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에이/드림/나루미야 메이] 소문의 그 여자
*전력 드림 60분
*주제: 소문
*다이아몬드 에이스 나루미야 메이 드림
*짧음
소문의 그 여자
내가 그 소문을 듣게 된 것은 바로 조금 전의 일이었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잠깐 도서실에 들르려던 길에 명백하게 초면인 3학년 여자 선배에게 붙잡혀 들은 말이 이랬던 것이다.
"너, 나루미야 군이랑 사귄다며?"
그 말을 제대로 해석 입력하는 데에 몇 초인가 시간이 걸렸던 것은 딱히 내 연산능력 부족 탓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하도 상상을 초월하는 언어라 스타트렉에 나오는 로뮬루스 제국어 정도 되는 줄 알았을 뿐이다.
"…누가여?"
그러니까 내가 이런 멍청한 대답을 해버리고 말았던 것도 딱히 내 탓만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우후라 언니도 아닌데 갑자기 인텔리전스 넘치는 대답을 할 수 있을 리 없잖아. 애초에 나는 스타플릿에 턱걸이로도 들어갈 수 없을 두뇌의 소유자인 것이다. 요크 타운 구석에서 신나는 일렉기타 반주의 클래식 음악이나 들으며 리듬 타다가 죽을 운명인 것이다.
"아닌 것 같은데?"
"아닌가봐."
아무튼 그런 나의 멍청함이 애잔했는지, 나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러 왔던 언니들은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더니 금방 등을 돌렸다.
"아니면 됐고. 갑자기 붙잡아서 미안. 하던 거 해."
아니면 된 거군요.
……아니, 되긴 뭐가 되냐?
무심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무서운 3학년 언니들이 물어본 '나랑 사귀는 나루미야' 같은 허깨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어쨌건 이 학교에서 나루미야라고 하면 나루미야 메이 외의 다른 누군가를 지칭할 리 없다.
나루미야 메이. 야구부 에이스. 같은 반 옆자리.
…랑 내가 사귄다니.
누가 그런 근거라곤 캡틴 커크 정조관념 만큼도 없는 헛소문을 퍼트렸지? 어디서 어떻게 듣고 나한테 추궁을 했던 거지?
기분이 나쁜 건지 혼란스러운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머리를 붙잡고 터덜터덜 걸어 일단 목적지였던 도서실에 도착했다.
일단 가지고 있던 책을 반납하고 새로 책을 빌릴까 했지만 서가 사이를 서성이는 동안에도 도무지 책 제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단, 나루미야랑 나는 사이가 나쁜 건 아니다. 1학년 때부터 같은 반에 2학년이 되고선 내내 옆자리였고, 걔가 초딩처럼 굴어서 종종 말다툼을 하긴 해도 심각하게 싸운 적은 없었다. 뭐 나름대로 귀엽고 운동부 남자애 치곤 말이 잘 통하는 편이니까 나름 친한…가? 자주 이야기하긴 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사귄다는 소문은 너무하지 않나? 이야기 좀 하는 걸로 전부 사귀는 사이가 되는 거라면 페이스북에 연애중 표시를 안 해두는 사람이 있어선 안 되는 소수 인류가 될 텐데.
나루미야가 너무 유명인인 게 나빴나? 역시 그거겠지. 나루미야를 공격하자.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아무거나 책 한 권을 빌려 도서실을 나왔다. 일단 교실에 가서 나루미야를 보면 너 때문에 이상한 소문이 났으니까 야키소바빵 하나 사오고 100엔 남겨오라고 해야지. 아니, 메론빵으로 할까?
"야."
"히익."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타이밍을 딱 맞춰 코너에서 불쑥 튀어나온 나루미야의 얼굴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 얼굴을 보고 반응이 왜 그러는데."
"갑자기 튀어 나오니까 그렇지!"
"그럼 미리 말하고 나오냐?"
"하고 와. 미리 통신 걸어. 여기는 캡틴 나루미야 뭐 이렇게."
"캡틴 아니거든. 에이스거든."
"그게 내 알 바니?"
가벼운 입씨름 끝에 결국 함께 교실로 향하던 길에 먼저 입을 연 건 나루미야 쪽이었다.
"…너랑 나랑 이상한 소문 났던데."
힐끔 옆에 있던 나루미야를 돌아봤지만, 나와는 반대쪽을 보고 있어서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똥 씹은 표정이면 두 번 다시 야구를 할 수 없는 몸으로 만들어줄까 했는데 다행이다.
"어. 아까 3학년 언니들이 나한테 너랑 사귀냐고 물어보더라."
"뭐? 누가?"
"이름은 몰라. 그냥 와서 다짜고짜 물어보더라고."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너무 처음 듣는 말이라 아무 말도 안 했더니 그냥 가던데? 너 진짜 장난 아니다. 막 이상한 소문도 나고 누가 확인하러 오고. 덕분에 나만 사이에 끼었잖아. 어떡할 거야."
메론빵의 밑밥을 깔며 주먹으로 가볍게 나루미야의 오른팔을 툭 쳤다. 나루미야는 맞은 쪽 팔을 붙잡고 그 자리에 멈춰섰다. 어, 뭐지. 내가 생각보다 세게 때렸나? 벌칸인 같은 근력은 없는데. 무심코 그 옆에 멈춰서 내 손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나루미야가 손을 뻗어 내 어깨를 붙잡았다.
"나루미야?"
"책임지면 되잖아."
"책임? 그럼 메론빵…"
"사귀자."
사와.
내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나루미야가 선수를 쳐서 본인의 '책임'을 이야기했다.
"…………누구랑여?"
나는 또다시 엔터프라이즈호 크루가 되기에 한참 모자란 두뇌 수준을 뽐내며 입을 헤 벌렸지만 나루미야는 아까의 3학년 언니들과는 달리 아니면 됐다는 말로 넘어가주지 않고 다시 자기 말에 쐐기를 박았다.
"사귀자고. 소문이 아니라 진짜로."
"……………."
나는 한참 입을 뻐끔거리다가, 아무도 나를 워프시켜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 마디를 했을 뿐이었다.
"………내가 왜?"
"야!!!!!"
그 이후 내 말에 나루미야 메이가 길길이 날뛰었다든가 그래서 대소동이 되었다든가 덕분에 지나가던 3학년 선배가 나루미야에게 꿀밤을 먹였다든가 하는 이야기들은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중요한 건,
"너 나루미야를 찼다며?"
…와 같은 소문이 나에게 남아버렸다는 유감스러운 사실 뿐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썼더니 김메이가 김메이 아닌 것 같고 그렇습니다............
김메이.......자니?
스타트렉 비욘드 재밌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