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에이/드림/코미나토 료스케] 실눈을 부탁해!
배늘빛님이랑 연성딜
다이아몬드 에이스 코미나토 료스케 드림
캐붕설붕 주의
약간 욕설 주의
실눈을 부탁해!
생각해보면 이제까지 내 인생은 썩 럭키했던 것 같지는 않다.
작게는 이제껏 살면서 아이스크림 당첨 막대가 나와본 적이 없고, 우산을 들고온 날은 비가 오지 않다가 어깨가 아파 우산을 빼놓고 온 날은 반드시 폭우가 쏟아진다. 그 외에도 핸드폰을 떨어트리면 꼭 액정이 박살나 버리고 만다거나 졸고난 다음에는 꼭 문제 풀기에 불려나간다거나 하는 소소한 악운들부터 집안이나 가족 문제 같은 커다란 액운들까지.
세세하게 따져보니까 내 인생은 모든 해가 삼재라는 듯이 전부가 악운에 잠식되어 있었다.
그래도 나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인생을 살고자 하는 착하고 성실한 여고생이었으므로 이 악운들이 액땜이 되어 언젠가 커다란 행운으로 복리를 껴안고 인생 통장에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잃지 않고 살아왔다.
예를 들면 로또 1등에 당첨 된다거나.
어쩌면 상점가의 이벤트에서 스탠드형 에어컨에 당첨될지도 모르고.
그것도 아니면 언젠가는 좋아하는 연예인의 콘서트 따위에서 계를 탈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포지티브하게 살아온 내 인생 예상도에, 이렇게까지 커다란 악운이 이렇게 난데없이 뒤통수를 때리는 그림은 한 번도 그려진 적이 없었다. 악운 이 새끼 스위치 히터였냐.
"…………."
"……………………."
늦잠을 자서 미친 듯이 달려오느라 산발이 된 머리를 하고 치마 밑에 체육복을 입은 차림새로 담을 넘다가 지나가던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월담 중?"
이렇게 외양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진 모습에.
"아, 아, 안녕 코미나토…군…."
게다가 상대는 옆자리에 앉긴 하지만 거의 이야기해본 적 없는 야구부의 남자애. 더해서 세상에서 제일 만만치 않다고 하는 실눈캐릭터.
"늘빛한테 이런 모습이 있을 줄은 몰랐네."
심지어 나는 '결코 월담 따위는 하지 않을 청초하고 조신한 여고생'을 연기하는 중이었다.
"…………."
이런 식으로 믿음을 배신해도 괜찮은 건가. 그렇게 내 인생에 악운을 뻥뻥 터트려도 전부 이해해주려고 했는데. 내가 이렇게까지 악운에 뒤통수 만루 홈런을 얻어맞을 만큼 잘못 살아왔던가.
나는 문득 18년 인생을 반추해보며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나의 인생에 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악운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19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 필요가 있다.
19년 전의 어느 봄날,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사랑의 도피를 감행했다.
사랑의 도피를 하기까지 신파 드라마로 만들면 적어도 12부작은 나올 듯한 눈물과 감동과 반전의 드라마가 있으나 그건 지금 상황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으니까 생략하도록 한다. 중요한 건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랑의 도피를 했다는 사실과, 그로 인해 어머니가 외가로부터 의절…까진 아니더라도 썩 화기애애한 사이로 지내오지는 않았다는 것뿐이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이돌이었더라면 럽스타그램을 나누는 바람에 팬들로부터 빈축을 샀을 사랑꾼들이었고 외가 쪽이 다소 지나치게 부자였을 뿐이지 두 분 다 벌이를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결혼 생활은 꽤 행복했던 것 같다.
문제는 몇 년 전 어머니에게 치료가 힘든 병이 생겼다는 데에서 발생했다. 분명히 현대 의학기술로 완치할 수 없는 병은 아니었지만 치료에 돈이 많이 드는 병이었다. 노후자금도 대출도 전부 쏟아부었지만 아버지 혼자만의 수입으로 이후 치료를 감당하는 건 무리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외가쪽에 손을 벌렸다. 어머니의 아버지, 그러니까 나의 외조부는 생각 외로 순순히 어머니의 치료비를 부담하는 데에 동의했다.
한 가지 조건을 걸어서.
"손녀가 내 지인이 이사장으로 있는 사립 학교에 진학해 모범적인 학교 생활을 보내는 데에 동의한다면."
…이라는 조건이었다.
존나 귀*니세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올 뻔했던 맹렬한 태클은 마음 속에 꾹 눌러참아야 했다.
중학교 시절을 조금, 정말 조오오금 활발하게 보낸 편이긴 했고…학비도 대준다고 했고 어머니의 치료비로 정말 가계가 힘들긴 했으니까 여러 모로 나에겐 선택권이 없었던 셈이다. 어쨌든 어머니는 수술 받고 정말로 나아졌으니까 조금쯤 감사의 의미도 있긴 했다.
"알겠느냐. 아가씨처럼 굴어야 한다."
그렇게 나는 할아버지의 서재에 꽂혀있던 W줄*엣의 영향을 받은 게 분명한 그 조건. 만화로 그렸다간 진부하다고 욕 먹을 게 뻔한 그 조건. 그것을 등에 무겁게 업은 채로 세이도에 진학했다.
"늘빛은 정말 아가씨 같아."
"어머, 호호."
뭐 로자리오라도 주랴.
지난 몇 달 간, 나는 피나는 노력을 통해 뇌와 입 사이에 뚫린 고속도로에 교통 통제령을 내리고 조신한 아가씨처럼 구는 데에 그럭저럭 괜찮은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늘 월담 중에 코미나토 료스케를 만나지만 않았더라면 전부 괜찮았을 것이다.
적어도 5분만 더 늦거나 5분만 빨랐더라도.
아마도 그랬더라면.
"………그런 이야기입니다."
학교 벤치에 불편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서 말도 안 되는 가정사정을 줄줄이 늘어놓을 일도 없었을 거고.
"헤에. 그렇구나."
코미나토 료스케의 실눈 미소에 이렇게까지 마음 졸일 일도 없었을 거고.
"그럼, 내가 말해버리면 전부 끝나는 거네?"
실눈답게 복흑인 게 분명한 코미나토 료스케의 협박성 발언에 머리를 조아릴 일도 없었을 거고.
"아~ 잘 부탁해?"
…이렇게 코미나토 료스케의 빵셔틀 겸 시다바리 겸 꼬붕으로 하위 전직하게 되는 일도 없었을 텐데.
내 인생은 망했어.
존나 망했다고.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은 법이니. 어떻게든 만회하고 싶다면 주변에 숨어 있는 미래인을 탈탈 털어서 타임머머신이라도 강탈하는 수밖에 없을 테지만.
"늘빛."
"네, 네네. 말씀하시죠."
아무튼 그렇게 해서―나는 인생의 악운에 코미나토 료스케라는 한 획을 더하게 된 것이었다.
왜죠?
지금까지 인생만으로도 충분히 스펙터클했는데.
…아니요 죄송합니다. 이제까지 제 인생은 평탄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럼, 내가 말해버리면 전부 끝나는 거네?'
웃으면서 그렇게 협박할 때 알아봤어야 했다.
코미나토 료스케가 과연 실눈의 악명에 걸맞게 악독한 놈이라는 것을. 목소리가 이시다 아키라도 유사 코지도 아니라고 안심할 게 아니었어. 수신관 같은 놈. 존나 3번대 대장 같은 놈. 뒤늦게 사실 아이젠 죽이려고 붙어있었지롱! 한다고 용서해줄 것 같냐!!! 실눈 핵지뢰입니다. 실눈 내려주세요.
"늘빛."
"예, 예."
물론 제가 용서하고 말고 할 입장은 아닙니다만.
"늘빛. 매점 가서 빵 좀 사다줄래?"
오늘도 코미나토 료스케는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아침도 못 먹고 학교로 달려온 나에게 빵 심부름을 시키더니.
"아, 역시 안 먹는 게 좋겠다. 너 먹어."
라며 사람이 열심히 걸어가(이미지 상 학교에서 뛸 수 없으므로) 사온 빵을 먹지도 않고 나에게 버렸다.
개새끼. 키도 나만한 게. 코시엔 못 갔다고 화풀이 나한테 하냐.
"뭐라고?"
"아니,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요."
실눈 주제에 눈치도 빨라요.
"지금 먹어."
빵 먹을 시간 까지 정해주시는 대단하신 코미나토 님 덕분에 수업 시간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는 안 났다만. …이거 설마 내가 고마워 해야 하는 타이밍은 아니겠지.
"늘빛, 도서실 가서 괴담 전집 다음 권 빌려다줘."
음, 아닌 것 같다.
"그러고 보니까 늘빛, 요즘 코미나토 군이랑 자주 붙어 다닌다?"
"아…."
"혹시 코미나토 군 좋아해?"
진짜 정말로 존나 아닌 것 같다.
"아니, 아니!! 절대 아니!"
"그렇게까지 부정하지 않아도 돼. 비밀로 해줄 테니까."
"아니, 그거 아니라니까!!!!"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는 말 누가 만들었냐. 뜨뜻미지근한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죽어버릴 것 같다.
"늘빛."
"앗, 코미나토 군이 불러 늘빛!"
"내 립글로스 빌려줄까?"
"마스카라 해줄까?"
죄송합니다. 죽게 해주세요.
"…어떡할거야 코미나토…내가 핑크빛 학창시절에 대해 기대할 수 있는 건 올해가 마지막이었는데."
"뭐가 문제야?"
"내가 너 좋아한다고 소문 나서 날 좋아하던 놈들이 고백도 못하고 졸업해버리면 어쩔 거냐고!"
"하하. 자신감이 지나친 걱정 같은데."
산뜻하게 웃으면서 독설 쩐다.
"내 마지막 고교 시절마저 솔로로 암울하게 끝나버리면 책임질거냐고!"
"책임지면 되지 뭐. 그런데 늘빛, 책 잘못 빌려왔는데. 이 출판사 말고 다른 출판사 걸로 부탁해."
…존나 다 됐고 코미나토 료스케 죽어라. 진짜 좀 죽어줘라.
물론 내가 마음 속으로 열심히 코미나토 료스케의 인생이 끝나길 빈다고 해서 갑자기 악마가 나타나 '악마이자…집사이니까요.' 하고 코미나토의 뒤통수를 갈겨주진 않는다. 아니 애초에 악마가 나온대도 코미나토랑 동족일 테니까 나 대신 복수해줄 것 같진 않다.
"3학년 은퇴 경기 하니까 보러 와줘."
다시 말해 그것은 내가 이 청유형 문장의 형태를 하고 있는 명령을 거부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야구부도 아닌 제가 왜 야구부 3학년 은퇴 경기를 구경하러 가야 하죠? 가서 뭐 치어리딩이라도 뛰어주랴? 영문을 1도 모르겠는데요.
물론 그렇게 말할 용기는 없었으므로 얌전히 구경하러 가긴 했다.
예? 수험 준비요? 그게 뭐가 중요하지?
그리고 뭐, 네.
"아자아앗!!"
이제 은퇴하실 분들의 어른스럽지 못한 전력 경기 잘 보았읍니다.
여전히 영문도 국문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열심히 뛰어다니는 야구부원들을 보고 있자니 왠지 마음이 뜨거운 것도 같고. 머리도 뜨겁고. 이건 그냥 더워서인가. 집에 가고 싶다. 집에 가서 찬 물로 샤워하고 선풍기 틀고 사이다 마시면서 티비 보고 싶다. 예? 수험 준비요? 그게 또 뭐가 문제죠?
청춘 야구 드라마도 끝난 것 같고 슬슬 집에 가도 되려나. 늦은 것 같은데.
"늘빛."
손목 시계 한 번 코미나토 한 번 번갈아 보면서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다가, 초면인 야구부의 몇 명과 함께 펜스 근처로 다가온 코미나토의 부름에 딱 몸을 굳혔다.
아니 제가 도망가려고 했던 건 아니고요. 아니 어쨌든 끝까지 보긴 했잖아. 내가 꿀릴 게 뭐가 있지??? 인생? 인생인가? 그건 어쩔 수 없지만.
"잘 봤어?"
"………아, 뭐."
뭐 3학년이 어른스럽지 못했던 경기 잘 봤냐고 물어도 말이지….
"봐줬으면 해서 초대했는데 별로 즐겁진 않았나봐."
평범한 경기였다면 즐겁게 봤을지도 모르지만 코미나토 니가 있던 시점에서 존나 다 끝난 얘기라고요. 데드볼이라도 처맞지 그랬냐.
"유감이네."
"아니, 아닙니다. 즐거웠습니다."
물론 마음 속의 생각을 그대로 꺼내놓을 수는 없었으므로 거짓말을 해보았습니다.
"거짓말이네."
바로 들켰지만. 내 마음 유명한 투리구슬인 줄.
"형…. 이 분은?"
코미나토의 뒤에서 고개를 내민 남자애(코미나토랑 똑같이 생김)가 입을 열었다.
"아, 늘빛. 이쪽은 내 동생인 하루이치. 그리고 하루이치, 이쪽은 늘빛."
"동생분이시구나…어쩐지 똑같이 생겼,"
"내 여자친구야."
네?
"코미나토 씨? 코미나토 료스케 씨? 지금 뭐라고 하셨…?"
"내 동생인 하루이치."
"아니 그거보다 뒤. 뒤에. 뒤에 말한 거."
"내 여자친구라고?"
내 고막 고장난 건가? 아닌가. 환각인가. 환술사냐.
한 손으로 퍽 귀를 때려봤지만 딱히 뭐가 변하는 것 같진 않았다. 미안한데 이거 꿈입니까? 악몽?
"에? 에엑?"
"진짜로?!"
"료상 어느 사이에!!!"
저마다 놀라움을 표하는 야구부원들 사이에서 코미나토는 계속 실눈으로 웃고 있었다.
"저기, 교제라는 건 일반적으로 쌍방 동의 하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었는가…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소심한 츳코미를 걸어봤다.
"응? 책임진다고 했잖아?"
코미나토는 여전한 실눈으로 상쾌하게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책임을…."
"솔로로 학창시절 끝나는 게 싫다고 했으니까."
"……책임을 누가 이딴 식으로 지라고 했냐 이 미친 실눈 또라이야!!!!"
아.
어머니 아버지 죄송합니다.
외조부님이 수술비를 이자까지 쳐서 갚으라고 하시면 그건 전부 코미나토 료스케가 저를 야구부원들 앞에서 일코해제 시킨 탓입니다.
모든 것은 코미나토 료스케(형 쪽임) 탓이니 부디 코미나토 료스케를 탓하세요.
"어디서 뛰어내리면 됩니까?"
"늘빛, 좋아한다니까?"
"~~~!!!"
이상,
실눈지뢰인 주제에 실눈캐에게 설레버린 이 시대의 셋쇼마루, 불초 딸 올림.
료스케 형님
미안합니다
내 탓 아입니다 드씨 이미지가 넘 쎘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