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에이/드림/코미나토 료스케] 선배님은 기체후일향만강 하신지요
*전력 드림 60분
*주제: 안부
*다이아몬드 에이스 코미나토 료스케 드림
선배님은 기체후일향만강 하신지요
"내 졸업 축하는?"
3월, 졸업식이었다. 날씨는 조금 쌀쌀했지만 화창했고 졸업식이라 다들 울거나 들떠있었다. 나도 오늘 졸업하는 타카코 선배에게 졸업 축하 인사를 건네며 조금 울었다. 잠깐 엉망이 된 얼굴의 수습을 위해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료스케 선배와 마주쳤고, 이렇다 할 인사도 없이 대뜸 던져진 말이 저랬다.
"에."
"타카코가 졸업하는 걸로는 울고, 내가 졸업하는 데에는 인사도 안 하고 도망가고?"
싱글싱글 웃는 얼굴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작은 체구와는 어울리지 않는 압력이 있었다. 무심코 뒷걸음질 치다가 거의 등이 신발장이 닿을 때가 되어서야 멈췄다.
"……도, 도망은 안 갔는데요…."
한참만에 한 말은 저게 전부였다. 정말로 도망은 가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조금 소극적인 자세로 피했던 건 사실이다.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카코 선배에게 졸업 축하 인사를 건네다가도 울었는데 료스케 선배에게 인사하다가 내 얼굴이 무슨 꼴이 될지 불보 듯 뻔했다.
"아, 그래."
료스케 선배는 웬일로 내 말을 선뜻 긍정했다.
"도망은 안 쳤지. 그냥 일부러 내 앞에 나타나질 않은 거지."
"……."
싱글싱글 웃는 얼굴 뒤에서 시커먼 뭔가가 튀어나와 버릴 것 같다. 이번에야말로 진짜로 도망가고 싶었지만 등 뒤에는 신발장 바로 앞에는 료스케 선배가 있는 탓에 도망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도망갈 틈은 커녕 료스케 선배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온다. 사, 살해당할지도…! 심장이 미친듯이 뛰는 게 료스케 선배가 가까워서 설레는 건지 그냥 무서워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 등 뒤에 딱딱한 신발장이 닿았다. 점점 움츠러드는 내 앞에서 료스케 선배가 불쑥 손을 내밀었다.
"핸드폰."
"에? 네? 네?"
"못 들었어? 핸드폰 달라니까."
…새우잡이 배에 전화라도 하려고? 의구심이 고개를 들었지만 나에게 거부권이 있을 리가 없다.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건네자 료스케 선배가 멋대로 열어 뭔가를 꾹꾹 눌렀다. 어디에 전화를 건 건지 잠깐 통화연결음이 울리더니, 료스케 선배의 주머니에서 웅웅 진동이 울었다.
"됐네. 번호 저장해둬,"
"…핸드폰 사셨어요?"
료스케 선배는 대답 대신 주머니에서 번쩍거리는 최신형 스마트폰을 꺼내 보여주었다. 헉. 료스케 선배 스마트폰 다룰 줄 아는구나. 놀라운데.
"뭔가 재밌는 생각을 하는 얼굴인데."
"아니, 아닙니다…."
"뭐 그런 걸로 치고. 저장했어?"
"네? 아, 네."
료스케 선배의 재촉에 나도 핸드폰 자판을 꾹꾹 눌러 코미나토 료스케, 하고 이름을 붙여 번호를 저장해두었다. 그런데 이건 저장해두면 뭐 하나. 어차피 개인적으로 연락할 일도 거의 없을 텐데….
"전화해."
"네?"
오늘따라 내 입에서 네? 하는 소리가 많이 나가는 것 같은데 지나치게 멍청해보이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어려워보이지만.
"오늘따라 바보 같네."
역시.
"전화하라고 했는데."
눈을 끔뻑거리고 있으려니 료스케 선배가 피식 웃으면서 손에 든 핸드폰을 흔들었다.
"하루에 한 번씩 안부 전화."
"………."
"타카코 때문에도 울었으니까 울지 말라곤 안 하겠지만, 적당히 울어."
그제야 눈물이 난다는 걸 눈치챘다. 우왕좌왕하는 내 손을 료스케 선배가 꾹 붙잡았다.
"그래서, 할 말 없어?"
"졸업.."
"응."
"추, 축하…."
왈칵 울음이 나서 채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료스케 선배가 작게 웃으면서 내 손을 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너도 얼른 졸업해."
…그랬던 것이 사흘 전. 대체 꿈인지 생시인지 잘 구분도 안 가서 한동안 백일몽인가 생각했었는데, 내 핸드폰에 정말로 료스케 선배의 이름이 저장되어 있는 걸 보면 완전히 꿈은 아닌 모양이다.
"으…."
전화하고 싶다. 목소리 듣고 싶다. 하지만 딱히 전화할 적절한 핑계는 생각나지 않았다. 안부를 묻는다기엔 졸업식부터 겨우 사흘 지났고, 그렇다고 다른 용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안부 전화 하라고는 했지만 정말 전화를 걸 용기는 없다고 해야 하나…역시 선배도 바쁠 거고, 방해될 것 같고, 후배한테 번호 주면서 그냥 해본 말일지도 모르고.
이런저런 생각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서 하루에도 몇 번이나 연락처에서 띄워놓고도 통화 버튼은 채 누르지 못했다. 오늘도 벌써 다섯번째 료스케 선배의 번호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 선배 보고 싶다.
'전화해.'
전에 없이 달콤하게 들렸던 건 그냥 뇌내 필터였는지 착각이었는지. 그냥 희망사항이었겠지. 모르겠다. 오늘은 어차피 늦었으니까.
푹 한숨을 내쉬면서 핸드폰 화면을 덮으려던 순간 때맞춰 핸드폰이 크게 울었다. 전화다. 누구지. 어차피 스팸이겠지만. 받지 않고 끊으려고 하다가, 액정 중앙에 떠오른 이름에 잠깐 눈을 비볐다.
<코미나토 료스케>
어. 잠깐만. 진짜로?
떨리는 손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전화 너머에서 건너온 건 정말 료스케 선배의 목소리였다.
"서, 선배? 어쩐 일이세요?"
"응, 바보 같은 후배가 번호를 저장해놓고도 전화를 안 하길래."
그렇게 말하면 정말 해도 괜찮았던 걸지도 모른다고 착각한다. 료스케 선배 바보. 속으로 한숨을 삼키면서 핸드폰을 더 귀에 가까이 댔다.
"내 안부 안 궁금했어?"
"졸업식 후로 사흘 밖에 안 됐는데요…."
"하루에 한 번씩 하라고 했는데."
그렇게 말해도…지금도 딱히 할 말은 생각 안 나는데. 그냥 심장이 입밖으로 튀어나오고 싶어하는 것뿐이지.
"혹시 안부 전화하라는 게 어려웠어?"
"네, 뭐…어딜 가든 잘 지내실 거고…."
어색하게 대답하자 귓가로 료스케 선배의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소리가 흘러나왔다.
"진짜 바보네."
"제가요?"
그렇게 말하는 건 료스케 선배 뿐인데. 속으로 꿍얼거리는 사이 료스케 선배의 목소리가, 이번에는 착각이 아니라는 듯이 달콤하게 귀에 닿았다.
"그거, 보고 싶으면 전화하라는 뜻이잖아."
주제 없음이 나았을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