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드림/양호열(미토 요헤이)]너에게로 가는 지옥행 열차
*평일 드림 전력
*주제: 너에게로 가는 길
*슬램덩크 양호열(미토 요헤이) 드림
*지난 전력(새창)에서 이어지는 내용
너에게로 가는 무덤행 직행열차
날씨가 화창한 어느 날이었다. 수업을 듣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 나에게는 어렴풋한 생각으로 끝나버린 감상이었지만, 그 느낌을 적극적 행동으로 옮긴 모양인 옆자리의 양호열과 그 친구 강백호는 4교시 수업 시간에 교실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양호열은 뭐 일전에 나에게는 의외의 친절을 발휘한 적이 있다고는 해도 이미 중학교 때부터 유명한 불량학생이었으므로, 수업에 좀 빠지거나 하는 정도는 딱히 큰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 반장…그래 너, 다음 시간 양호열이랑 강백호한테 숙제 프린트 좀 전해줘라."
…그게 나에게는 큰 일이 되고 말았지만.
"네?"
"오늘 안에 전해줘라. 오늘 제출해야 하니까. 이상."
이건 학생 학대다. 신고할 거야.
채 대답할 새도 없이 눈 뜨고 코 베인 격으로 지상 최악의 퀘스트를 부여받고야 말았다. 여기저기에서 동정의 눈길이 쏟아지기는 했지만 아무도 대신하겠다고 해주는 용사는 없었다.
"………."
"힘내…."
친구는 끝없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내 등을 두드려주기는 했다.
"가, 가, 같이 갈까…?"
"아니야…."
잔뜩 겁에 질려서도 동행을 제안해주는 건 고맙지만 지옥으로 걸어들어가는 사람을 굳이 둘로 늘릴 이유는 없다. 부디 내가 살아돌아오길 빌어달라고만 부탁해뒀다. 눈물을 머금은 채 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기까지는 금방이었다.
"………."
그래서, 일단 용기를 내서 교실을 나오기는 했는데 양호열과 강백호를 어디서 찾으면 좋은 걸까. 일단 양호열 한 명이라도 찾으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코빼기도 안 보인다. 점심시간 안에 찾아야 할 텐데. 학교 안에 있기는 한 거겠지…? 일진들의 행동 패턴 따위 알 리가 없으니 원.
한 손에 프린트를 쥐고 하염 없이 복도를 터덜터덜 걷다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대로 아무 데나 가서 밥 먹고 선생님한테는 양호열 못 찾았다고 이야기 하면 안 될까. 오늘 안에 전달하지 못하면 양호열에게 불이익이 생길지도 모른다고는 했지만 그거야 제대로 수업에 들어오지 않은 그 둘 탓이고, 애초에 내가 이렇게 돌아다닌다고 찾을 수 있을 리가 없…
"…어?"
찾은 척만 하고 돌아가자는 결심이 반쯤 굳혀졌던 때에, 창문 너머로 보이는 맞은편 건물 옥상에서, 별로 보고 싶지 않았던 시커멓고 칙칙하고 무서운 사람들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말았다. 다시 말해 소위 그 '강백호 군단'들과 웃고 있는 양호열의 모습을 발견하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발견하고 싶지 않았는데.
"………."
왜 눈에 띈 거지. 왜 내 눈은 저걸 발견해버린 거지. 왜….
잠깐 자리에 주저앉고 싶어졌다.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은 채 긴 한숨을 내쉬었지만 저쪽 먼 옥상에 보이는 사람 중의 하나가 양호열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조금만 죽고 싶은데 어쩌지. 정말 이대로 모른 척하면 안 되나.
양호열 혼자만이라면 몰라도 저기엔 백호 군단 전원이 다 있는 것 같다. 백호 군단이 실제로 어떤 애들인지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양아치 소굴에 스스로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 정도로 강심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와 별개로 이걸 오늘 안에 제출하지 못하면 양호열한테 좋지 않을 거라고 했고…책상에 슬쩍 올려놓으려고 해도 양호열이 과연 다음 시간 수업에 들어올지 어떨지 모르겠다. 자리 펴고 누운 꼴을 봐서는 안 들어올 것 같은데. 무엇보다 양호열한테는 저번에 도움을 받았고….
"으으으."
그렇게 마음 속의 양심과 공포가 첨예하게 다툰 끝에, 결국 나는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게 되었다.
내 안의 애매한 양심 너무 싫다…어설픈 용기도 싫다….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한 걸음이 천릿길인 것처럼 걸었지만 옥상은 너무 금방이었다. 아직 5분 밖에 안 지났다니 말도 안 돼…. 차마 옥상으로 통하는 철문을 열지는 못하고 그 앞에 서서 심호흡을 했다. 손바닥에 '인'을 써서 마시는 시늉을 하면 긴장이 사라진다고들 하니까 용기의 용을 써서 마시면 나에게도 용기라는 것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렇게 세 번쯤 용기를 들이마셨지만 딱히 용감해졌다는 기분은 안 들었다. 용기의 물약은 캐쉬템인가보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옥상 문을 밀어열었다. 끼익 소리가 천둥처럼 들리는 바람에 흠칫 놀랐다.
"어? 여자애?"
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뒹굴거리고 있던 콧수염 남자(도저히 남학생이라고 부를 수 없는 액면가였다)가 의아한 얼굴을 했다. 다시 한 번 마음 속에 용기라는 글자를 쓰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야, 야, 야, 양호열…찾으러 왔는데…요…."
용기를 썼다고 했지 냈다고는 안 했다. 내가 듣기에도 형편 없이 떨리는 개미 목소리였다. 눈앞의 상대가 알아들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남자가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 아마 못 알아들은 것 같다. 프린트를 든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게 느껴진다. 등 뒤로 식은땀이 났다.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가, 가까이 오지 말아주세요 무서워요.
"오, 반장. 웬 일이야?"
불쑥 문 뒤에서 몸을 내민 양호열이 웃는 얼굴로 말을 거는 바람에 그 자리에 무릎을 꿇지는 않을 수 있었다. 양호열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지만 지금만큼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야, 양호열! 이거…4교시…선생님이 프린트…오늘 안에 내라고…."
"이거 전해주러 여기까지 온 거야? 고생시켰네. 미안! 고마워."
내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도무지 문장이 되지 못하는 단어의 나열뿐이었다. 용케 알아들은 양호열은 평판과 다르게 사람 좋아보이는 웃는 얼굴로 나에게서 프린트를 받아갔다.
"두 장이나 돼?"
"아, 그, 한 장은 강백호 건데…."
대신 전해줘, 라는 말을 채 꺼내기도 전에 양호열이 소리를 높여 강백호를 불렀다.
"백호야!"
부르지 마.
내 마음 속의 처절한 비명이 양호열에게 닿을 일은 없었다.
"음?"
"반장이 할 말 있다는데."
"이, 이, 이거…프린트…."
덕분에 나는 거의 2미터 쯤 되어보이는 빨간 머리 거인 양아치에게도 벌벌 떨리는 손으로 프린트를 건네는 수밖에 없었다. 쓸데 없는 걸 가져왔다고 화내면 어떡하지. 하지만 잔뜩 긴장해있었던 것이 무색하게 강백호는 프린트?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내 손에서 종이를 받아갔을 뿐이었다.
"오, 오늘 안에 제출하래…."
덕분에 나는 용기를 내어 한 마디를 덧붙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교실로 돌아가기 위해 돌아설 때까지도 강백호는 조금도 난폭하게 굴지 않았다. 오히려 고맙다고 인사를 듣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의외로 그렇게 아무에게나 화내지는 않…는 걸까. 잘 모르겠지만.
"휴…."
어쨌든 퀘스트는 완료했다. 게임이었다면 이걸로 두 단계쯤은 레벨 업 했을 것 같은데. 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옥상을 나서려고 했을 때 등 뒤에서 양호열의 목소리가 들렸다.
"반장."
"어, 으응?"
혹시 이 평화로운 전달은 훼이크고 도입부였냐. 긴장하면서 뒤를 돌아봤지만 양호열은 여전히 어울리지 않게 착해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양호열이 손에 든 프린트를 팔랑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오기 무서웠지?"
"어?!"
그렇게 갑자기 정곡을 찌르면….
"이해해. 이 녀석들이 좀 무섭게 생겼어야지."
…아니야 무서운 건 너도 포함이야…그보다 다른 세 명은 얼굴도 이름도 잘 모르지만 강백호랑 양호열 이름 세 글자는 안 다고…. 게임에서도 무섭게 생긴 일반 몹보다 귀엽게 생긴 네임드가 더 세잖아. 내 마음 속의 태클을 들을 길 없는 양호열은 한 발짝 다가오더니 한 마디를 더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줘서 고마워."
"어, 으응……."
나는 잠깐 할 말을 잃고 헤매다가 끈기 있게 쳐다보는 양호열에게 웅얼웅얼 한 마디를 뱉었을 뿐이었다.
"나도 저번엔 고마웠어…."
반쯤 기어들어가던 내 인사를 들었는지, 양호열은 정말이지 세간의 평판이나 소문과는 전혀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얼굴로 웃었다.
대체 언제적 것을..
근데 쫄보 모범생이랑 양아치 조합 상당히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