했다.
아니 아주 정확히 말해서…
"응? 후지사키 상."
…지금 바로 눈앞에 있었다.
1학년 때부터 학생회장에 농구부 주장, 입학시험부터 내내 전과목 만점으로 수석인데다 농구로는 중학교 때부터 전국대회 우승 경력자에 명문가 도련님, 거기에 말이 필요 없는 동안의 미소년인 클래스 메이트.
학생회장에 전교 수석에 농구부 주장까지 겸임하는 리얼충이 적당히 팔리는 수준의 라이트노벨에 관심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해서 마구 모티브를 따왔다. 캐릭터를 구상하던 시절의 라이무는 아주 제정신이 아니었으므로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그에게서 학생회장 캐릭터를 만들어내 라이트노벨에 등장시켰다.
그 시절의 라이무는 총체적으로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설마 본인에게 들키는 날이 올 거라곤 조금도 상상해보지 못했다.
라이무는 입만 뻐끔거리면서 눈앞의 남학생을 올려다보았다.
"아, 아, 아카시 님…."
라쿠잔 고교에서는 주로 '아카시 님'으로 통하는 바로 그 사람.
"그 호칭에는 좀 거리감이 느껴지네. 나도 후지이 작가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재미 있었어."
<내가 학생회장님의 개가 된 사건> 1권을 한 손에 든 채 우아하게 웃고 있는 남학생.
"여자 주인공인 학생회장이 아주 인상깊던데."
아카시 세이쥬로가 바로….,
후지사키 라이무가 선택한 '여자 주인공'의 모델이었다.
제목은 이렇지만 그렇게 불온한 내용은 아닐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