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다이아몬드 에이스

[다이에이/드림/나루미야 메이] 댁의 고백 사정을 제가 알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양철인간 2016. 3. 20. 23:44

*전력 드림 60분

*주제: 고백

*다이아몬드 에이스 나루미야 메이 드림




댁의 고백 사정을 제가 알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구석지고 사람이 별로 없는 곳을 좋아했다. 퍼스널 스페이스로 여기는 공간이 넓었다고나 할까. 인적이 드문 장소를 원래 좋아해서 점심 시간이면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곳에서 시간을 때우는 게 일상이었다. 오늘이라고 다를 건 없었으니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한적 스팟에서 혼자 신문지(역에서 가져온 무료 배포지)를 깔고 앉아 빈둥거리고 있었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요는 이 곳엔 내가 먼저 자리 잡고 있었다고. 뭐 수풀 뒤니까 남들 눈엔 안 띄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본인들의 부주의고아무튼 내가 먼저 와있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좋아해요!"


…이런 이야기를 엿듣는 듯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도 내 본의는 아니라는 뜻이다.


아니 진짜로 내가 먼저 와 있었는데 쟤들이 온 거라고. 내가 뭐 어떻게 귀를 닫을 수는 없잖아. 귀마개를 가져온 것도 아니고. 그래도 시야를 가리는 수풀을 넘어서 얼굴을 훔쳐보지 않은 게 최소한의 양심…


"―나루미야 선배."


컥.


애써 신경 끄려고 했는데 튀어나온 이름에 뿜을 뻔했다.


어…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지?


"일단 고마운데…미안하다."


새끼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는 중에 들린 목소리가 확인사살을 했다.


한참 전부터 내 귀가 고장나 있었던 게 아니라면 지금 여자아이에게 고백 받고 있는 건 틀림 없이 우리 야구부 에이스, 코시엔에서 주가를 하늘 끝까지 폭등시킨 도쿄 프린스 나루미야 메이다.


"진짜로 좋아해요. 정말 안 되나요? 나루미야 선배. 저 선배 방해 안 될 자신 있어요."


원래부터 유명하고 얼굴도 귀여운 편이라 여기저기서 걸즈 토크에 이름이 흘러나오는 편이었던 것도 여름 새 인기가 전국적으로도 치솟았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고백받는 걸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나 따로 좋아하는 사람 있어."


뭐? 나루미야한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세상에 이게 웬 일이야. 놀란 소리가 새어나갈 것 같아서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슬쩍 수풀 밖을 내다보았다.


단호하게 대답하는 나루미야의 얼굴이 나뭇잎 사이로 어렴풋이 보였다. 그 옆의 여자애는 우는 듯이 고개를 숙였기 때문에 머리카락으로 얼굴이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얼굴을 봐버리면 신경쓰지 않을 자신이 없었으니까 보지 못한 쪽이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살짝 소리 죽여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과 동시에 여자애가 눈물을 뚝 떨어트리면서 뒤돌아 달려갔다.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등이 처량했다.


사라진 여자애를 보다가 힐끔 나루미야 쪽을 다시 돌아봤다. 여자애가 간 쪽을 보며 서있던 나루미야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때 나루미야도 꽤 단호하구나. 워낙 관심 받는 걸 좋아해서 고백 받는 것도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의외다. 하긴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했었으니까…대체 누구지. 나루미야랑 친하게 지내는 여자애가 한둘이 아니라서 짐작도 안 되네. 뭐 누구건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하나겠지만.


툭 발 끝으로 돌멩이를 걷어차는 나루미야가 금방 사라질 것 같지 않아서 다시 몰래 나무 뒤로 숨으려고 했다가,


"야. 거기 있는 거 다 알거든. 나와."


나루미야가 툭 던진 말에 화들짝 놀랐다. 지금 나한테 한 말이야?


"얼른. 셋 셀 동안 안 나오면 내가 간다. 하나"


셋 셀 동안 안 나오면이라고 말했던 주제에 숫자를 세면서 왠지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알았어?"

"그럼 모르겠냐?"


그건 대답이 되지 않습니다만.


"분명히 말해두겠는데 내가 일부러 숨어 있었던 거 아니고 내가 먼저 와 있는데 너네가 온 거야."

"알거든. 얼른 나오기나 해."


짜증을 낼 기미가 보이는 나루미야의 눈치를 보며 깔고 앉아있었던 신문지를 접어서 챙겨들고 밖으로 나왔다.


"다 들었지."

"어…음. 아마도."

"들었으면 들은 거지 아마도는 뭐냐?"


나루미야가 툴툴 거리면서 손을 뻗어왔다. 손가락이 살짝 머리카락을 스쳤다.


"왜?"

"너 머리에 나뭇잎."


대충 대답하면서 편 손바닥에서 나뭇잎이 하늘하늘 떨어졌다. 잠깐 거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으려니 나루미야가 불쑥 다시 말을 꺼냈다.


"야, 너 나한테 물어볼 거 없냐?"

"어? 뭐를?"


내가 나루미야에게 뭔가 물어볼 이유가 있었던가?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갸웃하자 나루미야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다 들었다며!!"

"어, 음. 다 들었는데."

"근데 안 궁금하다고?!"

"에…."


잠깐 기억을 더듬다가 아까 나루미야가 했던 말에 간신히 생각이 닿았다.


"아,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했던 거?"


정답이었는지 나루미야의 표정이 미묘하게 풀렸다.


"물어보면 말해줄거야? 내가 아는 사람인가. 아, 연애 상담?"


…가 다시 구겨졌다.


"너 일부러 그러냐?!"

"왜? 그거 아니야?"


소심하게 물어보자 나루미야가 아오 씨, 하고 한참 발을 구르며 짜증을 내더니 소리를 질렀다.


"멍청아! 너거든!!"


어.


나루미야의 목소리 뒤로 예비종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잘못 들었나? 한 손으로 귀를 잡아당기고 있자니 나루미야가 다가와서 내 손을 붙잡았다. 뒤이어 미처 현실도피할 틈도 없이 확인사살 당했다.



"못 들었냐? 너 좋아한다고, 너!!!"












왜 매일 똑같은 것만.......쓰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