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신동사: 후플푸프 씨와 래번클로 양

[신비한 동물 사전/드림/뉴트 스캐맨더] 미스 래번클로의 고백

양철인간 2016. 12. 16. 00:22

*평일 드림 전력

*주제: 따뜻한 손

*신비한 동물 사전 뉴트 스캐맨더 드림

*드림주 이름 및 세부설정 있음

*시리즈물 4편




미스 래번클로의 고백




새벽녘에야 얼핏 선잠이 들었던 아멜리아를 깨운 것은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똑똑.


나무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아멜리아는 반쯤 비몽사몽 한 상태로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누가 왔나?

지금 몇 시지?

출근해야….


"…아."


멍한 머리로 제법 직장인다운 생각을 하는 중이던 아멜리아는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동물 고기와 눈이 마주친 뒤에야 자신이 어느 허름한 오두막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출근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사실은 걱정하는 의미가 없다는 쪽이 옳았다.


여기는 출근할 수도 없는 1926년, 뉴트 스캐맨더의 가방 속이었으므로.


선잠이나마 자고 일어난 보람이 없게 상황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머글 동화처럼 자고 일어났더니 전부 꿈이었다는 결말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멜리아는 피곤한 눈으로 오두막 천장을 한 번 올려다보며 마른 세수를 했다. 


똑똑.


아멜리아의 잠을 깨웠던 소리가 다시 난 것은 그때였다.


"아멜리아? 아직 안 일어났나…."


뉴트 스캐맨더의 목소리가 문틈을 타고 넘어왔다. 아멜리아는 얼른 침대에서 내려와 벗어둔 신발에 발을 구겨 넣었다.


"스캐맨더 씨."


문을 밀어 열자 그 앞에 어제와 똑같이 셔츠 차림에 부스스한 머리를 한 뉴트가 서 있었다. 뉴트는 미소인지 뭔지 모를 것을 지어 보였다가 시선을 아멜리아의 어깨너머로 옮겼다.


"좋은 아침이네요, 아멜리아. 아침부터 미안하지만…제 동물들의 먹이가 안에 있어서요."

"아, 네."


아멜리아는 얼른 뉴트가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문쪽으로 비켜 섰다. 안쪽에서 뉴트가 분주하게 고기를 자르거나 사료를 통에 퍼담는 동안 아멜리아는 오두막 바깥을 구경했다. 구석구석에 걸린 확장 마법으로 한없이 넓어진 가방 한구석에서 보라색 프우퍼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커다란 쇠똥구리를 보고 슬쩍 오두막 안으로 한 발을 더 들여놓았다.


대체 얼마나 많은 마법을 건 걸까.


그녀는 멀리에서 펄럭거리는 천막을 유심히 관찰했다. 천막 너머는 사막이다. 기후별로 구역을 나누어 확장마법이며 날씨를 유지하는 마법 따위를 겹겹이 걸어 놓은 모양이다. 얼마나 많은 수고가 들어갔을지 아멜리아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아멜리아가 이 낡은 가방 속 세계에 걸린 마법에 감탄하고 있던 사이 먹이를 준비한 뉴트가 양손에 양동이를 쥔 채 오두막에서 나왔다. 아멜리아의 눈에 뉴트는 상당히 말라보였고 그 많은 짐을 들기엔 버거울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녀는 자연스럽게 뉴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도와드릴까요?"


그녀의 말에 뉴트는 화들짝 놀라며 아멜리아를 보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늘 하는 일이라…."


괜찮다는 사람을 굳이 도울 필요는 없다. 다시 보니 그 많은 먹이들을 들고도 그다지 힘들어하는 기색이 아니었기 때문에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당신은 좀 더 쉬는 게 어떨까요? 안색이 나빠 보이는데. 제가 너무 일찍 깨웠나 봐요."


이어진 뉴트의 말에 아멜리아는 머쓱하게 얼굴을 쓸어내리면서 다시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것이 뉴트 탓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집주인을 더 신경 쓰이게 할 순 없었다.


아멜리아는 얌전히 침대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이제 반으로 줄어든 이름 모를 고깃덩어리를 올려다보았다.


"아."


문득 아멜리아는 뉴트 스캐맨더가 도움을 거절한 건 어쩌면 지난밤 자신이 동물을 싫어한다고 너무 단호하게 말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상대는 동물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호그와트 교과서로 채택될 정도의 책을 쓴 사람이다. 그 대답은 너무 경솔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해명해둘까?


오두막의 문을 조금 열고 힐끔 밖을 내다보던 아멜리아는 뉴트의 부름에 달려오는 거대한 짐승의 그림자를 보고 얌전히 문을 닫았다.


"소지품 점검을 할까. 그게 좋겠다."


혼잣말을 하는 어조가 어딘가 어색했던 것은 신비한 동물 돌보기 수업 첫날에 담당했던 크날이 그녀를 보고 가시를 폭발시켰던 것을 떠올렸던 탓은 아니었다.


절대로.






시간에 따라 색이 변하는 립스틱

손수건

머리핀

단번에 화장을 지워주는 티슈(반영구 사용 가능)

S.P.E.W. 뱃지

뭐든 자를 수 있는 작은 가위

12갈레온 7시클 4크넛

반으로 부러진 지팡이


1926년의 사하라 사막에 홀로 떨어진 아멜리아 그린이 자신의 망토 주머니와 모크 가죽 지갑을 탈탈 털어 발견할 수 있었던 소지품은 이 정도가 전부였다.


지금 가진 전재산은 입이 찢어져도 많다고는 할 수 없을 정도고, 썩 지금 생활에 도움이 될 것 같은 물건도 없다.


좀 더 머글 영화의 첩보 요원처럼 신발 밑창에 비밀 장비 같은 걸 숨겨놓을 걸 그랬나. 아니면 그린고트에 있는 전재산을 털어 전부 들고 다닐 것을. 아멜리아는 때늦은 후회를 하며 푹 한숨을 내쉬었다.


12갈레온. 이 시대의 물가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약 없이 미래를 대비해야 할 상황을 생각하면 역시 턱없이 부족한 것 같다. 게다가 이 금화에 새겨진 발행연도는 지금으로부터 한참 뒤의 것이었다. 썼다가 한참 모자란 위조 화폐로 의심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변화 마법을 걸까?'


금화의 숫자를 조금 바꾸는 정도라면 이미 3년 전에 후배인 헤르미온느도 성공한 적이 있다. 4학년 때 이미 변화 마법에 성공한 헤르미온느는 정말 똑똑한 마녀였다. 아멜리아는 늘 그녀가 왜 래번클로 학생이 아닌지가 궁금했다. 어쩌면 S.P.E.W 같은 획기적인 단체를 만들 용기가 잠재되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잠시 학창시절 호그와트에 대한 감상에 젖었던 아멜리아는 한 손으로 망토에 뱃지를 달기 위해 애쓰며 다른 한 손으로는 침대 위에 흩어놓았던 동전을 지갑에 다시 넣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아멜리아의 손끝에 걸린 것은 차가운 금속이 아니라 부드러운 털로 덮여있는 '무언가'의 말랑한 몸이었다.


"…?"


망토와 뱃지를 내려다보던 아멜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


어딘가 오리너구리를 닮은 길쭉한 주둥이를 달고 있는 검은 털 짐승과 눈이 마주쳤다…아멜리아는 뒤늦게야 자신이 그 짐승, 그러니까 니플러의 등에 손을 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꺅?!"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던 것은 어떤 의미로 대단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그녀에게는 그 온순하다는 니플러에게마저 손가락을 공격당했던 슬픈 과거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침대에서 떨어지고 만 것도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빈말로도 넓다고 할 수 없는 오두막 구석에 설치된 침대는 아담한 편인 아멜리아가 생각하기에도 꽤 좁았으므로.


"으악!!"

"아멜리아, 무슨 일…."


그리고 어떤 의미로는,

아멜리아가 침대에서 굴러떨어져 버렸을 때에 그녀의 비명을 들은 뉴트 스캐맨더가 오두막의 문을 벌컥 열고 나타난 것마저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이 상황에 당황한 나머지 아멜리아는 할 말도 아픔도 잊어버렸다.


"…………."


그리고 뉴트는 문을 연 자세 그대로 서서 괜찮냐고 물어봐야 할까 아니면 문을 닫고 얌전히 모르는 척해줘야 할까 하는 고민에 휩싸여 있었다.


서로를 멀거니 보던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을 깬 것은 아멜리아의 동전들과 머리핀, 그리고 반짝거리는 케이스의 립스틱까지 야무지게 배주머니에 챙겨 넣고 보금자리로 돌아가려 일어선 니플러였다. 니플러가 재빠르게 문 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발견한 아멜리아가 소리를 질렀다.


"아!"


말이라고 할 수도 없는 비명이었지만, 그 외마디 비명은 고블린들에게서 니플러를 구해온 후 한 달 내내 소동에 시달렸던 뉴트가 상황을 파악하기엔 충분했다.


"니플러!"


남의 물건엔 손대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뉴트가 입을 꾹 다물고 손을 뻗었다. 니플러는 짧은 다리로 용케 그의 긴 팔을 피해 서랍 위로 달아났다. 다시 뉴트가 그 뒤를 쫓아 손을 뻗었지만 니플러는 침대 위로 내려온 뒤였다. 니플러가 도망가며 약병을 넘어뜨린 탓에 뭔지 모를 약품의 시큼한 냄새가 났다.


바닥에서 반쯤 일어난 아멜리아는 저도 모르게 침대에서 내려와 도망가려는 니플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힉!"


바둥거리는 짧은 다리 끝이 손에 잡혔다. 아멜리아는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은 채로 다른 손을 뻗어 니플러의 몸을 잡아 올렸다…니플러의 몸이 손바닥 안에서 버둥버둥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공격당할까? 또 손가락을 물리거나 하면 어쩌지? 아멜리아는 신비한 동물 돌보기 수업에서 니플러에게 손가락을 물렸던 때를 떠올렸다. 아팠던가. 잘 모르겠다 그 수업에선 늘 다쳤으니까 니플러에게 물린 것쯤은 썩 순위권 안에 드는 통증도 아니었을 것이다.


"잘 잡았어요!"


아멜리아는 뉴트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질끈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니플러는 여전히 그녀의 손바닥 안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아…."

"이제 배에서 동전을 꺼내면…아멜리아?"


뉴트가 니플러를 손에 든 채로 뻣뻣하게 굳어있는 아멜리아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 어린 마녀는 이 동물이 무서워서 어떻게 할 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괜찮아요. 이 녀석은 니플러라고 욕심쟁이이긴 하지만 공격적인 녀석은 아니니까…겁내지 말고 이쪽으로…."


그는 손을 뻗어 아멜리아에게서 천천히 니플러를 건네받으려고 했다.


"하, 하지만 전에 물린 적 있는 걸요."


아멜리아가 어쩐지 겁에 질린 말투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더라면 뉴트가 니플러를 건네받기 전에 놀라서 방심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네? 앗!"


니플러가 사람을 물다니. 그가 놀라는 사이에 니플러가 손가락 사이로 쏙 빠져나갔다. 그리고 채 지팡이를 꺼낼 새도 없이 오두막의 문틈으로 바둥바둥 기어나가 버렸다.


"오…멀린이시여. 미안해요, 아멜리아. 어차피 자기 굴로 갔을 테니까 금방 찾아줄게요."

"아, 네…."


아멜리아는 뉴트의 말에 어색하게 대답하며 그때까지 어쩔 줄 모르고 펴고 있었던 손가락을 천천히 접었다. 뉴트는 그 동작을 관찰하면서 그녀가 니플러를 정말 무서워한다는 것을 확신했다.


"니플러에게 물린 적이 있다는 게 정말인가요?"


뉴트가 아는 니플러는 다소 못 말리는 말썽꾸러기이긴 하지만 어지간해선 사람을 공격하는 일은 없는 동물이었다. 게다가 아멜리아는 썩 동물들에게 위협적으로 굴 것 같이 보이지도 않았다.


"그게, 네…."


그녀가 머뭇거리는 태도로 망토를 정리하면서 대답했다.


"…저는 왠지 옛날부터 동물들에게 미움받는 체질인 모양이라…."


뉴트는 지팡이를 휘둘러 어질러진 서랍을 정리하며 이어지는 아멜리아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동물들이 잘 따르지 않아 호그와트에 재학하는 내내 애완동물은 키우지도 못하고, <신비한 동물 사전>을 전부 외우고 야심 차게 신청한 수업에서는 첫날부터 공격받고, 부엉이를 보낼 일이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고, 잘못된 사람에게 부탁했다가 하루가 엉망진창이 되었던 나날들. 트리위저드 첫 시합에 용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관객석에서 도망쳐 기숙사로 들어가야 했고, 세스트랄이 태워주려고 하지 않아 해그리드의 도움을 받았던 이야기.


아멜리아의 구구절절한 고백을 들은 뉴트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이 되었다. 뉴트가 생각하기에, 아멜리아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마녀일지도 몰랐다…. 물론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위즐리 쌍둥이(그녀의 말로는 호그와트 최고의 악동들이라고 했다)에게 부엉이를 부탁했다가 편지가 똥폭탄 주문서로 바꿔치기 당한 이야기는 너무 우스웠다.


"…힘들었겠네요."


뉴트의 말에 아멜리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그럼 정말 한 마리도 성공적으로 돌본 적이 없나요?"


뉴트는 자신의 말이 최대한 자연스럽게 들리기를 빌면서 물었다. 아멜리아는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생각 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글쎄요. 다치지 않고 볼 수 있었던 건 플로버웜 정도…?"

"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뉴트의 표정이 오묘해지자 아멜리아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마 걔한테도 이빨이 있었다면 피를 봤겠죠. 그나마 다행이었어요. 프레드랑 조지는 제가 플로버웜에도 피를 보는 쪽에 5시클을 걸었었거든요."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었다.


뉴트는 결국 아멜리아가 보는 앞에서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니, 미안해요…너무 의외의 대답이라."

"……."


아멜리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허리를 접고 큭큭 웃는 뉴트를 내려다보았다.


뉴트는 한참 후에야 웃음을 간신히 갈무리했다. 아멜리아는 뚱한 얼굴을 하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뉴트는 그 총명하고 고집 세 보이는 태도로 플로버웜에게 물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아멜리아를 생각했다가 다시 웃었다.


"다들 그래요. 그래도 저한테는 슬픈 이야기니까 그만 웃으세요, 스캐맨더 씨."


뉴트는 다시 터지려는 웃음 때문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가, 아멜리아에게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그냥 뉴트라고 불러주세요."


아멜리아는 눈앞으로 내밀어진 뉴트의 커다랗고 투박한 손을 내려다보다가, 조심스럽게 그 손을 마주 잡았다.


"그럼 스, 어…뉴트. 저는 미아라고 부르세요. 제 친구들은 그렇게 부르거든요…."


딱딱하게 굳은살이 배긴 손이 아멜리아의 작은 손을 잡아왔다. 아멜리아보다 머리 한 개쯤은 큰 뉴트가 가만히 그녀를 내려다보며 이름을 불렀다.


"미아."


위즐리 과장님 외의 어른 남자에게서 그렇게 불리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그 외엔 거의 또래 남자애들뿐이었으니까…이상하게 간지러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아마 그 탓일 것이다.


아멜리아는 어색하게 붙잡힌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단단한 뉴트의 손은 약간 뜨겁게 느껴질 정도로 따뜻했다.





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