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에이/드림/후루야 사토루] KTKR!
난님이랑 딜
다이아몬드 에이스 후루야 사토루 드림
핵시리어스물
난정에게는 현대 의학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지병이 있었다.
이른바 <선천적 노잼 분노 증후군>.
누군가가 노잼인 드립을 치면 오른손에게 강냉이 추수의 규율을 강요하고 싶어지는 것을 억제할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마는 엄청난 병이었다.
이 무시무시한 병은 심각하고도 끈질겼다. 그 어떤 의사들도 전부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만들며 난정의 인생보다도 긴 시간 그녀를 괴롭혀왔다.
"안녕, 우리 아가. 어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단다…핫, 만날 날을 기다려? 키타코레! 만기적금이란다!"
아직 난정이 어머니의 뱃속에 있던 시절 아버지가 처음으로 핵노잼 다쟈레를 뱉어낸 날, 아버지가 얼굴을 대고 있던 부위를 맹렬하게 걷어찬 것이 난정의 첫 발병 증상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버지는 난정의 이름을 지단이나 메시라고 짓자고 주장하다가 어머니에게 등짝을 얻어맞았으니, 이 무서운 병의 후폭풍을 더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난정은 도무지 현대 의학으로는 치료할 수도 없는 무시무시한 질병을 앓으며 오랜 시간 인내해야 했다. 노잼 개그를 들어도 손이 먼저 나가지 않게 훈련받는 것은 힘든 시간이었고, 2차 사회화를 담당해야 할 또래 집단에서 무난잼 이상의 드립을 들을 수 없었다는 것은 정말이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벌써 16년.
힘든 통제 훈련과 효과 없는 치료와 노잼 수준의 완화 교육…기타 등등을 거치며 기나긴 인고의 세월을 보내온 난정은 이제 상태가 정말 좋아졌다.
병을 완치시킬 수는 없었지만, 이제 누군가가 한두번 핵노잼 드립을 치는 정도로 온 몸이 진동하며 히어로 저스티스 조크의 진심 펀치를 날릴 것을 요구하지는 않게 되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따라다니며 하루에 몇 번씩 핵노잼 개그를 치지 않는 이상 거의 일반인과 다르지 않은 수준의 학창 생활을 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난정은 남들처럼 평범하게 웃고 떠들고 수업 시간에 도시락도 까먹고 마피아 남친도 만나고 옆자리 친구가 알고 보니 지구를 구한 변신소녀고…뭐 그런 키라키라 스펙타클한 학창시절을 보낼 예정이었다.
틀림 없이 즐거운 핑크빛 학창시절이 될 것이었다.
…분명히 그랬어야 했는데.
"난정, 레게 한다고 들었는데."
"응? 내가?"
"나 설레게."
진정해라, 나의 보이지 않는 왼손!!!
난정은 순간적으로 잃을 뻔했던 통제력을 간신히 되찾아오는 데에 성공했다.
"후, 후루야…그, 그거 어디서…배웠어…?"
그러나 너무나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빡침에 호흡이 떨리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이것은 완치될 수 없는 병이었다.
"…책에서."
"그 책 좀 가져와봐."
"왜?"
"분서갱유 좀 해보게."
분서갱유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순순히 책을 가지러 가는 후루야의 잘생긴 뒷모습을 보며 난정은 천천히 숨을 가다듬었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잘못 되어 버린 걸까.
난정은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보기로 했다.
4월,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선 교실에서 후루야 사토루는 단연 눈에 띄는 존재였다. 고등학교 1학년 치고는 큰 키에 샤프하니 잘 생긴 얼굴. 교실 안의 여학생들은 적어도 한 번씩 후루야에게 시선을 주었지만, 가만히 입을 다물고 창가를 보는 무표정에 어쩐지 말을 걸기 어려운 냉기가 맴돌았기 때문에 말을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어쩌다 보니 옆자리에 앉게 된 난정에게는 후루야의 무표정한 얼굴이 외로워 보였다는 것이 조금 달랐을지도 모른다. 완치가 불가능한 지병 때문에 스스로 사람들에게서 거리를 두어온 난정은 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조금 보았다고 생각했다.
"안녕."
난정이 용기를 내어서 말을 걸었을 때,
"……아."
후루야는 표정 변화가 그리 심하지 않은 얼굴로 놀람을 표시했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아주었다.
거기서부터 뭔가가 잘못 된 것이었을까.
아니면.
"후루야!! 너 완전 대단하잖아!! 저번에 연습시합 하는 거 봤어!"
야구도 잘 모르면서 변덕으로 구경하러 갔던 세이도 야구부의 연습 시합에 대해 멋대로 떠들어댔던 게 잘못이었던 걸까.
그것도 아니면.
"후루야, 낙제 걱정 되면 시험 공부 좀 도와줄까?"
쓸데 없이 얼마 없는 친절까지 끌어 모아 생애 첫 친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게 나빴던 걸지도.
아니, 어쩌면…후루야한테 먹기 싫은 피망을 넘겨줬던 게 큰일이었던 건가. (후루야가 사온) 빵에서 나온 백곰 모양 스티커를 선물이랍시고 줬던 게….
"난정. 여기."
심각하게 고민에 빠져있던 난정의 등 뒤로 후루야가 다가와 책을 내밀었다.
"어, 그ㄹ………."
생각에 잠긴 채로 책을 건네 받아 눈으로 제목을 훑다가 잠깐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릴 뻔했다.
<신경 쓰이는 그녀의 마음을 lock-on하는 101가지 유우머>
"……………후루야?"
설마 야구바보, 피에 적혈구 대신 야구공이 있고 뼈는 야구 배트로 이루어져있을 후루야 사토루가 이런 책을 읽을 거라곤 상상해본 적도 없다.
아니 애초에 책을 읽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아예 안 해보긴 했지만.
훈련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난정은 저도 모르게 후루야의 등을 두드릴 뻔 했다가,
"재미있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해서…."
이어진 후루야의 말에 온 몸을 굳혔다.
"…………누가?"
야구 선수인가?
같은 팀의 포수? 미유키인지 긴다이치 하지메인지 그 사람? 아니면 에이스 자리를 두고 다투고 있는 다른 반의 투수?
그러나 후루야의 대답은 난정의 예상을 훌륭하게 빗나갔다.
"난정이. 저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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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정이. 저번에.
의 검색 결과
0건.
"…제가요?"
한참 입을 뻐끔거리던 난정이 할 수 있었던 말은 그것이 전부였다.
"후루야, 너 요즘 인기 장난 아니더라. 다른 반 여자애들도 다 너한테 말 걸고 싶어서 난리야."
"…별로, 됐어."
"왜? 인기 많으면 좋잖아."
"난정이 있으니까…됐어."
…그 복선을 의식했어야 했나?
난정은 손에 들고 있던 <신경 쓰이는 그녀의 마음을 lock-on하는 101가지 유우머>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후루야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난정은 안 착하니까."
"에? 어? 응?"
"내 마음에 안착해."
어울리지 않게도 대단히 성실하게 책을 읽은 모양인 후루야 학생에게 난정의 분노의 펀치가 날아갔던 것은, 완치가 거의 불가능한 지병을 앓고 있는 그녀가 어떻게 컨트롤 할 수 있는 범위의 일이 아니었다.
난정의 풀네임
이즈키 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