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드림/트라팔가 로우] 윗공기는 맑던가요
*전력 드림 60분
*주제: 키차이
*원피스 트라팔가 로우 드림
*캐붕 주의
*오리주 설정 주의
윗공기는 맑던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은 불공평하다.
그것도 왠지 나한테만 나쁘게 구는 것 같다.
엄청나게.
"………."
아니, 도대체 납득이 안 돼. 내가 뭘 잘못했다고? 세상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지?
창조주 씨, 아니 천룡인 말고. 대답 좀 해봐요. 내 설정 뽑기 할 때 발로 뽑았냐?
"………………."
도무지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담아 입 안에 든 빨대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어떻게 나한테만 이럴 수가 있지?
"미샤. 왜 그래? 누구 하나 때려 잡을 것 같은 표정을 하고선."
"엉?"
빨대를 짓씹으면서 옆을 돌아보았다.
"죄송합니다…."
눈이 마주치자 베포가 바로 사과해왔다.
"그래, 알면 됐어."
""뭘 알아!?""
일행들이 옆에서 사이 좋게 태클을 걸건 말건 별로 내 알 바 아님. 나는 베포의 죄를 사하여 주는 대신 앞발의 털을 만질 권리를 얻기로 했다.
음, 폭신폭신해.
이 세상의 부조리함에 상처받은 가슴이 약간 치유된다. 아주 약간.
"부조리한 건 너 같은데."
조용히 해.
"그래서, 왜 그러는데? 주스가 맛이 없어?"
"아니…."
너무 맛있어서 30초만에 흡입해버렸지.
"캡틴이 초콜릿 그만 사라고 해서 그래?"
"아니……."
그것도 우울하긴 하지만. 우울하다고나 할까 울고 싶은 기분이지만.
"그럼 왜 그러는데?"
샤치가 묻는 것과 동시에 예쁜 웨이트리스 언니가 테이블 옆을 지나갔다. 다리 짱 길다. 샤치의 시선이 웨이트리스 언니를 따라가다가 언니가 가게 안쪽으로 모습을 감추고서야 제자리로 돌아왔다.
어휴, 샤치도 빨리 연애를 해야 할 텐데.
"다들 말이야…."
"다들?"
"키가 너무 커……."
이 세계 사람들은 다들 키가 컸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만 있어도 3미터가 넘는 것 같은 꺽다리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2미터가 넘는 것 정도는 그렇게 특이한 일도 아니었다. 가끔 그 옆을 지날 때면 191cm나 되는 캡틴이 작아보일 정도다.
여자들도 다들 크다. 가슴도 크지만 키도 크다. 기본이 170cm쯤은 되는 것 같다. 힐까지 신고 또각또각 걸어가는 언니들을 보고 있으면 내 얼굴만한 가슴과 시선을 마주치게 되는 일이 일상다반사일 정도니까 부담스럽다.
그리고 카페에 오기 전에 혼자서 잠깐 들렀던 가게의 막내딸, 14살 여자애가 나보다 반뼘은 컸다.
나는! 난 18살인데!! 가게 주인한테 꼬마라고 불렸다고! 엄마 심부름 온 거냐고 물었다고! 나 현상금도 나왔는데! 해적인데!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180 넘는 아저씨랑 부딪혀서 넘어졌다고!! 키 작아서 안 보였다고 했다고!! 완전 아프다고!!!
빼애앵!! 운다!!! 울어버릴 테다!! 치료비 요구하면서 눈앞에 드러누워버리지 않은 걸 감사히 생각하시지!! 내 20단 고음 떼쓰기에는 자비가 없다!!
"그…………키는…앞으로도 크지 않을까?"
작년부터 1센티도 안 컸는데 크겠냐.
"미샤는…귀엽잖아. 그래. 괜찮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선생님.
거듭되는 노력에도 기분은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나는 결국 테이블에 엎드려서 팔에 고개를 파묻고 말았다.
아, 캡틴 보고 싶다. 어차피 키 작아서 캡틴이랑 나란히 서면 캡틴 어깨밖에 안 보이지만! 죽마라도 타고 다닐까. 하하하? 왜 눈에서 땀이 나지?
"어…캡틴 몰래 초콜릿 사다줄까?"
고심한 기색이 역력한 샤치의 말에 번쩍 고개를 들었다가,
"안 돼."
커다란 손에 정수리를 꾹 눌렸다.
이 익숙한 손의 크기와 감촉은!
"선장!"
역시 캡틴이다!
"옆으로 가, 옆으로."
일행들과 둘러앉아있던 테이블에 일사분란하게 빈자리가 생겼다. 캡틴은 뭔가 어려운 제목이 쓰여진 두꺼운 책들을 내려놓고 내 옆자리에 앉았다.
"초콜릿은 안 돼."
그리고 제일 처음 꺼낸 말이 이랬다.
"에엥."
너무해!!
"미샤, 의사로서 말하는데 네 식단에는 문제가 많다. 간식을 줄이고 채소를 더 섭취해."
"왜죠. 먹고 싶은 거 먹고 일찍 죽는 게 나은, 아! 아아!"
캡틴의 손이 인정사정없이 볼을 꼬집었다. 볼 떨어질 뻔했다. 아프다.
"의사 앞에서 잘도 말하는군."
"아퍼…."
한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고 있으려니 캡틴이 손가락으로 빈 주스컵을 가리켰다.
"칼슘 섭취량도 늘려. 이런 주스보단 우유를 마시도록."
"우유 싫은뎅."
"그러니까 이렇게 작지."
"…………."
캡틴의 말에 다시 테이블에 고개를 처박아버렸다.
작아서 죄송합니다.
나도 윗공기 마실 줄 아는데! 마실 수 있는데! 윗공기는 좀 더 상쾌하던가요? 그렇던가요?
"…미샤?"
"선장…."
약간 당황한 듯한 캡틴의 부름 뒤로 샤치가 탓하듯이 캡틴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오갔다. 나는 키 크는 악마의 열매 같은 건 없을까 생각하면서 멍하니 빈 주스잔 너머로 길거리를 내다보고 있었다.
나한테 숨겨진 무릎이 하나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펴면 20센티 쯤 커지게.
"미샤."
캡틴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머리 위로 뭔가가 푹 씌워졌다. 캡틴의 모자였다.
"?"
"배로 돌아간다."
반쯤 흘러내리는 모자를 손으로 잡고 캡틴을 올려다보자, 캡틴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에게도 일어나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네에…."
"꽉 잡아라."
"엥?"
뭘 잡아? 캡틴의 말을 채 이해하기도 전에, 발이 바닥에서 붕 뜨는 느낌이 났다.
"?!?! 으악?!"
"돌아간다. …미샤, 얼굴은 놔."
반사적으로 눈앞의 머리통을 잡고 나니 캡틴의 얼굴이었다. 앗, 죄송합니다. 코가 하도 높으셔서 손잡이인 줄 알았어요.
"죄, 죄송…."
…하긴 한데 근데 이 상황 나니? 난다로? 난데쇼? 왜 캡틴이 한 팔로 저를 들고 있는 걸까요?
미샤, 짐짝인 거니? 왜째서죠?
"잘 잡아."
"넴."
영문은 모르겠지만 일단 캡틴이 시키는 대로 캡틴의 후드티 자락을 붙잡았다. 그리고 캡틴은 한 팔에 키코쿠, 한 팔에 나를 들고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아까 넘어지면서 좀 까지긴 했는데 걷지 못한다거나 그렇진 않은데. 왜 캡틴이 나를 들고 가는 건지 이해 가능하게 설명하시오(15점).
"캡틴?"
"윗공기도 별로 다른 건 없지."
"에…."
"키가 좀 작은 것 정도로 일일이 풀이 죽다간 끝이 없어. 하지만."
"……."
"너는 내 선원이다. 내 선원이 다치고 우울해하는 걸 그냥 두고 보는 것도 취미가 아니지. 가면서 잘 봐둬. 아까 너와 부딪혔다는 녀석 찾아내."
"왜요?"
"똑같이 넘어트려줄 테니까."
캡틴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캡틴의 목을 끌어안고 큭큭 웃고 있으려니 언제 우울했냐는 듯한 기분이 되었다.
"캡틴."
"아아."
"스키 좀 탈 줄 아시네요."
"스키?"
"캡틴 다이스키!!! 으갹!!"
지금 떨어트리려고 했지! 진심으로 떨어트리려고 했지!!!
"캡틴, 너무해!"
"너무한 건 네 입이겠지."
쳇.
입을 삐죽거리면서 캡틴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래도 자꾸만 웃음이 나와서 참기가 힘들었다.