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다이아몬드 에이스

[다이에이/드림/유우키 테츠야] 내 남친이 이렇게 장기귀신일 리 없어!

양철인간 2015. 9. 19. 00:23

세련님이랑 연성딜

다이아몬드 에이스 유우키 테츠야 드림

캐붕 주의




내 남친이 이렇게 장기귀신일 리 없어!




"후우."


딱히 운동을 한 것도 아닌데 숨이 가빠서 호흡하기가 힘들다. 심장을 꽉 조여오는 긴장감이 전에 없이 강렬했다.


"히히후 하하후."


세련은 긴장을 출산하기 위해 호흡하며 5초에 한 번씩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제 곧 약속…이라고나 할까 일방적으로 기다리겠다고 편지에 적어둔 시간이다.


'나와줄까?'


상대가 열심히 쓴 편지를 무시할 사람이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떨리는 소녀의 마음은 일말의 불안감도 놓치지 않고 뇌내 증폭 시키는 법이다. 아주 잠깐 편지에 대해 걱정하는 사이 세련의 머릿속에서 자신이 신발장에 넣은 편지는 이제 유리병에 넣어져 바다에 둥둥 떠내려 가고 있었다.


"안돼앳!"


그대로 떠내려 가다간 무인도 연쇄 살인사건의 의문점이 되어버렷!!! 봉투에 이름을 써놔서 용의자가 되어버렷!!!!


"아. 잠시."


의식의 흐름을 스무 단계 쯤 건너 뛴 망상을 폭주시키던 세련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헉!"


심장 멈출 뻔.


뒤돌아본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이제껏 기다리던 사람의 모습이었다.


"유, 유우키 군!"

"세련."


유우키 테츠야. 세이도 고교 야구부 주장이자, 세련이 1학년 때부터 내내 좋아했던 남학생이었다.


"이 초청장은 네가?"


'초청장….'


따지고 보면 사랑으로의 초청장이긴 하다.


"아…응!"

"그렇군. 무슨 일이지? 장기의 상대라면 언제든 가능하다만."


세련은 미친 듯이 빠르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애쓰며 심호흡했다. 고백을 목전에 앞둔 소녀의 두근거림은 심호흡 따위로 가라앉을 만큼 녹록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다지 쓸모는 없었지만.


"저기…."

"?"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키 180cm의 남학생이 귀엽게 보이는 것은 콩깍지인 게 틀림없다. 그 콩깍지가 씌인 것도 어언 2년 째. 3학년의 여름이 끝난 지금 지지부진한 짝사랑에 종지부를 찍을 때도 되었다.


"조, 조, 좋아해!!!"


딱히 긍정의 답을 바라고 한 고백은 아니었다. 상대는 유우키 테츠야. 야구에 전부를 쏟아붓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러니까 여태까지 미루고 미뤄 3학년의 마지막 여름 예선도 은퇴 경기도 끝난 지금에서야 속내를 털어놓기로 한 것이었다.


그냥, 전에 같은 반이었던 여자애가 자신을 좋아했었다는 사실 정도는 알아주었으면 했다. 아주 가끔 유우키가 헤매고 있는 묘수풀이에 해답을 내주곤 했던 시간이 더할 나위 없이 설렜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 대답이 '미안하다'여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여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마도.


울지 않을 자신은 없었지만.


긴장 탓에 심장이 어찌나 빠르고 세게 뛰는지 손끝까지 맥박이 느껴진다. 귓가에 북이 울리는 느낌이었다.


"…그래."


그래서 유우키의 대답을 듣지 못할 뻔했다.


"어?"

"알았다."

"어어?"

"내일 두시에 시내의 맥도날드 앞에서 보지."

"어어어?????"


이게 무슨 상황이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한 모든 대화가 엇나갔다. 충격으로 사고회로가 일시정지한 세련이 입을 뻐끔거리건 말건 자신의 말을 모두 끝마친 유우키가 몸을 돌렸다.


"……."


이거 꿈인가?


남겨진 세련은 볼을 한 번 세게 꼬집었다가 바닥을 뒹굴 뻔했다.






"후하."


사람들이 잔뜩 오고가는 맥도날드 앞에 서서도 도저히 현실이라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세련은 초조하게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다시 볼을 꼬집을까 했다가 아침부터 일어나 온갖 난리를 치며 화장을 했다는 걸 깨닫고 다시 손을 내렸다.


"눈 감았다 뜨면 아 시발 꿈인 거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니 눈도 못 깜빡이겠다. 세련은 뻑뻑해진 눈을 감지 않으려고 애쓰며 두 시를 가리키는 손목시계를 300번째 들여다보았다.


'간절한 소망이 들려준 환청이었다거나….'


어쩐지 부정적인 생각만 솟아오른다. 이대로 집에 돌아가서 자는 쪽이 빨리 꿈에서 깨지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던 세련의 귓가에 유우키 테츠야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련."

"유우키 군?!"


환청이 아니었어.


리얼 유우키는 척척 걸어서 입을 떡 벌린 세련의 옆으로 다가왔다.


"늦어서 미안하다."

"아, 아냐 아직 두 시 오 분 전인걸…."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서 십오분 전부터 나와있었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그럼 가지."

"어? 아, 응!"


어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구 끝까지라도 따라가겠습니다!!!


라고 다짐할 것도 없이, 얼마 걷지 않아 유우키의 발걸음이 멈췄다.


"여기다."


올려다본 간판에 멋드러진 한자가 쓰여있었다.


<카가 장기 기원>


장기


기원


그야 장기부니까 익숙한 장소이긴 하지만.


"…?"


세련은 머리 위에 물음표를 한 가득 띄운 채 성큼성큼 앞서 들어가는 유우키의 뒤를 어정쩡하게 따랐다.


아무리 사랑에 눈이 먼 소녀라도 이 상황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날 유우키에게 내리 세 판을 이기면서 유우키의 장기 실력도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Q. 보통 야구부에서는 첫 데이트 때에 장기 기원에 가나요?


A1. 도랏?

A2. 야구부→망함 장기 기원→폭망함 다른 애 찾아보세여

A3. 헤어져

.

.

.

An. 데이트에 관해 궁금하시군요? 데이트닷컴에서 최저가를 알아보세요!


"…."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하다.


세련은 스마트폰의 화면을 끄고서 진지하게 생각에 잠겼다.


유우키 테츠야는 데이트=같이 장기를 두는 행위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첫 데이트 뿐만이 아니었다. 그 뒤에도 만나 함께 장기를 두고, 쉬는 시간에 종종 찾아와 초급 묘수풀이를 보여주고, 세련이 답을 알려주면 대단히 만족한 기색으로 돌아간다. 저번 주에는 장기 잡지를 들고와서 세련에게 건네주고 가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그러면서도 세련에게 한 번도 장기로 이겨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연애란…이런 건가!?"


물론 그럴 리가 없다.


세련이 데이트의 효용 가치에 대해 실존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을 유우키는 아는지 모르는지(모를 가능성이 유우키 테츠야가 장기 대결에서 패배할 확률보다 높겠지만), 오늘도 새로운 묘수풀이 책을 세련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거 아닐까?"

"음, 그렇군. 고맙다, 세련. 많은 도움이 된다."

"아, 아니야."


장기를 그렇게 좋아하면서 왜 못 두는 걸까. 유우키 테츠야의 재능 스탯은 야구 분야에 몰빵 된 걸지도 모르겠다.


장기 존못인 유우키 군도 귀엽지만!!!


세련은 팔불출 학부모 같은 생각을 하며 기쁜 듯이 묘수풀이 책에 해답을 적어넣는 유우키의 옆얼굴을 감상했다.


"그럼 이만."

"아, 응. 이따 봐!"


세련은 유우키가 옆 반으로 돌아가는 것까지 확인하고 자리로 돌아와서야 오늘도 '남자친구'와 장기 이야기 밖에 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헉."


인생은 사실 카레카노보다는 고스트 장기왕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세련, 유우키 군이랑 데이트 하면 뭐해?"

"장기를 두고…."

"장기를?"

"장기를 보고…."

"…?"

"장기 묘수 풀이를 하고…."

"???"

"장기 잡지 스크랩을 하고…?"

"그거 장기부활동?"


방과 후, 친구들과 모인 김에 연애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런 말밖에 할 수 없었던 것만 봐도 그랬다.


"유우키 군이 자기 시간과 세련의 장기 수련을 등가교환하자고 했어?"

"알고 보면 천 년 전에 장기를 두다가 죽은 장기의 천재 귀신?"

"장기부의 기적의 세대?"


전부 아니지만. 마음대로 장르 넘나들지 마라.


"…그래서 진짜 사귀는 건 맞는 거지?"


세련은 친구가 그렇게 묻고 나서야,


"어?"


유우키에게 고백에 대해 '그래' 이상의 대답을 들은 적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생각해보면 그렇다.


애초에 유우키에게 그렇게 쉽게 긍정의 답을 얻었던 것부터 의심했어야 했다. 머릿속이 전부 야구로만 가득 차있는 사람인데. 연애라는 게 뭔지나 알지 모르겠다. 좋아하는 남자에 대한 평가로는 박할지도 모르지만 사실이니까 어쩔 수 없다.


'장기를 좋아한다고 알아들었나?'


세련의 생각에는 더할 나위 없이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이 이상으로 말이 되는 가설은 없다. 세련은 리만의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수학자 같은 태도로 '장기'라고 빼곡히 써둔 종이를 노려다보다가, 고개를 푹 꺾었다.


장기.


장기 말이지.


그럭저럭 좋아하는 편이니까 취미로 장기부에 들었고, 가끔 시간이 날 때 두긴 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남자아이와의 모든 시간을 장기로 도배하고 싶을 만큼 좋아한 적은 없다. 오히려 유우키 테츠야가 오해했다고 생각하니 장기라는 글자도 보고 싶지 않아졌다. 장기라는 글자만 봐도 소름 돋네요. ㅈㄱ라고 써주세요.


"하…."


유우키 군에게는 그거 아니라고 얘기해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 같아졌다. 착각하고 있는 쪽이 행복했던 걸지도. 세련은 더할 나위 없이 우울해진 기분으로 책상에 쿵 머리를 박았다.


'집에 가면 장기판 창고에 처박아 버리자….'


힘 없이 생각하고 있으려니 머리 위에서 지금 듣고 싶은 건지 듣고 싶지 않은 건지 모를 목소리가 이름을 불러왔다.


"세련?"

"!"


유우키 테츠야였다.


"유, 유우키 군!"

"안색이 나쁜데."

"아, 아니야 괜찮…."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내저으려다가, 유우키의 손에 들린 <월간 장기>의 표지를 눈에 담은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다.


"어?"


이게 아닌데.


"세련? 잠시만. 어째서?"


세련은 통제할 수 없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유우키가 당황하는 모습은 레어하구나 고화질로 저장하고 싶다…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눈물은 한참만에야 멎었다.


"이제 진정 했나?"

"으응…미안해."


세련은 유우키가 드물게 허둥대며 가져온 스포츠 타올로 눈가를 닦으면서 계속 코를 훌쩍거렸다.


"무언가 고민이 있다면 말해도 좋다."


나름대로 열심히 생각해서 내놓은 답인가보다. 유우키 군은 은근히 다정하단 말이야. 세련은 화끈거리는 눈을 깜빡이며 타올의 끄트머리에 새겨진 유우키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있잖아, 유우키 군. 그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말해야 하니까. 세련은 몇 번이나 입술을 깨물다가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


"…나 사실 장기 별로 안 좋아해. 아니, 좋아하긴 하는데그렇게 막 엄청 좋아하지 않아. 미안."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천둥 같다. 세련은 도무치 유우키가 무슨 표정을 하고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왜 이제와서 말하냐고 하지 않을까. 아니 유우키니까 윽박지르거나 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그렇군."


복잡해진 세련의 머릿속과 달리 들려온 대답은 시원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러면 다음에는 세련이 좋아하는 일을 하자."

"…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서 본 유우키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 없었다.


"나, 저기, 장기 좋아하는 게 아니라…."

"음. 이해했다. 장기 외에 다른 활동을 하자는 뜻이지."

"…?"


눈을 깜빡이자 아직 고여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서로 좋아하는 활동을 하는 거라고 들었다."


유우키의 얼굴은 눈물에 흐릿해지고도 진중한 기색을 잃지 않았다.


"데이트라는 것은."

"…어?"

"쥰의 말로는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걸 좀 더 알아보는 게 좋을 거라고…세련?"


데이트.

여자친구.


유우키의 입에서 진중하게 흘러나온 단어의 뜻을 이해한 순간 다시 눈물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어째서."


덕분에 유우키 테츠야는 오늘로 두 번째 인생의 당황스러움을 맞이해야 했다.


"유, 유우키 군…좋아해애…."

"…음."


유우키는 잠시 당황으로 굳어진 얼굴로 세련을 내려다보다가 그녀의 손에서 타올을 가져가 조심스럽게 세련의 얼굴에 대주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세련의 얼굴에 닿은 타올에서 열기가 느껴졌던 것은 흘러넘친 눈물 탓만은 아니었다.










ㅎㅎㅎ

ㅎㅎㅎㅎㅎ

캡틴..조아합니다..정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