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다이에이: 누나도 늑대예요?

[다이에이/드림/토죠 히데아키] 천연 심쿵남 특별 방지법

양철인간 2016. 2. 27. 23:29

*전력 드림 60분

*주제: 애태우다

*다이아몬드 에이스 토죠 히데아키 드림

*오리주(이름 있음) 등장. 시리즈 예정.




천연 심쿵남 특별 방지법




고교 야구부 매니저의 일이란 꼭 피터 드러커를 읽지 않더라도 고달프다. 선수들을 뒷바라지 하기 위해 이어지는 전쟁 같은 노동이 매일매일. 특히 코시엔을 노리는 명문고쯤 되다보면 연습에도 틈이 없기 마련이라, 매니저들은 일손이 아무리 많아도 부족할 정도다. 세이도 고교 야구부의 매니저가 된 지 올해로 1년하고도 몇 개월 더. 산더미 같은 일에는 어느 정도 적응했지만, 바쁜 것이 힘들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였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푹 한숨을 내쉬자, 다들 힘들어서 집에 얼른 가야겠다며 한 마디씩 보탰다.


"치쨩, 손목 괜찮아? 부었는데."

"응, 집에 가서 찜질하고 파스 붙이려고."

"꼭 해. 아프겠다."


아까 볼 박스를 들다가 조금 삐끗한 오른쪽 손목이 아팠다. 유이가 말한 대로 척 보기에도 좀 부었고. 아까 에어파스를 좀 뿌리긴 했는데도 이렇다.


"윽."


손목을 살살 돌려보다가 결국 윗도리를 교복으로 갈아입는 건 포기했다. 치마는 입었지만 단추 잠그기가 싫어서. 어차피 집으로 직행이고 볼 사람도 없는데 뭐. 아픈 손목 참을 정도의 메리트는 없지. 애써 납득하며 트레이닝복 상의의 지퍼를 끌어올렸다.


"나 먼저 갈게. 내일 봐."

"응, 내일. 치료 꼭 해!"

"조심히 가세요, 치하야 선배."


아직 옷을 다 갈아입지 않은 친구들과 후배에게 인사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과는 집으로 가는 방향이 반대라서 먼저 나오는 것도 종종 있는 일이다.


"아이고오."


삐끗한 손목 뿐만 아니라 힘들게 일한 몸 곳곳이 삐그덕거린다. 얼른 집에 가서 목욕하고 자고 싶다. 숙제 있었던가.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걸음을 옮기던 중, 등 뒤에서 불쑥 익숙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마나카 선배."

"어, 토죠 군."


말을 걸어온 것은 한 학년 아래의 후배인 토죠 군이다. 토죠 히데아키. 착하고 성실하고 귀엽고 상큼하고 친구도 많은 남자애.


내가 좋아하는 후배다.


그러니까, 소위 연애감정 같은 의미로.


"아."

"안녕하세요."


언제나 그렇듯이 상큼하기 그지 없는 웃는 얼굴이 인사해왔다. 윽, 젠장 귀여워. 멋대로 마구 속도를 높이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려고 하고 있자니 다시 말을 걸어왔다.


"집에 가세요?"

"응. 가야지. 토죠 군은 뭐해?"

"저는 잠깐 배트 휘두르러 나왔다가 선배가 지나가시길래 인사 드리려고요."

"아하."


역시나 라고나 할까, 아무튼 야구부 애들은 전부 연습벌레들 뿐이니까 정규 연습 시간이 끝나고도 스스로 이런 시간까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는 것도 늘 있는 일이었다. 길에서 딱 마주친 것도 아니고, 매니저가 멀리 지나간다고 인사하러 달려오는 녀석은 또 이 녀석 뿐이긴 하다. 토죠 군이 누구에게나 상냥하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착각은 하지 않지만, 좋아하게 된 것이 딱 이런 부분이니까 멋대로 설레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렇구나, 연습 열심히 하고 내일 봐."


멋대로 열이 오른 얼굴이 석양 때문이라고 착각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역시 어색해지는 건 싫으니까. 애써 평정으로 빚어낸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네. 내일…어."


토죠 군이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인사하려다가 표정을 굳혔다. 커다랗고 딱딱한 손이 살짝 조심스럽게 내 손목을 쥐는 바람에 자리에서 펄쩍 뛸 뻔했다.


"오, 왜?"


세상에. 심장아 진정해. 그렇게 뛰다간 손목에 심장이 붙어있는 줄 알겠어. 대동맥류 같은 건 줄 알겠다고. 애써 진정하려고 했지만 손목에 느껴지는 토죠 군의 체온에 얼굴이 확확 달아오르는 것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다치셨어요?"

"아, 응. 조금."


그렇게 눈에 띄었나. 내가 보기엔 엄청 부어보이진 않았는데. 토죠 군은 내 손목을 내려다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더니, 부어오른 부근을 살짝 엄지로 쓸어내렸다.


헉. 미쳤나봐. 천연 진짜 어떡하니.


"아프겠다."

"응, 아니, 어. 괜찮아. 안 아파. 아니, 안 아프진 않은데."


머리가 잔뜩 꼬여서 횡설수설이다. 토죠 군은 맑은 얼굴로 한 번 고개를 갸우뚱했다가 다시 살살 부어오른 손목을 쓸었다.


"부었어요."

"으, 으응."


와. 얘가 지금 내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이 빅뱅을 일으키고 있는지 알면 이렇게 덥석덥석 만지지 못할 텐데. 그냥 걱정하는 것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손이 닿은 부분에서 열이 올랐다. 


"치료는요?"

"어, 집에 가서…."


뭐 토죠 군이 누구한테든 상냥한 천연이라는 건 알고 있다. 이런 부분이 대중적으로 여자애들에게 인기 있다는 것도 안다. 그냥 짝사랑일 뿐이라는 것도, 모를 수가 없다. 그래도 설레는 건 내 마음이니까 괜찮잖아. 들키지만 않으면.


호흡을 깊게 들이쉬다가 토죠 군과 눈이 마주쳤다.


"선배."

"어, 어?"

"아프지 마세요. 걱정 돼요."

"……."


잠깐 심장이 내려앉았다. 토죠 군의 상냥한 눈을 보면서 잠깐 할 말을 잃었던 사이, 다시 말이 이어졌다.


"다들 걱정하니까요. 네?"

"…아, 응."


뭘 멋대로 또 심쿵하고 있어. 얘는 그냥 천연인데. 그냥 매니저를 걱정하는 것뿐인데. 그냥, 그냥…어차피 들키고 싶지 않아서 혼자 전전긍긍하는 짝사랑일 뿐인데.


"아, 어. 버스 놓치겠다. 얼른 가야겠어. 내일 보자!"


아직 버스 시간까지는 10분도 더 남았지만 변명할 수밖에 없었다. 바쁜 척하며 토죠 군에게서 떨어졌다. 애초에 그리 세게 잡혀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살짝 힘을 주자 손은 금방 풀렸다.


"안녕히 가세요."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보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라, 보이고 싶지 않았다. 눈물이 찔끔 나고 있었을 테니까.



역시 짝사랑 따위 최악이다.


상대가 악의 따위 없는 천연이라면 더 최악이다.


"선배, 안녕하세요. 손목은 좀 괜찮으세요?"

"으응. 어제 찜질하고 잤더니…."

"다행이네요."


그리고, 또 다시 웃으며 걸어오는 말에 설레버리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최악의 바보 멍청이인 것 같다.







ㅇㅅㅇ쀼

토죠..나쁜 아이는 아닌데...아니지만....

제목은 트렌디하게 지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