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다이아몬드 에이스

[다이에이/드림/카미야 카를로스 토시키] 내 귀에 초코

양철인간 2016. 1. 24. 22:56

*전력 드림 60분

*주제: 귓속말

*다이아몬드 에이스 카미야 카를로스 토시키 드림

*예전 전력 참가작 <첫인상의 함정>(링크)과 이어집니다~

*짧아여




내 귀에 초코




고등학교 2학년이 되고도 어느덧 한 달. 이제 나는 새로운 학년, 새로운 반, 새로운 반장 일, 새로운 친구들에게 익숙해졌다.


그건 다시 말해서,


"도와줄까?"


열심히 짧은 팔을 뻗어 칠판을 지우고 있으면 옆으로 불쑥 다가와서 내 손에서 칠판 지우개를 가져가는 새로운 짝꿍―카미야 카를로스 토시키 군, 통칭 카를로스에게도 익숙해졌다는 뜻이었다.


"아, 카를로스."


농구의 세계에서 기적의 세대 같은 별명이 붙어 있을 것 같이 생긴 외모와 달리 친절한 카를로스는 종종 이렇게 갑작스러운 친절을 베풀 때가 있었다. 특히 내가 반장 일 때문에 바쁠 때 자주 그랬다.


"고마워."


처음에는 불쑥 뒤에서 말을 걸면 소스라치게 놀라 자리에서 튀어 올랐었는데 요즘은 꽤 익숙해져서 아무렇지 않게 감사인사를 할 수 있게 됐다. 물론 그런 요즘도 갑자기 옆에서 불쑥 튀어나온 갈색 손이 넘어질 뻔하는 걸 붙잡아주는 데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긴 하지만.


"뭐. 키는 내 쪽이 더 크니까."


대수롭지 않은 듯이 대답하는 카를로스는 확실히 이렇게 옆에 서 있으면 고개를 한껏 들지 않고는 거의 눈을 마주치기도 힘들 정도로 키가 컸다. 전에 물어봤을 땐 185cm 정도 된다고 했었나. 내가 한껏 까치발을 들어도 닿기 힘든 칠판 저 위 구석까지 쉽게 슥슥 지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좀 부러워졌다.


"좋겠다."

"뭐가?"

"키 커서."

"아하."


한껏 부러움을 담아 이야기하자 저 위에 있는 얼굴이 내려다보며 여유롭게 피식 웃었다.


"부럽단 얘기 많이 들었나봐."

"그렇게 말하는 녀석들은 많았지만 여자애한텐 처음 들어보는데."

"정말? 신기하네."

"여자애들은 굳이 크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잖아?"

"그런가. 난 크고 싶은데. 키 큰 쪽이 멋져보여."


나는 어릴 때부터 언제나 모델 같은 체형을 동경했다. 셔츠랑 스키니진만 입고도 멋져 보이고 싶지만 작은 키로는 좀 무리지. 칠판 지울 때도 높은 서랍이나 책장을 정리할 때도 불편하고. 매일매일 접사다리를 들고 다닐 수도 없으니까.


"불만이 많구만."


투덜투덜 불평을 늘어놓자 우리 반에서 제일 큰 갈색 피부의 남학생이 피식 웃으면서 칠판 지우개를 돌려줬다.


"카를로스는 작아본 적 없어서 모르는 거야."

"그런가. 어릴 땐 작았었는데."

"그건 성장과정의 일부고어릴 때 나는 늘 반에서 제일 작아서 150cm만 넘기게 해달라고 매일매일 빌었단 말이야. 그래본 적 없지?"


소학교 1학년 때부터 쭉 반에서 제일 작았던 여자애의 고민 같은 걸 185cm의 고등학교 2학년이 알 리가 없다. 아마 어릴 때도 반에서 제일 컸겠지. 그렇게 추측한 게 사실이었던 듯 카를로스가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반에서 제일? 대체 얼마나 작았던 거야?"


커다란 손이 내 머리 근처를 한 번 스치고 지나갔다. 갑작스러운 동작에 놀라서 약간 움찔했지만, 스친 손은 그냥 키를 가늠해보려는 용도였나보다. 카를로스는 자기 어깨 쯤에서 멈춘 손을 보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하긴 지금도 작네. 그래도 반에서 제일까진 아니지 않아? 좀 커서 다행인가."

"아, 예. 반에서 제일 크셔서 좋으시겠어요."


그래, 너 키 커서 좋겠다. 한참 위에 있는 갈색 얼굴을 흘겨보다가 고개를 팩 돌렸다. 하여간 키 큰 놈들은 안 돼요.


"삐쳤어?"

"아닌데요."


삐죽거리면서 자리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커다란 손이 슬쩍 어깨를 잡았다. 뒤이어 귓가에 가까워지는 숨소리.


"뭐, 너는 작아서 귀여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가 귀에서 속삭였다. 헉. 깜짝이야. 뭐, 뭐야. 목소리 반칙이다. 깜짝 놀라서 한 손으로 귀를 감싼 채 카를로스를 돌아봤다.


"진짜로."


평소보다 가까운 위치에 있는 초콜릿색 얼굴이 씩 웃었다.


"……."


낮은 목소리가 닿았던 귀가 뜨거웠다.


아니, 사실은 얼굴 전체가 뜨거웠다.










...원작에서는 맨날맨날 야구만 하느라 평범한 생활이 없는 카를로스 오빠(고2)지만...

오빠의 혈관에 흐르는 정열의 피를 믿는다 정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