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에이/드림/코미나토 료스케] 환불이 불가한 상품입니다
*전력 드림 60분
*주제: 너의 곁에서 잠들게 해줘
*다이아몬드 에이스 코미나토 료스케 드림
*전체관람가^^
환불이 불가한 상품입니다
나에게는 남자 친구가 있다. 키는 썩 크지 않고 피부는 나보다 하얀 데다 성격도 나쁘고 심술 궂은 동갑내기로, 이름은 코미나토 료스케라고 한다.
처참한 수강 신청 실패로 인해 어쩌다 보니 듣게 된 교양 과목에서 어쩌다 보니 같은 조가 되어 같이 과제를 하고, 또 어쩌다 보니 같이 행동하게 되고 또 어쩌다 보니 고백(비슷한 것)을 받아 사귀게 되었다.
"내일 연습시합 하는데 보러 와."
"나 야구 모르는데."
"날 보러 오라는 뜻이야."
"코미나토 군을 보러 가면 재밌어?"
"글쎄, 좋아하는 사람을 보고 있는 건 재미있지 않아?"
"네…?"
아니야 다시 생각해 보니까 고백을 받았다기 보다 나한테 고백을 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내 취향은 키 크고 어깨 넓고 멍뭉이 같은 타입의 연하남이었는데 어쩌다 코미나토 료스케랑 사귀게 되었던 걸까.
그러니까 분명히 여자친구가 되어달라는 말을 듣고…
"바보야?"
"나?"
"나랑 사귀는 중이잖아, 너."
"네?!"
…그런 적이 없군.
뭐 아무튼.
늘 여유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야구를 할 때는 악바리처럼 이 악물고 덤비는 점이나, 성격 나쁘고 심술 궂지만 얄미운 말을 한 마디씩 하면서도 정신 차리고 되짚어 보면 은근히 배려해주고 있다거나, 내가 술 퍼먹고 꽐라가 되어 전화하는 날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독설을 퍼붓지만 결국 데리러 오는 점이라거나…뭐 이런 저런 장점이 있어서 결국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기는 하다.
료스케는 조금 꼬인 것 같긴 해도 근본은 멋있는 남자라고 생각한다.
―취향이 이상한 것만 빼면.
"…이게…뭐야?"
"보고 싶었던 호러 영화."
떨리는 손으로 까맣고 시뻘건 컬러에 도끼와 톱 같은 게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포스터를 가리키자, 커플 콤보를 시켜 들고 나오고 있던 료스케가 대수롭지 않은 듯이 대답했다.
"…………."
모처럼 영화를 보자는 말에 들떠서 혼신의 힘을 다해 꾸미고 나온 내가 나빴다. 샤랄라한 신상 원피스에 구두 신고 화장하고 머리까지 말고 나온 내가 다 잘못했다.
"나, 나 이런 피 튀기는 거 못 보는데?!"
"알아."
"아는데 왜!?!"
"내가 보고 싶으니까?"
"혼자 보고 오면 안 돼?"
"안 되는데?"
말이 안 통하니 이길 자신이 없다.
"저기요 하나님 부처님 료스케님."
"빨리 와."
키는 나랑 얼마 차이도 안 나는 주제에 이상하게 힘이 센 료스케에게 질질 끌려서 결국 영화관에 입장했다. 팝콘이랑 콜라를 손에 들려줬는데도 전혀 안정 되지 않았다.
"이, 이, 이거 무슨 내용이야?"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연쇄 살인마의 영혼이 곰인형에 빙의해서 혼자 사는 여대생을 살해하는 걸 전직 형사랑 퇴마사가 붙잡는 내용."
"꺄아아악!!!"
집에 가게 해주세요. 제발요.
물론 코미나토 료스케라는 이름의 악마는 그걸 허락해주지 않았다.
남자친구 바꿔치기 하게 해주세요.
"뭐라고?"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하……………."
하얗게 불태웠어….
장장 135분의 사투였다. 처음부터 보지 않으려고 했다가 '방금 나온 배우 잘생기지 않았어?' 하는 말에 눈을 떴다가 귀신과 눈이 마주친 게 세 번. 무서운 장면이 나올 것 같아서 눈을 가리고 있으면 료스케가 '지나갔어' 하는 말에 고개를 들었다가 귀신이랑 또 다시 랑데뷰 하길 세 번. '아, 이제 곧 끝나겠다' 하는 말에 눈을 떴다가 다시 귀신과 눈물의 재회를 한 게 두 번.
솔직히 내가 심장마비로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다리가 풀려서 영화관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몇 분을 소비하다가 간신히 나와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려니 억울함만 계속 쌓여간다.
"재밌었어? 나는 재밌었는데."
"……………."
남친 환불해주세요. 불량품인 것 같아요.
"응? 뭐라고?"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22
"가자, 맛있는 거 사줄 테니까."
"…………."
야 넌 내가 맛있는 거면 다 되는 줄 알았으면 정말 대단한 지혜야.
얻어 먹은 서로인 스테이크는 입에서 녹았다. 자본주의의 돼지는 배만 부르면 그저 다 꿀좋다꿀.
거하게 기름칠을 한 배를 두드리며 거리로 나왔다. 료스케와 팔짱을 낀 채 걷다가 멈춰선 곳은 어째서인지 인형가게 앞이었다.
"이거 사줄게."
"네?"
료스케가 가리킨 건 아까 영화에서 나와 몇 번인가 눈이 마주쳤던 귀신 역의 주연배우 곰인형과 똑닮은 인형이었다.
"………이거 아까 영화에서 본……거랑 닮지 않았어?"
"응. 그래서."
뭐가 그래선데. 뭐가.
"안 사줘도 되는데!!!"
"응, 안 받는 건 없어. 이거 주세요."
왜 없는 건데. 저기 계산 먼저 하고 있지 말래. 곰인형 필요 없는데!!!
"자."
"………."
"흐음. 집까지 들어다줄까?"
"…………."
아니 필요 없으니까. 집까지 들고 가면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어질 거야. 환불해주세요. 제 남친 코미나토 료스케 씨랑 함께요.
"혹시나해서 말하는 건데 환불한다거나 버린다거나 뭐 그런 귀여운 짓을 하면 알지?"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333
결국엔 남친도 곰인형도 환불하지 못하고 내가 자취하는 집까지 와버렸다…. 야무지게 녹차까지 한 잔 얻어마신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난 료스케가 내게 (억지로) 곰인형을 안겨주며 언제나 그렇듯 악마처럼 웃었다.
"으으."
저주 받은 곰인형을 얼른 품에서 떼어내 던지…지는 못하고 귀부분만 검지와 엄지로 잡아들었다. 아 인형 진짜 싫은데. 이상한 영화도 보고…무서워…. 오늘 못 자면 어떡해. 진짜 인형이 살인마로 변하고 그럴 것 같단 말이야. 하필이면 자취하는 여대생 죽이는 영화…왜죠.
"나 갈게."
싱긋 웃은 료스케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아, 안 돼!!! 영화에서도 딱 이런 장면 있었단 말이야!! 남자친구가 가버리니까 인형이!! 이렇게 이렇게!!!
아 제발.
눈을 꽉 감고 손을 뻗어 료스케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료스케!!!"
손에 잡혔던 천조각이 빠져나가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서 눈을 떴다.
"료, 그, 헉."
"왜?"
료스케의 얼굴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
아. 말해야 하는데. 뭐라고 말하지.
"…오,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갈래? 아무도 없는데."
그야 혼자 사는 집이니까 원래 아무도 없지. 바보냐.
"흐음? 아무도 없는 남의 집에서 자는 취미는 없는데."
"아니, 아니. 나만 있다구!!"
일일이 말꼬리 잡지 마라.
"자고 가라고?"
"으응…."
"싫은데."
왜죠?
"…제바알…."
"제발 뭐?"
"제발 옆에서 같이 자주세요 료스케 님…."
기도하듯이 양손을 모은 채로 료스케를 쳐다보았다. 약간 눈앞이 일렁거리는 게 눈물이 나는 것 같다.
"응? 제발…."
"진심이야?"
료스케의 웃음이 평소보다 꿍꿍이 짙어보인다.
"제발 옆에서 자게 해줘…진짜 못 잘 것 같단 말이야. 악몽 꾸면 어떡해. 무서워."
"못 잘 것 같아서 자고 가라는 건 좀 말이 안 되지 않아?"
료스케의 손이 내 손 위에 겹쳐졌다. 료스케의 얼굴이 더 가까이 다가와서, 숨결이 코끝을 스쳤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지만, 파고든 것은 입술이 아니라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내가 못 자게 만들 텐데."
꿀꺽. 나는 내 목구멍으로 침이 넘어가는 소리를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귓가에서 숨소리가 멀어지는 것과 동시에 눈을 떴다. 응, 하고 작은 소리로 대답하자 료스케가 셔츠의 단추 하나를 풀었다.
"…후회 안 하지?"
고개를 채 다 끄덕이지도 못했던 건, 다음 순간 바로 료스케의 손이 뒤통수를 잡아 끌어당겼기 때문이었다.
그 날은 료스케의 예고 대로, 정말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이 인형 버려도 돼?"
"아니."
…하지만 역시 남자친구는 환불하는 게 좋겠어.
"뭐라고 하지 않았어?"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불가능해 보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