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그 외

[엑스맨/드림/퀵실버] 매우 앞서 가는 위로법

양철인간 2016. 9. 24. 23:55

*전력 드림 60분

*주제: 위로

*엑스맨 무비 퀵실버(피터 막시모프) 드림

*매우 짧음




매우 앞서 가는 위로법




이제 와서 깨달은 거지만, 에릭 렌셔 씨와 우리 아빠는 좀 닮았다. 물론 에릭 렌셔 씨가 훨씬 잘생겼다는 건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아빠 얼굴을 본 지도 한참 되어서 사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어렴풋이 느낌이 닮은 것 같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내가 식곤증으로 반쯤 비몽사몽하다가 실수로 에릭 렌셔 씨를 보고 아빠? 하고 불러버린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뜻이었다.


렌셔 씨의 표정이 기묘해지는 것을 보고 잠이 확 깨서 얼른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사과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미 저지른 실수가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죽고 싶다…."


쿵. 벽에 머리를 박으면서 웅얼거리자 어느새 나를 따라온 피터가 내 옆에 기대어 서면서 낄낄 웃었다.


"바-보."

"안 그래도 죽고 싶으니까 놀리지 마라…."


아 어쩌다 이런 멍청이 같은 실수를 했지. 초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을 엄마라고 부른 이후로는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스무 살이 넘어서 무슨 일이람. 벽에 쿵쿵 머리를 박아대며 오늘의 흑역사를 기억에서 삭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물론 효과는 놀라울 정도로 없었다.


"그러다 더 바보 된다."

"더 될 바보도 없어…."

"이미 말이 이상해졌는데."


피터의 손이 벽과 내 이마 사이에 끼어들어 나의 태만한 뇌세포 학대 행위를 억지로 멈췄다. 결국 나는 벽에 머리를 들이받던 짓을 멈추고 이번에는 애꿎은 화살을 피터에게로 돌렸다.


"너도 바보야, 피터."

"내가 왜?"

"너네 아빠잖아. 너 지금 나한테 새치기 당한 거거든."

"아하?"


에릭 렌셔 씨가 사실 피터의 아빠라는 사실은 아마 교내에서 렌셔 씨를 뺀 다른 모든 사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정작 아들 본인은 렌셔 씨를 한 번도 아빠라고 불러보지 못했지만.


"…너 정말 렌셔 씨한테 말 안 할거야?"

"글쎄…, 언젠가는."


평소엔 뭐든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우는 뮤턴트 주제에 이런 일에만 우유부단하게 미루기 대장이 된다. 나는 피터를 올려다보며 푹 한숨을 내쉬었다.


"몰라, 오늘 내가 쪽팔린 것도 다 네 탓이야."

"또 왜?"

"네가 먼저 아빠라고 불렀으면 내가 그런 실수 안 했을 수도 있잖아."

"……."


내 말에 피터가 한쪽 눈썹을 올리면서 나를 내려다봤다. 물론 내가 말하고도 억지이긴 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누군가를 탓하지 않고서는 오늘의 창피를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이어진 침묵에도 뻔뻔하게 고개를 들고 있었다. 먼저 침묵을 깬 건 피터 쪽이었다.


"딱히 대단한 실수도 아닌데 뭐 어때."

"뭐래."


이건 위로인가 약올리기인가. 생판 남이고 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아저씨(심지어 가족을 잃음)을 아빠라고 불러버린 게 대단한 실수가 아니면 뭔데. 불만을 담아 노려보자 피터가 씩 웃으면서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약간 따끔거리는 내 이마를 스치고 코끝을 지나 윗입술에 닿았다.


"어차피 나중에 아빠 비슷한 게 될 건데."


뭔 소리야.


"미리 연습했다고 치면 되지."


진짜 무슨 소리냐고.


"나랑 결혼할 거잖아?"


……아니 빠르다 빠르다 했더니 대체 혼자 어디까지 앞서나갔던 건데?!







전력...3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