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원피스: 내가 빠순이인 건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선장님이 나빠!

[원피스/드림/트라팔가 로우] 감기...세상이 허락한 유일한 질병

양철인간 2015. 5. 3. 23:31

*전력 드림 60분

*주제: 감기 조심해

*원피스 트라팔가 로우 드림

*오리주(이름 있음) 주의 내용 1도 없음 주의




감기...세상이 허락한 유일한 질병




지금으로부터 어언…몇 년 전이더라? 내가 태어나기 전인 건 확실한데. 아무튼 오래 오래 전에 해왕류가 담배 피던 시절 해적왕은 죽으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찾아라! 세상의 모든 보물을 거기에 두고 왔으니!'


이 말로 인해 대 항해 시대가 열렸다.


수많은 젊은이들은 해적이 되어 바다로 나섰고, 위대한 항로로 향했다. 대부분은 항해 중에 재산을 잃고 목숨을 잃고 사회가 무너지고…아 아직 무너지진 않았던가. 뭐 해적이 생기기 전에도 어디든 개판이었던 건 마찬가지니까 해적 탓을 할 것도 아니라고 봐.


아무튼, 이렇게 수많은 젊은이들이 생업을 내팽개치고 배를 탄 덕분에 조선소가 살아나고 조선소 일꾼들이 돈을 받고 자식들을 먹여살렸다. 또 해적은 남의 보물 뜯어온 돈으로 선원을 먹여살리니 경제는 활성화되고 인구는 늘어나고…이렇게 수많은 나비효과를 거쳐,


현재…위대한 항로에는 교통체증이 생겼다.


골드 로저 개새끼.


너 때문에 위대한 항로가 붐비잖아….


물론 명절 때 고속도로에서 차가 기어가는 수준의 교통체증은 아니라서 휴게소에 언제 도착하나 생각하며 변의를 참지는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보다 조금 더 생명의 위협이 느껴지기는 했다.


"죽어라, 죽음의 외과의!!!!"


왜냐하면, 이 바다의 교통체증이란 항로가 겹치는 다른 해적단이랑 한 판 붙는 거거든.


물론 이 배의 비전투원 the only one인 저는 캡틴 방 책상 아래에 웅크리고 숨어있습니다. 나가봤자 할 수 있는 건 그거밖에 없거든. 썸바디헲미! 뭐 이런 거. 숨어 있는 게 도와주는 거니까 도와주고 있는 거야. 완전 적극적인 도움.


쾅!!!


큰 소리와 함께 배가 흔들리는 느낌이 났다. 으 이러다 배 부서지는 거 아니야? 무서운데. 물론 밖에 상황을 확인하러 나가기는 더 무섭지만. 몇 시간처럼 느껴지는 몇 분이 지나고, 소리가 잦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캡틴이 이겼나? 이겼겠지? 우리 캡틴은 2억 베리 현상범인걸. 초신성인걸. 이겼을 거야. 


불안하게 눈을 깜빡이고 있으려니 복도에서부터 발소리가 들려왔다. 뚜벅뚜벅. 남자 구두소리. 초조하게 끌어안고 있던 캡틴 쿠션(수주, 1만 베리 들었음)에 힘을 더 주었다. 곧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미샤. 끝났다. 나와."

"캡틴!"


캡틴 목소리다. 기쁜 마음에 얼른 책상 밑에서 기어나오다가,


"으악!!"


책상에 머리 박았다.


아프다.


"책상 밑에는 왜 들어가 있어서."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아 있으니 캡틴의 손이 살살 머리를 만졌다.


"악!"


왠지 부딪힌 데를 세게 누르는 것 같은데 기분 탓입니까.


"이 정도면 금방 가라앉을 거다."

"아퍼책상 좀 말랑말랑한 거 쓰면 안 돼요?"

"말이 된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

"음, 아니요."


그냥 말해봤어요. 표현의 자유라는 건 누구한테나 있는 거잖아요.


"캡틴은 어디 안 다쳤어요? 다른 사람들은?"


화끈화끈거리는 머리를 한 손으로 살살 문지르며 캡틴을 올려다봤다. 일단 육안으로는 멀쩡해 보이기는 하는데. 누가 다쳤으면 캡틴이 이렇게 여유 부리고 있지도 않겠지만, 일단은.


"빨리도 물어보는군."


캡틴이 피식 웃으면서 한 손으로 다시 내 머리를 눌렀다. 아까보다 확연히 힘이 빠진 손길이라 아프지는 않았다.


"멀쩡해. 그보단 네 머리 쪽이 중상일 것 같은데."


내 머리는 원래부터 상태가 이상하니까 아무래도 좋다. 그렇게 말하자 캡틴이 미묘한 표정으로 자기 모자를 내 머리에 덮어씌웠다. 아, 내 모자 방에 두고 왔다. 머리 위의 모자를 만지작 거리고 있으려니 캡틴이 손으로 등을 밀었다.


"갑판으로. 지금쯤이면 정리가 되었을 테니까."

"네엥."


캡틴과 함께 복도를 걸어 갑판으로 나왔다. 갑판에 남아있는 싸움의 흔적은 이제 작은 그을림 정도 밖에 없었다. 바다 저편에 둥둥 떠가는 시커먼 남의 배의 실루엣이 보였다.


"선장!"

"미샤 데려왔어요?"

"미샤, 우리 보물 얻었다."

"연회합시다!!"


캡틴 주변으로 모여서 와글와글 떠드는 동료들도 다들 멀쩡해보여서 조금 안심했다.


"연회는 섬에 도착해서 하도록. 베포, 다음 섬까지 얼마나 걸리지?"

"아이아이, 캡틴! 앞으로…30분 예정! 이미 겨울섬 권역이니까."

"좋아. 상륙 준비를 해둬."


방금 전투를 끝내고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동료들을 구경하고 있자니 어쩐지 또 소외감이 느껴질락 말락하는 기분이……미샤씨의 해적 인생 이대로 괜찮은가. 전생에서부터 돈 많은 백수가 장래희망이긴 했지만…꿈이 이뤄진 듯 만 듯한 기분인데.


"엣취."


아 근데 춥다. 겨울섬 권역에 들었다더니 진짠가보네. 옷 사이로 스며드는 찬 바람에 몸을 움츠렸다. 그래 내가 추운데 백수고 나발이고 뭔 상관이야!! 다 꺼져 선실로 갈 거야!!!


"미샤."


캡틴이 이름을 부르는가 싶더니, 어깨 위로 뭔가 시커먼 게 걸쳐졌다.


"입고 있어."

"엥."


캡틴의 겨울 코트였다.


"캡틴은 안 추워요?"


일단 꾸물꾸물 코트 소매에 손을 넣어봤다. 나한테 모자도 주고 코트도 주고 괜찮나 모르겠네.


"멀쩡해."


느긋하게 팔짱을 끼는 캡틴의 모습에서는 과연 노스블루 출생의 위엄이 느껴졌다. …아니 뭐 나도 태어난 곳은 겨울섬 자란 곳은 노스블루이긴 한데….


"근데, 캡틴 이거."

"미샤, 넌 감기에 잘 걸리니까 조심해둬."

"내가 언제 또 그렇게 매일 걸렸다고. 아니 근데 진짜 이거!"

"우리 배에 있는 감기약은 전부 너한테 처방되는 걸 잊은 모양이지. 입고 있어. 또 열 나서 앓지 말고."


아니, 감기 조심하라고 걱정해준 건 고마운데.


그건 진짠데.


"…코트 바닥에 끌린단 말이에요…."


갈 길이 너무나 멀어 소매에서 채 빠져나오지도 못한 양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


머리 위의 캡틴은 한동안 할 말을 잃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