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에이/드림/이사시키 쥰] 너와 나의 연결 창문
*평일 드림 전력
*주제: 창문
*다이아몬드 에이스 이사시키 쥰 드림
*급전개 캐붕 주의
너와 나의 연결 창문
이사시키 쥰에게는 혼자서 조용히 즐기고 싶은 취미 한 가지가 있다. 이미 같은 기숙사에 사는 사람들끼리는 다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아무튼 이사시키 쥰의 다소 은밀한 취미는 순정만화를 읽는 것이다.
은밀하다고는 해도 어딘가의 야망가처럼 가방 속에 순정만화가 들어있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다면 내 말에 복종해! 하는 협박에 휘둘릴 정도로 치명적인 약점은 아니다.
존경하는 인물에는 망설임 없이 미우치 스즈에를 꼽지만 후배가 순정만화 잡지를 사왔다고 보고하는 것은 부끄럽다. 그런 정도의 은밀함이었다.
딱히 전력으로 감출 일은 아니지만 대놓고 말하고 다니기는 싫다. 굳이 좀 더 말하자면…여자애들에게는 약간 더 감추고 싶은 취미였다. 누나가 둘이나 있고 여자애들하고 평범하게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그게 꼭 여자애와의 관계에 면역이 있다는 뜻은 아닌 법이다.
가능하면 여자애에게는 취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딱 한 사람은 예외였다.
"이사시키! 이번 사랑하자♡ 신간 봤어?"
쉬는 시간이 되면 근처로 쪼르르 달려와서 만화 이야기로 속닥속닥 말을 걸곤 하는 같은 반의 여자애. 올해로 3년 째 같은 반이 된 여학생은 이사시키의 유일한 덕질 메이트였다.
"아니 아직. 왜? 뭐 대단한 내용 있냐?"
"어! 있잖아. 이번 신 캐릭터 완전 내 취향."
"넌 잘생긴 남캐면 다 좋아하잖아."
"아니거든? 내 취향은 흑발에 쿨하고 과묵하고―"
이사시키는 책상 옆에 서서 종알종알 열심히도 떠드는 여자애를 보고 피식 웃었다.
"이사시키, 듣고 있어?"
"어."
두 사람이 만화 이야기를 하게 된 건 1학년 때의 일이었다.
"왁!!"
"!!!?"
1학년이었던 이사시키 쥰은 아무 생각 없이 학교에 들고왔던 만화책(커버 씌움)을 들고 창가에서 노닥거리다가, 뒤에서 자신을 놀래킨 코미나토 료스케 덕분에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놓쳤다.
"으악!!"
이사시키가 창밖으로 떨어트린 것은 당시 그림이 예쁘다고 상당히 입소문을 탔던 신인 작가의 순정만화였다. 손을 뻗었지만 중력 가속도에 착실하게 힘입은 만화책은 허망하게 이사시키의 눈앞에서 지상에 착지했다.
창문 아래를 지나가던 여자애의 바로 앞에.
심지어 올려다보는 얼굴이 눈에 익었다. 같은 반이었다.
"어?"
여학생이 어리둥절하게 책을 주워들고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까지 확인한 이사시키는 결국 창틀에 이마를 박았다.
망했다.
완전 망했다!
이사시키가 아는 여자라는 생물이란 순정 만화를 보는 남자를 놀리는 걸 좋아하는 생명체였다. 자신을 순정만화의 길로 끌어들인 누나들조차 그랬고, 중학교 때 매니저 선배도 같은 반 여자애도 전부 마찬가지였다.
아마 이번에도 마찬가지겠지. 화내지 말자. 이사시키는 겸허하게 마음을 비우고는 여자애가 계단을 올라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젠장."
그런다고 짜증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지만.
만화책을 학교까지 들고 온 자신을 욕하고 뒤에서 놀래킨 료스케를 한 번 노려보고 놀란다고 책을 창밖으로 던져버린 자기 자신을 또 한 번 욕하고 있었더니 곧 계단 아래에서 눈에 익은 얼굴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이사시키 군! 이 책 네 거니?"
"아, 어…."
여자애는 예상 외로 담백한 태도로 책을 그에게 돌려주었다.
"이 만화 나한테 2권 있는데 별로 재미 없어. 안 샀으면 빌려줄까?"
그리고 예상 외의 친절을 베풀었다.
놀란 채로 무의식 중에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애는 잘 생각했다고 웃었다.
"자, 여기! 돈 아낀 걸 고맙게 생각하게 될걸."
정말 다음 날 빌려준 같은 시리즈의 2권은 심각하게 재미가 없었다.
"고맙다."
이사시키는 빌린 만화책을 돌려주며 음료수를 하나 같이 넘겨주었다.
"재미 없었지?"
"…어."
여자애의 물음에 이사시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시키에게 있어서 그녀는 마음 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여자이자 편하게 취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여자애였다.
"………."
…단순히 그것뿐만은 아니었지만.
"야."
"으, 응?"
이사시키는 종알종알 열심히 떠들던 여자애가 어느 순간인가 복도쪽 문을 멍하니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뭐…아. 테츠."
"쥰. 잠시만."
옆 반의 유우키 테츠야가 찾아온 것이다.
이사시키는 여자애에게 짧게 양해를 구하고선 자리에서 일어나 유우키에게 다가갔다. 같은 반인 료스케나 마스코도 함께 모여 복도로 자리를 옮겼다.
"오늘 오후에―"
유우키의 말을 들으면서 힐끔 교실로 난 창문을 넘겨다 보았다. 아직도 책상 옆에 선 채인 여자애의 시선이 자신을 비껴가있다는 것 쯤은 쉽게 알았다.
옆에는 유우키 테츠야가 있었으니까.
"쳇."
사실은 사랑하자♡의 새 조연을 모른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어쩐지 테츠를 닮았다고 처음부터 생각했었다.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쥰?"
"엉. 계속 얘기 해."
아마 야구로는 평생을 가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4번 타자.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여자애가 늘 눈으로 쫓는 사람.
'이 남자한테는 도무지 이길 수가 없단 말이지.'
이사시키는 슬쩍 창가에 몸을 기댄채, 창문 안으로 비치는 여자애의 발그레해진 얼굴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손끝에 닿은 유리가 차가웠다.
그쯤에, 마음 한 구석에 있는 창문이 한 장 깨진 것도 같았다.
포카포카인 줄 알았져? 훼이크다!!!!
쥰 선배 조아해 정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