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엑스맨: 세상에서 제일 빠른

[엑스맨/드림/퀵실버] 세상에서 제일 빠른 국제전화

양철인간 2016. 7. 6. 01:00

*평일 드림 전력

*주제: 거짓말을 하는 목소리

*엑스맨 무비 퀵실버(피터 막시모프) 드림

*시리즈물




세상에서 제일 빠른 국제전화




이 여름에 내가 파리에서 일주일이나 머물게 되었던 것은 전적으로 내 의사가 반영된 결과는 아니었다.


일전에 꾼 꿈대로 나를 설득하러 왔던 어머니는 내가 프랑스에는 가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며칠 만이라도 상담을 받아보길 원했고, 할머니는 내가 내 새아버지가 될 지도 모를 프랑스 남자를 한 번 정도는 만나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두 사람에게 등을 떠밀린 셈이었다.


도착한 파리에서의 생활은 상상했던 것만큼 나쁘지는 않았다. 어머니의 새 애인, 그러니까 앙리 씨는 다소 나를 관찰하는 듯한 구석은 있어도 기본적으로 다정한 편이었다. 어머니와 앙리 씨의 관계에도 어두운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어쩌면 어머니가 이 사람과 결혼해서 행복해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조금쯤 했을 정도였다. 


게다가 파리에 있는 동안 머물게 된 조금 작지만 아늑한 집도 썩 마음에 들었으므로, 나는 몇 번의 상담을 견딘다면 그럭저럭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보면 사실 일정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그러니까…시차 탓인지 혹은 다른 어떤 심리적인 요인 때문인지, 파리에서 보낸 며칠 사이 다시 불면증이 도졌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말이지만.


"지금 몇 시지…."


한참을 누워서 양을 2643마리 쯤 세다가 결국은 참지 못하고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아직 아침이 오기까지는 한참 남은 새벽 두 시였다.


새벽 두 시. 파리랑 워싱턴 시차가 어느 정도 나더라. 첫 날에 앙리 씨가 알려줬었는데…여섯 시간이랬나? 지금이면 워싱턴은 저녁 8시 쯤…아니, 시차 계산 같은 걸 해서 어쩌겠다고. 피터한테 전화해봤자 뭐 걔가 자장가를 불러줄 것도 아닌데. 불러준다고 잠이 올 것 같지도 않고.


"………."


한숨을 내쉬면서 베개에 다시 머리를 박았다가 침대에서 구르기를 반복한 끝에, 나는 결국 수화기를 집어들고 말았다. 열 네 살 이후로 피터랑 이렇게 오래 멀리 떨어져 있는 건 처음이니까 일단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다.


"흠흠."


조심스럽게 전화번호를 누르고, 연결 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짧게 심호흡을 했다. 괜찮겠지. 어머니도 전화 정도는 해도 괜찮다고 했고. 오래 통화할 것도 아니니까…목소리만 듣는 정도는.


초조하게 베드사이드 테이블을 두드리는 사이 정말 전화가 연결 됐다.


"여보세요?"


피터의 목소리였다.


"아. …피터."

"오, 이건 파리에 가서 소식이 없으시던 분 목소리 같은데 착각인가?"


며칠 동안 한 번도 연락하지 않은 탓에 약간 삐친 모양이다. 비꼬는 인사도 반가워서 웃음이 났다.


"미안, 시차 적응하느라 바빴거든."

"놀러 다니느라 바빴던 거 아니고?"

"그것도 약간."

"아하."


불만스러운 듯이 눈썹을 올리고 입을 삐죽거리는 얼굴이 절로 떠올랐다. 나는 웃음을 참는 대신 파리에서 머무는 동안 구경한 것들과 좋았던 일들에 섞어 피터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자랑 엄청 하네. 아주 거기서 살겠는데."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래서 그동안 꿈에는 문제 없었어?"

"어…응."


애초에 꿈을 꿀 만큼 잔 적이 없으니까 문제가 없었던 것도 맞지. 거짓말은 안 했다.


"흠."

"왜?"

"거짓말 좀 늘었네 싶어서. 제대로 자지도 못하는 주제에."

"엑."


화들짝 놀라면서 무심코 뒤를 돌아봤지만, 역시 지구 반대편에 피터가 와있을 리는 없었다. 어떻게 알았지.


"목소리만 들어도 알거든."

"거짓말."

"그건 네가 하는 거고. 지금 파리가 몇 시인지도 모를 줄 알았던 건 아니지?"


……확실히…시차 계산은 나만 할 줄 아는 건 아니었지. 잠이 부족해서인가, 멍청한 짓을 했다. 테이블에 머리를 박자 전화 너머의 피터가 웃는 소리가 났다.


"바보."

"어…나 진짜 바보네."

"그러게 프랑스 같은 데 가지 말라고 했잖아. 워싱턴에 있었으면 너도 재밌는 경험 했을 텐데. 내가 얼마나 엄청난 일을 했는지 너도 알아야 돼."

"왜? 뭐 했어? 또 뭐 훔쳐왔어?"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눈을 감은 채로 어쩐지 의기양양한 피터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 역시 얼른 워싱턴으로 돌아가고 싶다. 파리는 멋지고 재밌었지만, 역시 내가 있을 곳은 아닌 것 같다. 잠도 못 자겠고, 피터도….


"아니. 그보다 더 엄청난 거. 이거 전화로는 얘기하기 힘든데. 빨리 말하고 싶으니까 얼른 와."

"응…보고 싶어."


아. 말이 헛나갔다. 멋대로 움직인 혀를 깨물었다. 피터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아까보다 한 층 더 의기양양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이건 진심이네."

"립서비스거든."

"그건 거짓말."

"……."

"맞지?"


딱히 반박할 말이 없는 게 왠지 진 기분인데.


"거짓말이면 안 되지. 나 지금 너 엄청 보고 싶은데."

"……."


피터의 목소리가 달콤하게 들리는 날도 있다니, 이건 뭔가 잘못된 게 틀림 없다.


"오늘 꿈 꿔놔. 내가 공항으로 제일 먼저 마중 나가는 꿈. 뭐, 달려와서 안기는 것까지면 더 좋고."

"…어, 응."

"잘 자."

"어………너도."


달칵, 전화가 끊겼다.


그러니까 이건, 분명히………시차 적응이 덜 된 탓이거나 국제 전화가 이상한 거야.


아직도 귀가 간지러운 느낌이라 손가락으로 괜히 귀 파는 척을 했다가, 베개에 푹 얼굴을 파묻었다.




전화를 끊고는 드디어 시차적응이 되었는지 잠들었다가, 꿈을 꿨다.


처음 보는 이상한 모자―어쩐지 경찰 마크 비슷한 게 붙어 있었던 것 같은―를 쓰고 나를 데리러 온 피터에게 단숨에 달려가 안겨버리고 마는…그런 이상한 꿈이었다.











드림주가 파리 간 사이 피터는 펜타곤 털고 왔다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