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작업물

[다이에이/드림/사나다 슌페이&토도로키 라이치] 하린님 커미션 작업물

양철인간 2016. 9. 21. 23:36


다이아몬드 에이스

사나다 슌페이&토도로키 라이치 드림

2892자






"사나다, 안녕!"


오늘도 야구부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최근 들어 거의 매일 같이 야구부에 얼굴을 내밀고 있긴 하지만, 일단 나는 야구부원은 아니다. 애초에 야구부와 나의 연관성이란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 야구부 에이스인 사나다와 1학년 때부터 같은 반 옆자리에 음악취향이 비슷해서 친한 것뿐이니까.


고교생답게 코시엔 로망이라면 영혼 한구석에 조금쯤 품고 있긴 하지만, 그건 일종의 드라마적인 서사에 대한 로망이지 내가 직접 야구부원이 되어 선수들을 뒷바라지하거나 챙기며 고생하고 싶은 욕구는 아니었다. 이미 가을 대회 결승전을 응원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었고, 아마 내년 여름 예선은 결승 정도가 아니면 응원하러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왔어?"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매일매일 친구 핑계를 대며 야구부를 구경하러 오게 된 건 어떤 야구 소년들에 대한 동경이나 누군가의 열정과 청춘에 대한 예찬을 표하기 위해서는 아니라는 뜻이다. 사실 그보다는 훨씬 개인적인 사심에 가깝다.


"요. 토도로키 군은?"


그렇다. 최근 내가 야구부를 이렇게 자주 찾게 된 것은 한 학년 아래의 야구부원인 토도로키 라이치 때문이었다.


"오자마자 그 소리야? 섭섭하게."


사나다가 과장되게 한숨을 내쉬면서 벗었던 모자를 머리 위에 올렸다. 나는 잘생긴 친구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최대한 뻔뻔하게 웃었다.


"너랑은 교실에서 매일 보잖아. 자꾸 보면 질린다고."

"질린다니 너무하네. 아, 라이치!"


사나다가 소리 높여 부르자 토도로키 군이 이쪽을 보고는 배트를 한 손에 든 채 쭈뼛쭈뼛 다가왔다. 한쪽 뺨에 선명한 십자 흉터가 왠지 마음을 시큰하게 하는 건 내 구최애가 히무라 켄신이었던 탓일까. 아니다. 역시 토도로키 군이 귀엽기 때문이 틀림없다.


"안녕, 토도로키 군!"

"아, 안…녕하세…요…."


최대한 상냥하게 인사하자 토도로키 군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 한참 입을 뻐끔거리다가 간신히 목소리를 냈다. 이렇게 사나다를 통해 얼굴을 익힌 지도 꽤 시간이 지났는데 여전히 부끄러워한다. 뭐 그런 점도 귀엽지만.


"오늘 컨디션은 어때? 아까 내가 부탁한 바나나는 사나다가 잘 전해줬지? 중간에 빼돌렸으면 말해. 혼내줄게."


토도로키 군이 새빨갛게 된 얼굴로 고개를 붕붕 젓는 것을 흐뭇하게 보고 있는데 사나다가 불만스러운 어조로 끼어들었다.


"나 여기 듣고 있거든."

"들으라고 한 소린데."

"내가 정말 라이치 바나나 뺏어 먹으면 어쩌려고?"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와, 상처받는다."

"토도로키 군, 어느 날 사나다가 보이지 않게 되면 나를 의심하렴…."

"……ㄴ, 네…!"

"성실하게 안 대답해도 돼, 라이치."


토도로키 군을 놀리면서 사나다와 몇 마디를 더 시시덕거리다 보니 곧 연습이 시작할 시간이 됐다.


"연습 힘내. 난 조금만 더 구경하다 갈래."

"응. 내일 봐."

"토도로키 군도 힘내!"


자리를 찾아가는 두 사람에게 언제나 그렇듯 인사하고 파이팅을 외쳐주었다. 사나다는 웃으면서 모자를 고쳐 쓰고, 토도로키 군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집합 장소로 달려갔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대충 봐도 야구부에서 제일 잘생긴 사나다와 배트만 들면 날아다니는 토도로키 군을 조금 더 구경하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도 나는 사나다를 통해 토도로키 군에게 응원의 우유 한 팩을 조공했다. 내 조공 셔틀 사나다는 오늘도 임무를 수행하고선 한숨을 섞어 웃었다.


"너 진짜 라이치 좋아하는구나."

"그야, 토도로키 군 귀엽잖아. 열심이고. 중학교 때부터 매일 다리 밑에서 혼자 연습하는 거 보고 완전 감동했다니까."

"나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질투 나네."

"에헤이, 친구 왜 이러실까."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다리 밑에서 혼자 야구 연습을 하는 토도로키 군을 발견한 것은 벌써 1년도 더 전의 일이다. 처음엔 신기함에 출석체크하는 기분으로 구경했는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뒤로는 어쩐지 애틋한 마음으로 응원하게 됐다. 뭐라고 해야 하나…열심히 노력하는 소년 만화 주인공을 응원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진짜 우리 학교 야구부에 들어와서 다행이지 뭐야. 너 통해서 응원도 할 수 있고."

"정작 내 응원은 안 해주고 말이지?"

"뭐야, 늘 해주잖아. 말로만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남학생 두 사람분의 응원 조공을 챙기기엔 내 지갑에 타격이 너무 컸다. 사나다에겐 조금쯤 미안함과 고마움이 공존하는 마음이지만, 사나다는 어쨌든 가사 실습이 있는 날이면 몰려드는 러쉬 덕분에 먹을 게 부족하진 않으니까 늘 2순위랄까….


"어쨌든 난 너도 꽤 좋아하는 편입니다, 사나다 슌페이 씨. 음, 아마 토도로키 군보다 조금 더 좋아할지도."


립서비스 겸 말하자 사나다가 나를 돌아보았다. 역광을 받아 그림자를 드리운 얼굴이 쓴웃음인지 뭔지 모를 표정을 지었다.


"그것참…감사합니다."

"다음에 용돈 받으면 너도 뭐 하나 사줄게. 질투하지 마시게, 친구."


손을 뻗어 툭 팔을 건드리자 사나다가 큭큭 웃으면서 내 손을 가볍게 붙잡았다.


"딱히 뭘 사주진 않아도 괜찮은데."

"어, 진짜지?"

"진짜지만 후자는 좀 힘들어."

"후자?"


내가 뭐라고 했는데 힘들다는 말이 나오지. 용돈 받으면 뭐 사준다….질투하지 마라…? 


잠깐만. 


질투?


"지금도 라이치 얘기만 하고 있잖아."


아니 잠깐만.


"…어?"

"그런 뜻이 아닌 걸 알아도, 라이치만 신경 쓰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질투하게 되니까."


이게 지금 내가 생각하는 그 뜻이 맞나?


"…………."

"그러니까."


할 말을 잃은 채 입을 뻐끔거리는 나를 내려다보며 사나다는 잘생긴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그다음 이어진 말을 들은 순간 아주 가볍게 붙잡혔을 뿐인 손끝에서부터 쿵, 하고 세게 맥박이 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라이치보다 더 많이, 더 진지한 의미로 좋아해 주지 않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