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드림/스가와라 코우시] 한국인의 매운맛을 쬐끔만 맛보거라
60분 동안 씁니다~~~
세련님 리퀘
하이큐 스가와라 코우시 드림
급전개 주의
개노잼 주의
한국인의 매운맛을 쬐끔만 맛보거라
'꼭 이러려고 했던 건 아닌데….'
세련은 걱정스러운 마음을 담아, 귀까지 빨개진 채 눈물을 글썽거리는 스가의 하얀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스가, 괜찮아?"
"………."
스가는 입을 열 기운도 전부 눈물을 참는 데에 집중시킨 것 같다. 평소라면 웃으면서 해주었을 대답을 고개만 끄덕이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그나마도 상당히 힘겨워보였기 때문에 세련은 손수건으로 조심스럽게 스가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주었다.
'안 괜찮아 보이는데……….'
무릎 위에서 꽉 쥔 주먹에도 피가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지금의 스가 본 누구라도 100퍼센트, 하나도 괜찮지 않아 보인다고 할 것이다.
고집은 부리지 말지.
세련은 다시금 걱정을 담아 스가를 들여다보며 초조하게 손 안의 생수병에 힘을 줬다가 뺐다가를 반복했다.
한참만에 간신히 스가가 입을 열었다.
"며, 몇 초 남았어…?"
세련은 몇 음절 되지 않는 말도 힘겨워보이는 스가의 입술을 힐끗 보고, 스탑워치에 시선을 옮겼다.
"어…34초."
스탑워치의 숫자도 느리게 떨어지는 것 같다. 세련은 4에서 3으로 바뀌는 숫자를 노려보며 괜한 이야기를 꺼낸 과거의 자신을 질책했다.
'괜히 시작했어. 저건 괜히 가져와서.'
한숨을 쉬며 곁에 널부러진 불닭볶음면의 포장지를 노려보았다.
그랬다.
모든 것은 이 맵기 짝이 없는 인스턴트 라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세련이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인생사의 굴곡을 타고 흘러흘러 미야기로 이사오게 된 것은 작년 초의 일이었다.
일본어라고는 게임과 드라마 씨디와 아니메로 습득한 타노무요..타에라레나잉다! 내지는 오레니 캇테루노와 오레다케다..☆ 정도 밖에 말할 수 없었던 시절, 눈물에 젖어 추억의 책장을 넘기기에도 찝찝한 그 옛날 세련에게 친절하게도 먼저 말을 걸어주었던 것이 같은 반의 스가였다.
일부러 천천히 정확하게 발음하며 이름을 알려주고, 학교를 안내해주고, 시험범위도 교과서 내용도 전부 알려주었다. 유튜브 어디선가 한국어 영상을 보고 왔다며 더듬거리는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주었던 것도 스가였다.
그런 사람을 좋아하게 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세련은 숨쉬고 밥을 먹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스가와라 코시에게 사랑에 빠졌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자연의 법칙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스가도 자신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은 아주 약간 예상 범위 밖이었지만.
덕분에 이런저런 시행착오와 장애물과 생고생의 산을 넘어, 스가와라와 세련은 올해 드디어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두 사람은 아주 모범적인 커플이었다. 수업 시간에 조는 것을 깨워주고(주로 스가가), 시험기간에는 도움을 주고 받고, 배구부 연습이 끝나면 사이 좋게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고, 함께 매운 음식을 찾아 음식점 대탐험을 떠난다.
두 사람이 모두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는 점은 어쩌면 운명적인 요소였을지도 모른다. 데이트할 때에 굳이 메뉴를 골라가며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뜻과도 같았으니까. 덕분에 두 사람은 데이트 코스를 고를 것도 없이 사이 좋게 매운 음식 투어나 떠나면 되는 나날들을 보내왔다.
아주 만족스럽고 행복한 커플의 나날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련이 일본의 소위 '엄청나게 매운' 음식들의 스코빌 지수에 그다지 만족하지 못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어릴 적부터 청양고추 라땡 틈새라면 불닭볶음면 등등으로 다져져온 세련의 혀를 이기기에 일본의 음식들은 너무나 마일드했으므로, 세련은 맵다고 하는 음식들에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며 근 1년을 참은 끝에 결국 한국에 남아있는 가족에게 SOS를 치게 되었다.
그 결과, 한국에서 택배로 불닭볶음면이 도착했다. 기쁜 마음으로 혼자 불닭볶음면을 끓여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고 있던 세련의 의식은 곧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스가에게 도달했다.
'같이 먹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일본의 매운 음식(쑻)을 좋아하는 스가에게 한국의 매운맛을 보여주고 매워서 죽을 것 같아하는 얼굴을 보고 싶다는 이유가 없었다고도 말할 수 없다. 세련은 사실 조금 S였다.
어쨌든 스가와의 데이트에 불닭볶음면을 챙겨간 세련은 스가에게 그것을 내밀며,
"스가, 이거 다 먹고 5분 동안 물 안 마시고 매운 거 참으면 소원 들어줄게!"
라고 말했고, 덕분에 두말할 것도 없이 도전을 외친 스가는 현재…….
"몇 초…?"
"16초!! 조금만 더!"
"크으으………."
새빨개진 얼굴로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초세기나 하고 있는 신세가 된 것이었다.
'역시 가져오는 게 아니었어….'
스가가 눈물을 참는 얼굴은 꽤 좋긴 하지만.
세련은 후회인지 뭔지 모를 마음으로 초조하게 스탑워치와 스가를 번갈아 흘끔거렸다. 느리게 초가 떨어지는 사이 또다시 식은땀을 흘리는 스가의 콧잔등을 훔쳐주었다.
"뭘 이렇게 열심히 참는 거야…."
하여간 스가도 의외로 자존심이 세다니까. 세련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초식남이라고 생각했던 스가도 아무튼 남자애인 것이다. 쓸데없는 곳에 자존심을 세우는 게 귀엽기도 하고 미련해보이기도 했다.
"10…9…8…."
그 사이에도 스탑워치의 숫자는 착실하게 떨어졌다. 세련은 카운트를 세며 손에 쥐고 있던 생수병을 스가의 손이 닿는 위치로 밀어주었다.
"2…1…0!"
0, 하고 입이 떨어지기 무섭게 스가는 생수병을 낚아채 입에 들이부었다. 500ml 짜리 생수가 동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성공이네. 축하해…?"
눈은 여전히 새빨갛지만. 세련은 캡사이신의 정열적인 대시를 필사적으로 참는 사이에 촉촉해진 스가의 눈매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뭐가 다행이야."
하여간 남자애들은 미련하다니까. 혀를 차는 세련을 보고 스가가 웃었다.
"성공했으니까 세련, 소원 들어주는 거지?"
"어? 어…응. 그래야지."
세련의 대답에 스가가 한층 더 빛나는 얼굴로 웃었다. 어쩐지 후광이 비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눈을 깜빡이는 사이, 스가가 몸을 일으켰다.
"음…안 되겠다. 잠깐만 기다려."
"어?"
세련은 어디론가 가버리는 스가의 뒷모습을 보고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지만, 스가는 어쩐지 초조해보이는 모습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뭐지.'
무슨 소원을 빌려고 하는 걸까.
'…봄잠바를 사달라거나?'
근 3개월을 사귀는 동안 세련에게 스킨십을 거의 요구하지 않은 스가의 청렴함을 생각하면 그리 비현실적인 예상도 아니었다.
이번 달에 쓸 수 있는 돈이 얼마나 되더라? 세련은 진지하게 머릿속으로 주판을 튕겨보았다.
"세련."
이번 달 식비를 줄이고 남는 돈이랑 다음 달 생활비를 땡겨 쓰면……까지 계산하고 있던 세련은 몇 분 만에 다시 자리로 돌아온 스가의 부름에 가상 가계부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응, 스가. 다녀왔어?"
"어…그게 있잖아, 내 소원은……."
아울렛 같은 데 가면 좀 싸게 살 수 있으려나? 하고 다시 현실적인 계산을 시작한 세련의 곁으로 바짝 스가의 얼굴이 다가왔다.
'민트…?'
왠지 치약 냄새가 나는 듯한,
"있잖아…세련. ………키스해도 돼?"
세련은 가까이 다가온 스가의 밝은 갈색 눈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것을 보았다.
"…………."
세련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5분…잘 참길 다행이네."
귓가를 스치는 스가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낮았다.
세련에게 처음으로 닿은 스가의 입술에서는 치약맛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